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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지금, 오일쇼크 때 같은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 낮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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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강남규 기자 중앙일보 국제경제 선임기자

프래컨 S&P 수석 이코노미스트 

강남규 기자

강남규 기자

“괴상하고 발랄한 말 만들기!”

영국 런던정경대학(LSE) 찰스 굿하트 교수(통화정책)가 2017년 3월 런던에서 기자와 대화 중에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경기침체)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영국 보수 정치인 이언 매클라우드가 1965년 의회 연설용으로 처음 만든 말”이라며 “엄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지 않아 괴상하지만 그 시절 주류인 케인스학파 정책을 공격하는 데는 효과 만점이어서 발랄한 말 만들기였다”라고 평했다.

1970년대엔 7년새 유가 8배 폭등
Fed는 닉슨 재선 위해 달러 살포
금본위제 붕괴 등 4~5개 충격 몰려

지금 물가 잡으려 실업률 상승 감수
바이든 정치적 부담 크지만 효과
‘S 공포’ 피해도 침체 피하긴 어려워

1970년대 오일쇼크 로 미국의 한 주유소에‘기름 없음’이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중앙포토]

1970년대 오일쇼크 로 미국의 한 주유소에‘기름 없음’이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중앙포토]

매클라우드 발언 이후 8년이 흘렀다. 1차 오일쇼크가 글로벌 경제를 강타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황금기(Golden Age: 1950~1975)가 저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태그플레이션이 엄습했다. 당시 증시 참여자들은 물가가 오르는 만큼 떨어지는 실질 주가에 망연자실했다(그래프 참조). 그 바람에 정치적 수사(rhetoric)에 지나지 않은 스태그플레이션이 검증을 거친 경제학 개념으로 받아 들여졌다.

요즘엔 몇 가지 비슷한 이미지만으로도 글로벌 시장은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이곤 한다. 두려움은 두 가지 추정을 바탕으로 한다. 첫째는 미 연방준비은행(Fed)과 유럽중앙은행(ECB) 등의 긴축으로 내년에 경기가 침체할 것이란 추정이다. 둘째는 통화 긴축에도 물가는 계속 오를 수 있다는 직감이다.

인간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다. 전문가들마저도 경제사의 사건들을 자의적으로 선택해 현재를 해석하고 전망하기도 한다. 이런 점을 비판하는 전문가가 마침 나타났다.

조엘 프래컨

조엘 프래컨

S&P 글로벌마켓 인텔리전스 조엘 프래컨 수석 이코노미스트다. 그는 뉴욕연방준비은행에서도 일한 적이 있고, 2017년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의해 ‘가장 정확한 이코노미스트’로 뽑히기도 했다.

프래컨은 중앙일보와 한 줌(Zoom) 인터뷰에서 “70~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은 지금보다 ‘심각하고 지속적인 충격’을 준 4~5가지 사건이 한꺼번에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첫 번째 사건은 1·2차 오일쇼크였다. 그는 “73년 이후 6~7년 새에 원유 가격이 8배 뛰었다”며 “하지만 요즘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오른 폭은 30~40% 정도”라고 말했다. 상승폭 자체가 하늘과 땅 차이란 얘기다.

그때는 식료품 가격도 지금보다 훨씬 높이 뛰었다. 프래컨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 못 할 수도 있는데, 70년대 초반 남미 태평양 연안에 멸치(anchovy)의 씨가 말랐다”며 “멸치는 수많은 식료품의 원료인데, 그 바람에 당시 식품 가격이 치솟았다”고 상기했다.

원유·식료품 등의 공급 쇼크 외에도 통화질서의 해체까지도 벌어졌다. 프래컨은 “달러-금의 태환이 중단돼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했다”며 “이는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영구적인 체제 변화였다”고 말했다. 실제 71년 중단된 금 태환은 현재까지 복원되지 않고 있다. 반면 양적 완화(QE)는 프래컨 등 이코노미스트의 눈엔 ‘일회성’ 또는 ‘바로 잡을 수 있는’ 사건으로 비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체제 붕괴에다 정치적 요인도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일으켰다. 프래컨에 따르면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가격을 통제했다. 동시에 아서 번스 당시 Fed 의장은 닉슨의 재선을 돕기 위해 달러 공급을 늘렸다. 억눌린 물가는 가격 통제가 풀리자 미친 듯이 뛰었다.

게다가 당시 Fed는 물가를 연간 몇 %에서 억제하겠다는 의지나 목표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바람에 “그 시절 Fed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10%에 이르러 통제불능 상태에 도달하도록 사실상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Fed는 연 2%를 사실상 물가안정 목표로 삼고 있다.

프래컨은 “80년대 초 Fed 의장인 폴 볼커가 그간 모든 충격을 흡수하고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려야만 했다”며 “그 결과가 심각한 경기침체였고, 이게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강조했다. 여러 가지 충격과 실수가 동시에 작용해야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란 얘기다.

지금은 어떨까. 프래컨은 “요즘 물가 상승률이 70년대만큼 높지도 않고, 폐기할 금본위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통화정책을 활용할 가능성도 낮다. 그는 “최근(14~15일) Fed 결정에서 키 포인트는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는 점이 아니다”며 “물가를 잡기 위해 ‘실업률 상승을 감수하겠다’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물가 잡기 위해 실업률 상승을 감수하는 정책은 미 리버럴(진보) 진영이 ‘노동자를 희생시켜 경기(물가)를 조절하는 비인간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 등엔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효과 측면에서는 검증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낮다고 경기침체마저 피할 수 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프래컨은 “실업률이 오르기 시작하면 조금만 상승하는 게 아니다”며 “경기를 침체에 빠뜨리지 않고 물가를 잡는 일은 눈을 거의 감고 실을 바늘에 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