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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창·응원봉·스밍·앨범깡…K팬덤 문화도 수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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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응원봉은 K팬덤에 있어 중요한 소통 도구다. 아티스트들의 춤과 동작에 반응해 응원봉 색깔이 바뀐다. 사진은 지난해 미국 LA에서 열린 BTS 콘서트 모습. 지난 4월 BTS의 라스베이거스 공연 때는 응원봉만 100억원어치가 팔렸다. [연합뉴스]

응원봉은 K팬덤에 있어 중요한 소통 도구다. 아티스트들의 춤과 동작에 반응해 응원봉 색깔이 바뀐다. 사진은 지난해 미국 LA에서 열린 BTS 콘서트 모습. 지난 4월 BTS의 라스베이거스 공연 때는 응원봉만 100억원어치가 팔렸다. [연합뉴스]

K팝 산업의 성장에는 공급자인 아이돌과 연예기획사의 노력뿐 아니라 수요자의 K팬덤도 한몫한다. 글로벌 팬은 한국의 열정적인 ‘덕질’(좋아하는 것을 파고드는 일) 문화나 팬덤 용어 및 세계관을 따라 배우고, 이를 K팝 놀이의 백미로 꼽는다. 특히 K팬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각종 차트에서 1위에 올려놓기 위해 ‘화력’(단체 행동)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띤다.

K팬덤의 가장 큰 특징은 관객도 공연의 일부라는 점이다. ‘떼창’(따라부르기)과 ‘팬 챈트’(단체 응원)를 통해 아티스트가 부르는 노래의 일부가 된다. 패럴 윌리엄스, 에미넘, 비욘세 등 해외 아티스트가 내한 공연에서 한국 관객의 떼창에 놀라는 장면이 종종 화제가 됐다. 특히 이달 들어 국내 콘서트에서 노래 따라부르기 금지가 풀려 팬들의 함성과 떼창이 다시 시작됐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한국인은 모처럼 보러 간 가수 공연에서 그동안 억눌린 열정을 폭발시키고, 다 함께 뭔가 하고 싶은 집단주의적 문화를 가지고 있다”며 “내가 응원하는 아티스트의 무대를 가장 대단하게 만들고 싶은 과시, 경쟁 심리도 다소 얽혀 있다”고 설명했다.

팬덤을 상징하는 흰색·노란색·파란색 풍선에서 진화한 응원봉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K팝 콘서트에선 스마트폰과 연동된 응원봉이 필수품이다. 방탄소년단(BTS) 응원봉인 ‘아미밤’은 멤버들의 춤과 동작에 반응해 색깔이 바뀐다. 이를 손에 쥐고 공연을 즐기는 팬들은 “BTS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응원봉은 해외에서 라이트스틱(lightstick)으로 불린다. 생소하다 보니 해외 팬들은 사용법을 검색해가며 함께한다. 지난 4월 BTS의 네 차례 라스베이거스 공연에서 아미밤이 100억 원어치 이상 팔렸다.

임영웅 기획사는 소셜미디어에 아티스트가 상위에 오른 차트를 올려 팬들의 ‘스밍’을 독려했다. [사진 임영웅 SNS]

임영웅 기획사는 소셜미디어에 아티스트가 상위에 오른 차트를 올려 팬들의 ‘스밍’을 독려했다. [사진 임영웅 SNS]

좋아하는 가수를 음원 차트 1위에 올려놓기 위한 팬덤의 행동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K팬덤은 아티스트의 컴백 시기가 다가오면서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그 핵심은 조직적인 ‘스밍’(스트리밍)이다. 스밍에는 음원 스밍과 뮤비 스밍이 있다. 음원 스밍은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스밍권을 구입한 뒤 반복적으로 아티스트의 노래를 틀어 순위를 높이는 것이다. 뮤비 스밍은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를 반복해보며 조회 수를 올리는 일이다. 최근엔 임영웅, 송가인 등을 좋아하는 중장년층 팬덤도 스밍에 가세했고, 이를 위한 설명서까지 등장했다.

K팬덤의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스밍은 빌보드 등 글로벌 차트 순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빌보드는 올해부터 한 주에 음원 다운로드를 1건만 인정하고, 2건 이상 중복 다운로드는 차트 집계에서 제외했다.

음반 발매 당일 ‘오픈런’ 또는 ‘앨범깡’(같은 앨범 여러 장 구매)도 K팬덤의 특징이다.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으로 실물 앨범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그런데 한국 음반 시장 상황은 정반대이다. 실물 앨범 속에 포함된 포토 카드, 팬 사인회 응모권을 얻기 위해 한 사람이 수십장, 심지어 수백장을 사기도 한다. 포토 카드를 모아 사진첩을 꾸미는 ‘탑꾸’ 문화까지 등장했다.

글로벌 팬덤은 가상현실을 넘나들며 아티스트(에스파)의 세계관을 연구하고 서로 의견을 공유한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글로벌 팬덤은 가상현실을 넘나들며 아티스트(에스파)의 세계관을 연구하고 서로 의견을 공유한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해석하는 문화도 K팬덤의 또 다른 특징이다. 마블 유니버스를 즐기듯, 에스파와 엔시티(NCT)의 세계관이 겹치는 지점에 대한 서로의 해석을 공유하며 팬들끼리 소통한다. SM엔터테인먼트의 ‘광야’가 무엇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은 오래전시작했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실물 앨범도 현실과 가상세계 등 세계관 별로 판매해 팬들의 수집욕을 자극한다.

K팝 용어를 배우며 소속감을 갖는 것도 일종의 놀이다. 특히 아티스트의 나이와 데뷔 연도를 따지는 게 해외 팬들에게는 흥미로운 소재다. 예컨대, 1997년생인 BTS 정국과 갓세븐 유겸을 ‘97라인(97 liners)’으로 분류하거나, 팀 내 막내 멤버를 ‘Maknae’, 먼저 데뷔한 다른 그룹을 ‘선배님’의 이니셜인 ‘SBN’으로 쓰는 경우 등이다. 나이에 따라 서열을 따지는 문화가 없는 문화권 팬들은 한국어 그대로 쓰다.

전문가는 이런 K팬덤 현상을 “문화 수출이 갖는 파생적 효과”로 분석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한국 부모세대가 팝송과 외국 영화를 접하며 자연스럽게 영어와 서구권 문화를 배웠듯, K팝에 빠져 한국어를 공부하고 유학까지 온 외국인이 많다”며 “문화 수출은 아티스트로 한정되지 않고, 이를 확장하는 팬덤 간 상호작용이 한국의 다양한 산업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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