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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엄마 목에 '석션'하는 12살 아들…가족이 간호사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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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년 전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김주연(46ㆍ가명)씨 곁에 놓인 인공호흡기와 각종 의료기기들. 이에스더 기자

4년 전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김주연(46ㆍ가명)씨 곁에 놓인 인공호흡기와 각종 의료기기들. 이에스더 기자

집에 중증 환자가 있으면 의료적 처치가 필요할 때가 많다. 방문의료가 극히 미미해 그런 처치가 가족 몫으로 돌아온다. 가족이 반(半) 의료인이 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서울 도봉구 김주연(46ㆍ가명)씨는 4년 전만 해도 초등생 두 아들을 둔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극심한 피로와 함께 온 몸에 힘이 빠져 주저 앉았다. 루게릭병이었다. 김씨는 “이런 병은 TV에 나오는 사람만 걸리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아니더라"고 한탄한다. 병은 급속도로 진행해 1년 만에 목 아래로 무엇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급한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섰지만 24시간 돌봄이 필요했다.

가족에게 짐이 될까 싶어 요양병원을 자청했다. 같은 병실의 4명 환자는 의식이 없었다. 김씨는 “하루종일 잠만 자는 환자 사이에 꼼짝없이 누워만 있으려니 고통이 컸다”고 말했다. 가족의 간곡한 설득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목에 연결된 관에 인공호흡기(벤틸레이터)를 꽂아 숨을 쉰다.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떠먹여주면 넘길 수 있다. 눈으로 움직이는 아이 마우스를 노트북에 연결해 간단한 웹서핑이나 생필품 쇼핑을 한다. 평일에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돌봄을 받는다. 하지만 지원 시간이 부족해 비는 시간이나 휴일에는 친정 부모와, 남편, 14살ㆍ12살 두 아들이 돌본다.
 목관에 가래가 차면 낮이든 밤이든 주기적으로 목에 가느다란 관을 넣어 빨아내야 한다. 때를 놓치면 질식할 수 있어 가족이 모두 석션(가래 흡입기) 사용법을 익혔다.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보면서 인공호흡기 상태를 확인하고, 목관 자리를 소독한다. 석션은 의료 행위라 병원에서도 간호사만 하는데, 김씨의 두 아들은 능숙하게 한다. 한 달에 최소 한번 이상 목관을 교체하러 병원에 가는데 김씨는 “목숨을 걸고 간다“고 표현했다. 차로 30분 거리지만 인공호흡기와 각종 의료기기를 달고 사설 앰뷸런스로 간다. 활동지원사와 가족이 하루 꼬박 매달린다. 다행히 최근 서울대병원의 중증환자 재택의료를 받게 되면서 병원행이 줄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집으로 온다.
 김모(78ㆍ경기 부천시)씨는 지난해 뇌동맥류가 발견돼 코일색전술을 받은 직후 뇌출혈이 발생하면서 하루아침에 와상 환자가 됐다. 김씨의 3남매가 돌본다. 10분 거리에 사는 두 딸이 교대로 돌보고 멀리 사는 아들은 주 2~3회 밤을 맡는다. 김씨는 의식이 거의 없어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고, 뱃줄(위루관)로 영양을 공급받는다. 대소변도 받아낸다.

둘째 딸 강모(49)씨는 “밤에 한 사람은 꼭 어머니 옆에서 자다가 가래를 석션하고 자세를 바꾸고 기저귀를 교체한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말한다.  뱃줄을 통한 식사는 한번에 3시간가량 걸린다. 몸이 굳지 않게 중간중간 기립 운동을 시키고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돕는다.
다행히 장기요양보험의 방문요양 서비스를 하루 4시간씩 주6일 받게 됐다. 그런데 방문간호를 받게 되자 방문요양 시간이 확 줄었다. 간호 1시간이 요양 3시간에 해당되어서다. 방문간호사가 목관ㆍ뱃줄(위루관) 드레싱 등을 해 준다. 그래도 밤에는 자녀들이 목관 소독과 내관 교체, 뱃줄 소독 등을 맡는다. 의료인이 해야할 일이다. 강씨는 ”1년 넘게 하다보니 많이 지쳤다“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이선영 교수는 “고령화로 중증 와상 환자가 늘어날텐데, 의료 안전망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이들이 수십년 요양병원에서 지낼 수는 없으니 집에서 잘 살 수 있게 재택의료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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