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섹스로만 아니 연애를 모르지" 韓성문화 때린 전문가

중앙일보

입력 2022.06.28 22:35

업데이트 2022.06.29 07:25

“우리 사회가 성을 이상하게 다루고 있어요. 성을 오직 ‘섹스’로만 풀고 있으니 젊은이들은 연애를 모르고 어른들은 소비하는 섹스, 폭력적인 섹스에만 몰입하며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어요.”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행복한 성문화센터' 센터장)가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행복한 성문화센터' 센터장)가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8일 서울 광화문 ‘행복한 성문화센터’에서 만난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는 한국 사회의 성 문화를 이렇게 진단했다. 젊은 세대의 젠더갈등이 심화하고 혼인율과 출산율이 곤두박질치는 가운데 성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보건학 박사이자 25년째 성교육 상담가와 성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그에게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 성 문화의 문제점이 뭔가.  
“성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고 섹스는 엔(N)분의1인데, 섹스가 성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이 곧 섹스가 되다보니 금기의 바다에 빠져버렸다. 자극적인 어른들의 이야기, 원치않게 임신하고 성병에 걸려 불행해지는 것, 누군가를 모욕하고 망신줄 때 사용하는 것, 성폭력과 성매매 같은 범죄…자꾸 그런 이미지로 가고 있다.”
그럼 성은 본래 어떤 건가.
“말 그대로 인간의 본성(本性)이다. 사랑·이별·결혼·이혼부터 위생·건강까지 모두 포함하는 게 성이다. 본성을 금기시 하다보니 죄책감으로, 강박으로, 변태적 사고와 행동으로 이어지는 거다. 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 연애와 결혼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배 교수는 금기에 갇힌 성을 삶 속으로 끌어내기 위해 대학에서 ‘성과 문화’라는 교양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섹스가 아니라 연애, 인간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토론한다.

20대 젠더 갈등이 실제 심한가.
“인터넷에서 극단적인 글과 사건만 부각되고 코로나로 만날 기회가 줄어 ‘가상의 괴물’이 만들어졌다. 막상 같이 수업듣고 활동해 보니 ‘이성 또래들도 합리적·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남자는 이럴거야, 여자는 이럴거야라고 상상하지만 말고 만나서 괴물이 아니란 걸 확인하고 사랑의 감정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살아가는 일이다.”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한 여성단체가 '여성혐오'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한 여성단체가 '여성혐오'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남녀갈등이 있는 건 현실이다.
“남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책의 문제라고 본다. 남녀가 일제히 수도권으로 올라와 제한된 일자리를 놓고 싸울 수밖에 없는 여건을 국가가 만든 거다. 학생들에게 결혼에 대한 꿈이 뭐냐고 물으면 ▶20평대 수도권 아파트 ▶월급 250만~300만원이라고 한다. 매달 100만원씩 저축해도 수도권 전세는 어렵다. 가능성이 사라지다 보니 결혼조차 오직 계층 이동의 수단으로 왜곡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혼인건수와 조혼인율은 모두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게 나타났다. 연합뉴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혼인건수와 조혼인율은 모두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게 나타났다. 연합뉴스

실제 한국의 혼인율은 지난 20년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연애율 같은 통계는 없지만 젊은 층은 ‘관계의 빈곤’에 놓여있다. 일례로 ‘2021년 서울 거주자의 성생활(염유식·최준용)’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42%, 20대 여성의 43%가 1년간 성관계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파트너가 없어서’, 여성은 ‘흥미가 없어서’란 답이 가장 많았다.

비혼주의자도 많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하는 걸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표현이 더 맞다. 이성이 서로의 기득권을 빼앗아간다고 선동하는 일부 극단적인 목소리의 영향도 크다. 한국 젊은이는 사랑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말도 안 된다.”

배 교수의 강의엔 연인이 아닌 학생끼리 데이트해 보는 과제가 들어있다. 여기엔 하루 데이트 비용이 1만원을 넘지 않을 것, 자가용을 가져와서 데이트하지 말 것 등의 조건이 붙는다.

왜 데이트를 가르치나.
“데이트의 목적은 ‘매칭(짝 만들기)’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맺을 때 어떤 것들이 중요한지, 사람을 만나는 태도를 배우는 거다. 흔히 성격차이로 헤어졌다고 하는데, 성격이 달라서 오히려 재밌고 끌리기도 한다. 이별하는 건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협상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연애와 결혼의 핵심은 배려와 존중이고, 인생도 마찬가지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행복한 성문화센터' 센터장). 장진영 기자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행복한 성문화센터' 센터장). 장진영 기자

연애를 꼭 해야할까.
“사랑만큼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똑똑한 사랑이든 어처구니없는 사랑이든 그걸 통해 뭔가 배우게 된다. 그 경험을 어떻게 처리하고 사용하는가가 삶에서 정말 중요하다. 요즘 연애는 외모·물질에 치우쳐 있지만 상대가 가진 내면의 힘이 나를 감동시키고 내 현실을 바꾸는 게 진짜 연애다. 돈이 없어 연애를 못 하겠단 사람은 돈이 있어도 못한다.”  
연애 상대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조건에 맞춘 소개팅만 하지말고 고백도 해보고 데이팅 앱도 써보라고 하고 싶다. 우리 젊은이들이 실패할까봐 고백을 못하는 경향이 있다. 수업에서 ‘모르는 이성이 커피 한잔하자고 관심을 나타내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40% 넘게 응하겠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하는 남녀에 대한 극단적인 얘기는 대부분 거짓이다. 그 거짓에 겁을 먹고 시도를 못 하는 거다.”

배 교수는 부모와의 솔직한 대화가 자녀의 건강한 연애·결혼관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젊었을 때 사랑한 얘기, 너를 낳은 게 보람이고 기쁨이라는 얘기, 네 아빠 또는 엄마가 참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 너에게 잘해주고 성실한 사람을 만나라는 조언 등이 좋은 예다.

그는 “자녀들은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하고 내가 잘 되길 바라는 인생 선배의 조언에 의외로 큰 영향을 받는다”며 “가끔은 바쁜 일상을 멈추고 내가 살아온 삶을 자녀와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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