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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신굿은 한국의 재즈 즉흥연주"…'이례적 매진' 국악 공연 만든 지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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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부임한 김성국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장은 "세대별 차이가 재밌더라, '별신굿'이라는 보물찾기같은 장르를 각 세대가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했다"며 '전통과 실험-동해안' 공연을 기획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공연은 국악관현악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600여석 객석을 꽉 채웠다. 권혁재 기자

지난 2월 부임한 김성국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장은 "세대별 차이가 재밌더라, '별신굿'이라는 보물찾기같은 장르를 각 세대가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했다"며 '전통과 실험-동해안' 공연을 기획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공연은 국악관현악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600여석 객석을 꽉 채웠다. 권혁재 기자

지난 25일, ‘2022 관현악 시리즈 전통과 실험 – 동해안’ 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세종 M씨어터 600여 석엔 한 자리도 빠지지 않고 관객이 들어찼다. 뮤지컬, 유명 가수의 공연이 아닌 국악 관현악 공연으로는 이례적인 '매진'이다.

김성국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장 인터뷰

'동해안 별신굿'을 테마로 작곡가를 세대별로 4명, 그에 맞춰 거문고(허익수), 대금(류근화), 가야금(이지영), 아쟁(남성훈) 등 협연자를 모은 이날 공연은 지난 2월 부임한 김성국(51)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장의 아이디어로 이뤄졌다. 지난 22일 만난 김 단장은 “동해안 별신굿은 재즈의 즉흥연주 같은 장르”라며 “약속된 체계는 있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게, 연주자 기량에 따라 달라지는, 뜯어볼수록 놀랍고 보물찾기 같은 음악”이라며 주제로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덩기덩기덩기~' 끝없이 이어지는 "보물찾기 같은 장르"

2013년 부산 기장군에서 열린 '동해안 별신굿 풍어제'에서, 풍어제에 사용할 제물을 옮기며 길놀이를 하는 모습. 동해안 별신굿은 부산 기장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 전역에 전해져오는 음악과 민속놀이 장르다. 중앙포토

2013년 부산 기장군에서 열린 '동해안 별신굿 풍어제'에서, 풍어제에 사용할 제물을 옮기며 길놀이를 하는 모습. 동해안 별신굿은 부산 기장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 전역에 전해져오는 음악과 민속놀이 장르다. 중앙포토

동해안 별신굿은 해안가 마을에서 배를 타고 나간 선원들의 안전을 빌거나,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마을 전체가 굿을 하며 펼치던 국악의 한 장르다. 부산 기장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 전역에서 전해진다.

‘덩기덕 쿵더러러러’ 정도 길이로 끝나는 장단이 아니라, 서양식 기보로 치면 40마디 정도 이어지는 긴 장단이 변주에 변주를 더하며 이어지는 형식이 별신굿 장단이다. 김 단장은 “예를 들어 서양에서 왈츠는 ‘쿵짝짝’ 한 단위가 반복되지만, 이게 별신굿으로 풀면 똑같은 3박 틀 안에서 ‘덩기덕 쿵기덕 쿵더더덕 덕쿵딱 덩기덕 쿵기덕 쿠웅딱 저긍정정 저긍정정 저저정저저정저저정 정저정저저저정~’하며 장단 자체가 무한히 변주된다”며 “소리의 크기, 소리의 밀도를 가지고 놀면서 타악기만으로 내는 장단을 해외에서도 흥미로워한다”고 전했다.

"세대변화 재밌더라, '별신굿' 보물은 어떻게 다르게 느낄까 궁금"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전통과 실험-동해안' 프로그램. 20대 작곡가가 '천안함 사건'을 다룬 곡을 쓴 데 대해 김 단장은 "비슷한 또래의 장병들이 있는 사건이라 공감대를 갖는 것 같았다"며 "작곡가의 개성과 생각을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하고, (혹여 공연 외적인 논란이 있을 수도 있는 지점이지만) 그대로 공연에 올렸다"고 설명했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전통과 실험-동해안' 프로그램. 20대 작곡가가 '천안함 사건'을 다룬 곡을 쓴 데 대해 김 단장은 "비슷한 또래의 장병들이 있는 사건이라 공감대를 갖는 것 같았다"며 "작곡가의 개성과 생각을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하고, (혹여 공연 외적인 논란이 있을 수도 있는 지점이지만) 그대로 공연에 올렸다"고 설명했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김성국 단장은 “제 아이들이 대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인데, 애들이 사용하는 줄임말을 알아듣질 못하겠지만 그런 세대변화가 재밌더라”며 “같은 별신굿을 세대마다 느끼는 게 다를 것 같은 궁금함에 정혁(24), 손다혜(37), 토머스 오스본(44), 김대성(55) 작곡가를 섭외했다"고 밝혔다.

