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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하는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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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시간과 마음을 많이 쏟는 일은 누군가와 뭔가를 기념하는 것이다. 친구를 초대하는 생일파티도 겸연쩍어했던 소년기와 청년기를 지나,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선물을 사고, 방문하고, 결혼식장과 상갓집에 가고, 장례식 후엔 다시 안부를 물으며 찾아뵙고, 전화를 잊지 않고, 답례하는 의식이 이제는 일상의 주춧돌이 되었다.

얼마 전 이사한 나는 지인들을 초대해 식사하는 시간을 몇 번 가졌다. 요즘은 속을 훤히 아는 가족조차 시간 들이지 않고 편리하게 돈을 선물하는 시대지만, 돈은 마치 쌀과 연탄처럼 몇 번 먹고 때면 기억 속에서 제거된다. 화폐엔 등가성만 있고 고유성은 없어 거기서 뭔가 상징적인 것을 찾으려는 시도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돈으로 채울 수 없는 선물의 가치
시간·정성 들여 상대의 취향 살펴
눈에 보이는 것이 결국 마음 전달

물건은 다르다. 그것은 시간이고 마음이다. 받는 이의 필요와 취향을 고심하느라 애쓴 증여자의 흔적을 되새기는 것은 자못 기쁘다. 최근 받은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양식기 세트다. 새집에서 사람들과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으라고 줬겠지만, 내가 본 것은 선물의 ‘시간’이다. 그는 내 취향을 가늠하기 위해 간접 정보를 취합했고, 그렇게 고른 물건 중 가장 나은 것을 알고자 어떤 셰프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물건을 사려면 그의 집에서 왕복 두세 시간은 이동해야 했는데, 그는 비 오는 날 퇴근 후 그곳에 다녀왔다. 거기엔 자기 시간을 절약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타인이 있었고 덕분에 그 타인은 온전히 ‘주체’(아도르노)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은 예(禮)를 중시하는 마음가짐이며, 그 행위의 매개로서 필요한 것은 물건이다. 이런 형식과 예를 한국이든 일본이든 전통으로 간직해왔다. 눈에 보이는 것이 결국 마음을 전달한다. 그 눈에 보이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 들인 시간이 금 같고(내 시간이 금 같은 게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윤리라는 것은 즉흥성에 의해 훼손되기 마련이다”(도널드 리치). 형식이 사라진다는 것은 자기 삶이 이미 그런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형식을 먼저 존중하다 보면 가치가 되새겨진다. 그렇게 전해진 물건에는 온기와 감정이 섞여 있어, 상대가 한기를 느끼지 않도록 해준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외피는 오히려 그 속을 더 잘 들여다보게 해준다. 시간을 계산하지 않는 헤픈 행동이 매사를 근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어, 받는 이의 몸과 마음은 이로부터 회복되는 기미를 느낀다. 서로가 이렇게 함께 묶는 행위 속에서는 여유 있는 틈들이 생겨나 우리는 그 틈을 거닐다가 천천히 상대에게 스며 들어간다.

이런 감정을 몇 번 겪으면서 내게 떠오른 것은 예기치 않게도 옛 그림들이었다. 선물하는 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속 방랑자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즉 상대의 커다란 산맥 같은 마음을 풍경처럼 감상하거나, 혹은 조영석의 ‘설중방우도’ 속 손님처럼 눈으로 진창이 된 길을 헤쳐온 이의 발을 상상하며 감상하게 한다.(좋은 것들은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이러다 생각은 샛길로 빠지기도 하는데, 그 샛길들도 귀중하다. 카스파르의 그림을 떠올리다가 그와 유사한 풍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려낸 고(故) 공성훈 작가의 ‘바닷가의 남자’와 ‘사건으로서의 풍경’이 생각나면서 지난해 접한 그의 부고 기사가 기억나고, 그의 그림 속에 점처럼 조그맣게 서 있던 인간들이 자연으로 재흡수되는 일이 탄식을 불러일으킨다. (여전히 죽음은 자연스럽게 여겨지기보다 슬프기만 하다.)

선물은 물건을 통해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기도 하고, 받는 사람은 물건을 통해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선물은 어떤 면에서 보면 부드러운 어루만짐이다. 망설임과 신중함과 애틋함의 모퉁이를 돌아, 시간이 걸려서 날아오는 곡선과 같다.(반면 돈은 직선적이고 약간은 숨차고 무섭다.) 그 소박하고 귀한 물건은 공간을 점유하면서 주인과 같이 살아 숨 쉰다. 울타리를 넘어들어올 때 그것은 과시하지 않으면서 감정과 함께 섞여와 물건이 아닌 어떤 ‘존재’가 되기도 한다.

자주 기념하면서 서로의 삶을 매듭짓고 넘어가는 행위는 마음을 놓게 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아끼기보다 오늘을 내주는 일을 서로 하다 보면 그 끊어내는 불연속의 지점에 숨 쉴 공간이 생겨난다. 이때 시간은 비로소 공간이 되는 다른 차원을 내보인다. 반면 매듭짓지 않은 축적은 양으로서만 기억될 뿐 어떤 이미지로 깊이 새겨지지는 않는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