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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산골(散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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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1990년대 초까지 경기도 파주는 취수원이 있는 한탄강가에 유골을 뿌리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벽제 서울시립화장장에 때때로 공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했다. 서울시립화장장 역시 화장로를 청소할 때 나오는 뼛가루 처리 문제로 고민하던 터라, 분골을 뿌리고 간단한 제를 올릴 수 있는 산골 시설을 1992년 설치하게 된다. 『화장문화의 이해』(2017)에 따르면 산골 시설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살아서는 주택, 죽어서는 유택”이라고 농담처럼 던진 말이 이의 없이 채택돼 ‘유택동산’이 됐다.

 화장한 뼛가루를 자연에 뿌리는 장례를 산골(散骨) 혹은 산분장(散粉葬)이라고 한다. 산분장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리라”는 유언대로 경주 앞바다 대왕암에 장사를 지냈다. 효성왕·선덕왕·진성왕·경명왕도 동해에 뼈를 뿌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오늘날 실제로 이를 채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건복지부가 2020년 유족 19만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산이나 강에 뿌렸다’는 응답은 2.63%에 그쳤다. 통계청 2021년 사회조사에서 22.3%가 선호하는 장례 방법으로 ‘화장 후 산·강·바다에 뿌림’을 희망한 것과는 동떨어진 현실이다.

 1992년 서울시립화장장에 유택동산이 처음 설치된 이후 한탄강 식수원의 유골 문제는 해결됐다. 그러나 산분장은 현재 합법도 불법도 아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에 따르면 상수원 보호구역이나 하천 인근에서 장례를 지낼 수 없는데, 법에 규정한 장례 방법에 ‘뼛가루를 뿌리는 행위’ 자체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막을 근거도 없다. 유택동산은 2001년 장사법령에 ‘화장한 유골을 뿌릴 수 있는 시설’로 규정됐을 뿐, 공식 장례 방법에 포함되진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올 하반기 발표할 ‘제3차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2023~2027)’에 비로소 산분장을 제도화하는 방안이 담길 예정이다.

 산분장은 유골을 가장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방법이다. 추가 관리 부담이 없어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선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품위 있는 장례 방법의 하나가 되도록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게 미래지향적인 해법이겠다.

참고도서: 『화장문화의 이해』(박복순·박태호·이필도·김시덕,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