그중 20대 작곡가 정혁은 2010년 천안함 사건을 다룬 곡을 썼다. 자칫 곡 외적인 부분으로 입방아에 오를 수도 있는 테마지만 김 단장은 “그는 (사건 당시 사망한 장병들과) 비슷한 세대라 더 공감대를 갖는 것 같았다”며 “나도 태생적으로 작곡가로서, 작가의 개성과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대로 공연에 올렸다”고 말했다.

미국인인 토머스 오스본 작곡가는 ‘거문고 연주자 허익수와 협업을 하고 싶다’고 콕 집어 요청을 했다고 한다. 김 단장은 “서양인들이 한국적 재료, 국악과 국악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오스본의 독특한 컬러로 들을 수 있는 곡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음악의 어머니라는데 왜 머리가 뽀글뽀글하고 눈이 파랗지? 했다… 우리 것 평소에 키워놔야"

2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는 김성국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단장. 권혁재 기자

2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는 김성국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단장. 권혁재 기자

김성국 단장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음악 선생님이 건넨 황병기 명인의 가야금 연주 테이프 하나를 듣고 ‘이걸 만들어야겠다’고 처음 결심했다. 이후 중앙대 작곡과에 입학해 25년 동안 국악 외길을 걸었다.

최근 있었던 국악 교육과정 축소 논란 등 국악계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데 대해 김 단장은 “우리 스스로가 평상시에 존중하고 잘 키워놓아야 이런 글로벌 시대에 세대를 이어가며 전해지고 더 좋은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다”며 “그런데 그걸 교육과정에서 경험해 볼 기회조차 사라지는 건 대단히 아쉬운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어릴 때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어머니는 헨델’이라고 배웠다”며 “당시에 ‘우리 어머닌데 왜 머리가 뽀글뽀글하고 눈이 파랗지?’ 하고 막연히 의아해했는데, 지나고 보니 너무 치욕적인 거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양음악에서 모차르트, 베토벤을 빼고 일본음악, 중국음악을 교과과정으로 두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알게 모르게 교육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게 중요한데, 이게 받쳐지지 않으면 우리 음악도 문화도 세계적으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김 단장은 유학차 다녀왔던 중국을 예로 들어 “중국은 아침 체조, TV 등 일상생활에서 전통음악이 흔하게 들린다”며 “‘중화민국’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문화가 중심에 있다고 확고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부러웠다”고 말했다.

"해외 버스킹도 늘고, 해외서 국악 재발견 중"

다양한 콘텐트 붐이 일면서 국악계도 위기의식이 늘어나고 있다. 김 단장은 “판소리 등 특정 장르는 잠깐 주목받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국악 관현악’은 특히 대중은 잘 모르고 관심이 없다”며 “오히려 해외에서는 ‘국악’을 새로 발견하는 단계고, 점점 더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여행이 자유롭던 시기에는 방학 동안에 해금·대금·가야금 등을 들고 해외로 가서 버스킹 연주를 다니는 학생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였다고 한다. 그는 “안숙선·황병기 등 과거 스타 연주자들처럼, 새로운 스타 연주자가 나오면 국악에 대한 관심도 좀 달라질 것 같긴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단장으로 있는 동안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을 압도적인 대한민국 1등, 들으면 딱 아는 악단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9월에는 서양 악기를 더한 ‘믹스드 오케스트라’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그는 “‘국악작곡’을 해왔다고 생각하지 않고, ‘작곡’을 하는데 한국 악기가 중심이었을 뿐”이라며 “다양한 악기와 연주자로 새로운 재료,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재밌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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