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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만에 눈빛 달라졌다…병원 간적없는 조현병 환자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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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조현병 환자 안인득은 경남 진주의 아파트에서 불을 지르고 흉기로 휘둘러 22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는 2016년 7월 마지막 치료를 받은 뒤 임의로 중단한 상태였다. 상태가 악화해 가족이 병원에 입원시키려 애썼지만 실패했다. 치료 공백이 끔찍한 범죄로 이어졌다.

'제2의 안인득' 막으려면 제때 치료해야 #전문가들 "방문진료 활성화해야"

코로나19로 인해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된 정신질환자는 늘었다.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발간한 ‘국가 정신건강현황보고서 2020’을 보면 2020년 퇴원 후 한 달 내 외래를 방문한 중증 정신질환자는 10명 중 2명(21%)꼴이다. 전년도(65.7%)보다 훨씬 악화했다.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자도 방문진료 손길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하지만 방문진료도 낯선 마당에 조현병 환자 방문진료는 더 낯설다. 치료를 임의중단하거나 거부한 조현병 환자는 위험이 커진다. 왕진 시범사업 대상에 들어있긴 하지만 진료하는 데를 찾기 힘들다.

수도권의 한 의원이 팔을 걷고 나섰다. 이 병원 원장은 정신병원에 5년 이상 입원했다가 퇴원한 60대 조현병 환자 A씨를 주기적으로 왕진한다. 퇴원 후 3개월간 약을 먹지 않은 A씨는 첫 왕진 때만 해도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의료진의 설득 끝에 보호자 동의를 거쳐 치료제를 주사했다. 피해망상 증상을 보이던 A씨는 그로부터 2주 뒤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스스로 병원에 입원하겠다고 결정했다. 현재는 입원치료를 끝낸 뒤 주기적으로 관리를 받고 있다. A씨를 방문진료한 의원은 올 초부터 종합병원 정신과 의사와 의기투합해 조현병 환자를 찾아가고 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와 협의해 지역 내 10명 정도 되는 환자들을 찾아간다. 병원에 가지 않아 상태가 악화됐다면 치료제를 주사하고, 그 이후 간호사가 찾아가 주기적으로 상태를 살핀다.

의료진은 “조현병 환자들은 약이나 주사만 잘 맞으면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다”라며 “이들이 사회 내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방문진료가 확대돼야 한다”고 말한다.

의료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면 병이 한참 진행될 때까지 방치된다.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20대에 조현병이 발병한 것으로 추정되는 70대 여성 환자 B씨를 방문진료 했다. 장 전문의가 경북 봉화군에서 공중보건의사로 활동할 당시 주민 제보를 받아서 B씨를 만나게 됐다. 장 전문의가 찾아갈 때까지 B씨는 진료를 받아 본 경험이 없었다고 한다. B씨 집을 방문해 진료하고 약을 처방했다. 6개월 정도 지나자 B씨가 장 전문의의 눈을 또렷이 맞추고 웃었다고 한다. 장 전문의는『환자를 찾아가는 사람들』(스토리플래너)에 소개했다.

2019년 기준 OECD 국가의 조현병ㆍ분열형 및 망상장애 환자의 평균 재원기간. [국가 정신건강현황보고서 2020]

2019년 기준 OECD 국가의 조현병ㆍ분열형 및 망상장애 환자의 평균 재원기간. [국가 정신건강현황보고서 2020]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내 적응을 돕기 위해선 방문진료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백 교수는 미국의 적극적 지역사회치료(ACT, Assertive Community Treatment) 모델을 예로 든다. ACT는 장기입원 정신과 환자의 탈(脫) 의료기관을 돕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시행되는 치료프로그램이다. 조현병이나 중증정신질환자가 센터에 등록되면 간호사가 매일 찾아가 약을 챙겨주고 의사는 한 달에 한번 왕진을 가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

백 교수는 “여전히 가족들에게 온전하게 책임이 전가되는 한국과 달리 선진국들은 지역사회가 책임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제2의 안인득이 안 나오게 하려면 꼭 필요한 정책”이라며 “입원하는 것보다 자유롭고 환자가 병원에 갈 필요도 없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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