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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진영이 고발한다

尹지지자조차 "치맛바람에 폭망"…김건희 향한 여혐 심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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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영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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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서 기자

그래픽=김현서 기자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부인 김건희 여사의 행보와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공식 일정만 정제된 형식으로 공개해온 기존 대통령 부인들과 달리 자신의 팬클럽을 통해 취사선택한 사생활을 스스로 노출하는 식의 전혀 새로운 영부인 스타일에 환호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 여론이 높았던 대선 당시의 약속대로 조용한 내조에 머물러야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두 여성 작가의 상반된 시각의 글을 연이어 내보냅니다. 비판적 입장인 오세라비 작가의 칼럼에 이어 오늘(22일)은 이런 비판은 여성혐오적 편견이라는 주장을 담은 오진영 작가의 글이 이어집니다.

지난 17일자 한 일간지에 '尹 직무평가 첫 50% 아래로…"극장방문·김건희 평가 안 좋아"'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 아래엔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아내 김건희 여사가 팝콘을 들고 영화관에 있는 사진이 배치됐다. 대통령 취임 후 상승세였던 직무수행 긍정평가가 꺾였는데 그 주요 이유가 인사문제와 집무실 이전 등이며, 소수 응답으로 ‘김건희 여사 행보’와 관련한 비판 의견이 있다는 내용이다. 기사 제목만 보면 윤 대통령 인기가 떨어진 원인이 극장에 같이 간 아내 탓이라는 인상을 받기 쉽다. 소수 응답에 불과한 김 여사를 기사의 메인 사진으로 쓴 것 자체가 집권 1개월 차 새 정부에 대한 여론 지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윤석열 호를 향한 비난 중에 김 여사 관련이 압도적으로 많다.

현 정부 반대파는 말할 것도 없고, 윤 대통령을 찍은 지지자들마저 "와이프 좀 어떻게 해라, 이러다 큰일 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SNS에는 “치맛바람 못 일으키게 초장에 주저앉히지 않으면 윤석열 정부는 폭망”이라고 외치는 친(親) 국민의힘 스피커들이 수두룩하다. 종손에게 몰려가 "아내(혹은 며느리) 간수 못 해 가문에 먹칠하는 날엔 가만 안 두겠다"고 윽박지르는 갓 쓴 노인들 같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SNS에 '줄리 찾기는 얼굴 찾기 놀이가 아니다. 공적 검증 무대에 거짓으로 설 수 없기 때문'이라는 글을 올렸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SNS에 '줄리 찾기는 얼굴 찾기 놀이가 아니다. 공적 검증 무대에 거짓으로 설 수 없기 때문'이라는 글을 올렸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선 기간 내내 윤 후보의 가장 무거운 부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이프 탓에 출마를 못 할 거라고 했고, 그다음엔 와이프 탓에 완주를 못 할 거라 했고, 막판까지도 와이프 탓에 질 거라 했다.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강성 유튜버들이 '줄리' 운운하며 김 여사 과거와 관련한 해괴한 여성혐오 루머를 퍼뜨리는 동안 여성운동 경력을 바탕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민주당 여성 정치인 누구도 이를 말라지 않았다. 못 본 척하거나 오히려 거들어 부추겼다.

지난해 12월과 지난 2월에 여성학자 정희진씨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경향신문 캡처]

지난해 12월과 지난 2월에 여성학자 정희진씨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경향신문 캡처]

정파적 이익이 충돌하는 정당의 정치인뿐 아니라 여성학자라는 정희진은 같은 신문에 두 번이나 '검사 윤석열이 피의자 김건희와 결혼한 건 결격 사유이자 범죄 행위'라는 칼럼을 썼다. 수백억대 자산가인 모친이 자기 딸을 검사 포섭용으로 내돌렸으며 대한민국 검사는 성 접대 받고 사건을 덮어줬다는 식의 루머를 진실로 단정 짓고, 유력 야당의 대선 후보 부부를 단죄하라는 주장을 인쇄 매체에 버젓이 실은 것이다. 이 칼럼에는 '검사와 피의자 자격으로 만난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구조를 혁파하는 것이 검찰 개혁'이라거나 '(김건희 비난에 대해)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혐오라며 그녀를 가부장제의 피해자로 만드는 현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까지 했다. 이쯤 되면 김 여사 때리기·헐뜯기가 정치 과몰입자들의 국민 레저가 된 느낌이다.

