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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멸종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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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창규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아키야(空き家)’. 일본어로 빈집을 뜻하는 이 말은 일본 인구감소·고령화의 상징과 같다. 급격한 인구감소와 고령화 탓에 고령의 집주인이 사망해도 집이 팔리지도 않아서 상속인이 관리를 포기하고 방치해 둔 집이다. 도쿄에서만 빈집 비율이 전체 주택의 10%를 넘어설 정도여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일본에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마다  ‘아키야뱅크(空き家バンク)’를 운영하고 있다. ‘빈집은행’이란 뜻처럼 빈집 정보를 온라인 등에 올리고 원하는 사람의 매수·매도를 도와준다. 입주를 원하면 공짜나 헐값에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지자체의 노력에도 경기가 활기를 띠는 일부 지역에서만 거래될 뿐 투자는 제한적이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15년부터 4년간 주민이 한 명도 없어 사라진 마을이 164곳에 달한다. 아흐레마다 마을 한 곳이 사라진 셈이다.

출산율 0.8%대로 일본보다 낮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 감소
성장둔화→소득감소 악순환 빠져
소명의식 갖고 특단대책 마련을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한국의 인구 감소를 두고 ‘훈수’를 뒀다. 일본 인구가 11년 연속 감소한 것을 두고 “출산율이 사망률을 초과하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일본은 결국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뒤다. 머스크는 트위터에서 “한국과 홍콩은 가장 빠른 인구 붕괴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은행의 2020년 국가별 출산율 순위표도 공유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출산율은 0.84명으로 200개국 가운데 꼴찌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빨리 줄어들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홍콩은 0.87명으로 199위였으며, 일본은 186위(1.34명)였다. 머스크는 “한국의 출산율이 변하지 않는다면 3세대 안에 한국 인구는 현재의 6%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요즘 한국 경제는 바람 앞의 등불 같다. 유가는 다락같이 오르고 공급망 차질로 세계는 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여 있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으려 기준금리를 경쟁적으로 올리며 돈줄을 죄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국의 경기 침체는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미국 등 주요국 주식시장의 작은 출렁임에도 한국 증시는 녹아내린다. 원화 가치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충격이 와도 환율은 요동친다. 여기에 수출이 둔화하고 무역수지 적자는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외부에서 기침하면 한국은 독감에 걸리는 형국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외부 충격에 약하다는 뜻이다.

이번 경기침체는 한국에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 한국은 2020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됐다. 이때 처음으로 사망자 수(31만 명)가 출생아 수(27만 명)보다 많은 ‘데드 크로스(dead cross)’가 발생했다. 인구 감소는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다. 여기에 세계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라는 강력한 태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원자재를 수입·가공한 뒤 수출해서 먹고 사는 한국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총인구는 2020년 5184만 명에서 2030년 5120만 명, 2040년 5019만 명으로 줄다가 2050년엔 4736만 명으로 추락한다. 30년 새 부산 인구(336만 명)의 1.3배가량인 448만 명(8.6%)이 사라진다.

인구가 줄면 창업하는 사람이 감소하니 일자리도 쪼그라든다. 이렇게 되면 성장이 둔화하고 소득이 줄어든다. 수입이 넉넉지 않으면 젊은층이 결혼을 꺼리고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인구 감소→성장 둔화→소득 감소→인구 감소’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영국의 인구학자 폴 월리스는 인구 감소가 대지진 못지않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를 ‘인구지진(Age-quake)’이라고 표현했다.

상황이 이토록 심각한데도 정부건, 민간이건 총체적 대응을 하지 않는다. 정책 결정권자가 주로 사는 대도시에서는 인구 감소를 피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미래에 큰 어려움으로 닥칠 문제지만 임기 내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안이니 우선순위에서도 밀린다. 정권 초기엔 이런 정책, 저런 정책을 내놓겠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결국 흐지부지된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출범 후 15년간 220조원이 넘는 돈을 저출산에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인구 문제는 갈수록 나빠졌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그때는 손 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지금 한국은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에 있는 개구리와 같다. 새 정부에서도 지난 24일 인구위기대응TF를 출범시켰다. 이제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나라를 구하겠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멸종하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