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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 모텔에서 잔 전인지 캐디 1억7500만원 대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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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인지와 딘 허든이 우승이 확정된 후 기뻐하고 있다. [USA TODAY]

전인지와 딘 허든이 우승이 확정된 후 기뻐하고 있다. [USA TODAY]

탕! 탕!.
미국 워싱턴 DC 인근 메릴랜드 주 록빌의 레드 루프 인에서 총소리가 났다. 하비에르 곤잘레스-메리는 노크 소리에 문을 열어줬다가 총을 맞고 숨졌다.

LPGA 투어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1라운드 전날인 22일 밤 11시30분(현지시간) 일어난 일이다. 대회장인 콩그래셔널 골프장에서 20분 거리의 이 모텔에는 약 20명의 캐디가 숙박했다.

이 숙소를 캐디들에게 소개한 사람은 30년 경력의 베테랑 딘 허든(58)이다. 전인지의 캐디로 한 달 전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연습 라운드할 때 이 모텔에서 잤다. 숙박비가 합리적(일주일 550달러)이고 위치가 좋아 다른 캐디들에게도 알려줬다.

미국 골프위크는 살인사건 후 대부분의 캐디가 숙소를 옮겼다고 했다. 그러나 허든은 남았다. 그는 “경찰차 2대가 지키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했다. 살인사건 당시 여러 캐디가 총소리를 들었지만 허든은 깊이 잠들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허든은 전인지와 2015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합작한 경험이 있다. 전인지는 2015년의 좋은 기억과 긍정적 팀워크를 되살리기 위해 지난해 가을부터 함께 하고 있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예정이다. 전인지의 코치인 박원 JTBC골프 해설위원은 “결단력이 뛰어나고 선수를 잘 다독여 주며 올바른 인성을 중시하는 장점이 있다”고 평했다.

허든은 한국 여자 골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캐디다. 30년 캐디 경력에 지난 14년 동안은 한국 선수의 가방만 멨다. 캐디로 58차례의 우승을 맛봤는데 한국 선수와는 32번, 그중 25승은 신지애와 함께였다.

골프 선수 출신이었다. 호주에서 태어나  6년간 아시안 투어 등에서 뛴 허든은 1992년 일본 투어로 진출한 친구의 부탁으로 캐디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최경주의 캐디를 맡기도 했다. 허든은 "최경주의 인상이 복싱선수 마이크 타이슨 같았다"고 했다.

신지애와 딘 허든. [사진 KLPGA]

신지애와 딘 허든. [사진 KLPGA]

2005년부터 일본 여자 최고 선수 후도 유리의 가방을 챙겼고 2008년부터는 신지애의 캐디백을 멨다. 국내에서 ‘지존’으로 불리던 신지애가 세계 랭킹 1위로 도약할 때 허든이 보좌했다.

2011년 초 신지애는 허든과 헤어졌으나 유소연과 단발 계약해 US 여자 오픈 우승을 도왔다. 이후 US오픈에서 유소연에게 연장전에서 패한 서희경의 가방을 멨다. 2014년 말부터 서희경이 출산으로 경기를 쉴 때는 장하나의 가방도 잠시 챙겼다.

서희경은 2015년 US오픈에 참가하지 못했다. 허든은 그때 파트타임으로 전인지의 가방을 멨고 또 우승을 이끌었다. 2016년 초 김효주의 가방을 잠시 맡았는데 그 해 개막전인 퓨어실크 바하마에서 또 우승 맛을 봤다.

허든은 고진영의 캐디로 한국에 머물 때 흡족해 했다. 보안 검색이 심하고 연착, 취소가 많은 미국의 비행기 여행을 싫어한다.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는 한국 투어가 아주 좋다고 했다.

2011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유소연과 딘 허든. [사진 KLPGA]

2011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유소연과 딘 허든. [사진 KLPGA]

그러나 2018년 고진영의 LPGA 투어 진출로 미국에 따라가야 했다. 고진영을 LPGA 데뷔전에서 우승시켰다. 그는 한국에 있는 집은 그대로 두고 있다. 영종도에 맥주 바를 열기도 했다.

그는 한국 선수의 정서를 잘 이해했다. 전문 캐디가 없던 국내 프로골프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허든은 “남자 선수의 캐디는 거리만 불러주고 가방만 드는 역할에 불과할 때가 많다. 여자 선수들과는 함께 우승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번 우승은 의미가 크다. 7년 전 그와 함께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던 전인지와 함께 한 우승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우승을 못했으며 최종라운드 무너지는 기색을 보이던 전인지를 보듬어 일으켜 세운 드라마틱한 대회이기도 하다.

허든은 우승 상금 17억5000만원의 10%인 1억7500만원의 보너스를 받았다. 그가 받은 보너스 중 단연 최고액이다.

허든은 신지애와 함께 한 2008년 브리티시 여자오픈, 전인지와 함께 한 2015년 US여자오픈도 의미 있는 우승이라고 여긴다.

허든은 “2008년 브리티시 여자오픈은 첫 메이저 우승인 데다 챔피언 조에서 경쟁을 펼친 후도 유리가 3년 전 나를 해고한 선수여서 더 이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5년 US여자오픈에서 전인지는 당시 최고의 볼스트라이킹에도 불구하고 그린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마지막 9홀에서 퍼트가 좋아지면서 우승했다.

가장 좋아하는 서희경과 우승을 못 한 건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다. 그는 2012년부터 14년까지 서희경과 3년간 함께 하면서 우승 기회를 여러 번 잡았다. 연장전에만 4번 갔으나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서희경과 딘 허든. [사진 KLPGA]

서희경과 딘 허든. [사진 KLPGA]

허든은 “서희경의 실력이 좋아 LPGA에서 우승을 못 한 것은 설명하기도 어렵다. 때론 너무 열심히 해서 문제가 복잡해지기도 한다. 마음이 착한 사람에게 불운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골프다”라고 말했다.

2012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이 허든에겐 한이다. 김인경이 30cm 퍼트를 넣지 못했던 그 대회다. 서희경은 4홀을 남기고 3타 차 선두였다. 마지막 4홀 모두 보기를 했다.

허든은 “14번 홀까지는 완벽한 경기였다. 내가 실수를 했다. 티샷이 러프로 간 15번 홀에서 서희경은 아이언으로 치려고 했는데 내가 유틸리티로 4분의 3 스윙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스윙이 너무 컸고 그린을 넘어 벙커에 공이 빠지면서 보기가 나왔다. 16번, 17번 홀에서 타수를 잃었다. 그래도 기회는 있었다. 18번 홀에서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쳤는데 공이 디벗에 들어가 있었다. 여러 가지로 운이 없었다”고 말했다.

서희경은 JTBC 골프에서 허든이 전인지와 우승하는 장면을 직접 해설했다. 위안이 됐을 것이다.

허든은 메이저 5승을 포함 전 세계 58승을 도왔다. 캐디 명예의 전당감이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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