대통령 싫어하는 사람들로부터 그 부인들이 욕받이 신세가 된 건 물론 김 여사가 처음은 아니다. 내가 젊었을 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대머리와 아내 이순자 여사의 주걱턱을 세트로 묶어 조롱해야 의식 있는 학생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즐겨 입은 수많은 해외 럭셔리 브랜드 옷과 잦은 해외 방문도 너무나 당연한 성토 대상이었다. 남성 정치인을 공격할 목적으로 그의 배우자를 모욕하는 건 불과 십여년 전까지 여성 비하가 숨 쉬듯 자연스러웠던 한국 사회에선 고전적 전통이었다. 이 모든 맥락에 비춰봐도 김 여사에 대한 관심과 간섭은 지나치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2월 김건희 여사가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2월 김건희 여사가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뉴스1]

살아있는 권력자 자녀의 입시 비리를 공정하게 수사해 명성을 얻은 검사 출신 정치인의 아내인데도 김 여사 본인 역시 경력과 학벌을 부풀렸다는 원죄가 있다. 이미 본인이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런데 여기에 극렬 선동가들이 마구잡이로 퍼뜨린 과거 루머가 덧씌워지고 모친의 복잡한 송사까지 얽히다 보니 ‘부정한 수단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고 권력자와의 혼인으로 보호막을 쳤다’는 최악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김 여사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취급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이미지를 근거로 우려를 표한다. 현 정부 지지자들마저도 대통령 없이 혼자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인도 타지마할 관광을 갔던 전임 대통령 부인을 비난할 때보다 한층 더 기세등등하게 “자격 없이 최상위 권력에 올랐으면 나대지 말고 숨만 쉬고 살아라”고 호통친다. '남편이 너무 미워서 아내도 꼴 보기 싫다'는 게 역대 대통령 부인을 향한 비난이었다면 김 여사는 멀쩡한 남편 앞길에 재 뿌릴 여자라는 불신이 추가된 셈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대중에게 한번 각인된 이미지는 좀처럼 개선되기 힘들다. 저가 옷을 입으면 가식 떤다고 욕할 것이고 고가 브랜드 옷을 입으면 위화감 조성한다고 욕할 거다. 우리 사회가 권력자 아내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건 개인에 대한 인격모독이 아니라 당당한 정치적 의견 표출이라는 괴이한 집단의식이 있는 데다, 인간이란 유명인 험담을 나누며 힐링을 얻는 존재이기에 김 여사 앞날은 가시밭길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순 없다.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대통령을 뒤에서 조용히 챙기는 내조로만 한정 짓는 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옳지 않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김 여사 역시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백악관은 홈페이지에 영부인의 일정 등 공적 활동 내용을 올린다. [사진 백악관 홈페이지 캡처]

백악관은 홈페이지에 영부인의 일정 등 공적 활동 내용을 올린다. [사진 백악관 홈페이지 캡처]

다만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공식적인 시스템으로 투명하게 진행했으면 좋겠다. '(영부인 담당) 제2부속실 폐지' 공약을 뒤집기 난처하다면 미국 백악관처럼 홈페이지에 대통령 부인 일정을 공개하는 등 다른 방법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대통령 부인에게 닥칠 수 있는 진짜 위험은 숨겨진 장막 뒤에 있다.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국정을 농단할 거라는 식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차원에서라도 모든 활동을 공개했으면 한다.

김건희 여사의 무운을 빈다. 지위와 권력을 떠나 여성으로서 참기 힘든 악랄한 마타도어에 시달렸고 앞으로도 시달릴 사람에게 오로지 같은 여성으로 느끼는 동지애다. 가장 낮은 곳으로 끌어내려져 공격받고 상처 입은 경험을 부디 이 사회의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약자들에 공감하고 그들을 보듬는 데 활용하면 좋겠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라"는 조언을 보통 사람에게 한다면 "남의 말이라고 쉽게 하네"라는 핀잔이나 듣겠지만 김 여사는 대통령 부인 아닌가. 그 자리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 힘으로, 조개가 살에 파고든 모래로 진주를 만들듯이 시련을 보석으로 갈아 내놓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