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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 숨은 영웅' 김용실·김영준…"마지막 모습" 기록한 마산고 후배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15의거 당시 희생된 12인 열사. 추모 책자 캡처

3·15의거 당시 희생된 12인 열사. 추모 책자 캡처

3·15 희생 두 마산고 학생…후배들 추모 책자 내다

62년 전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에 항거해 일어난 3·15의거의 숨은 영웅을 재조명하는 추모 책자가 최근 발간됐다. 당시 마산고 학생으로 의거에 참여했다가 숨진 김용실·김영준 열사를 학교 후배들이 재조명하고 나선 결과다.

마산고등학교 총동창회는 지난 24일 『마산고등학교 1960년 3월 15일 – 김용실·김영준 열사를 재발견하다』라는 제목의 추모 책자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편찬위원회는 책자 머리말에 ‘1960년 3월 15일 산화한 김용실(21회) 열사와 김영준(19회) 열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3·15민주묘지에 봉안된 김용실 열사의 영정사진과 위패. 추모 책자 캡처

국립3·15민주묘지에 봉안된 김용실 열사의 영정사진과 위패. 추모 책자 캡처

김용실 열사, 친인척에 인사 건넨 뒤 현장으로…

1960년 당시 마산고 1학년 B반 급장이었던 김용실 열사. 그는 3월 15일 부정선거 당일 할머니 투표권이 나오지 않자 추산동 동사무소에 항의차 방문했다. 그는 이날 할머니의 투표권을 다른 사람이 행사했다는 사실에 격분해 의거에 나섰다가 경찰이 쏜 총탄에 머리를 맞고 숨졌다.

이번 추모 책자에는 기존에 알려진 사실과 함께 새로 고증된 내용들이 더해졌다. 이날 김용실 열사가 의거에 참여하기에 앞서 마산에 살던 고모들과 외삼촌 등 친·인척 집을 일일이 찾아 인사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당시 상황을 증언한 고종사촌 박종근씨는 “알고 보니 용실이는 모든 친척 집을 찾아가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날 3·15 데모에 나가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고 전했다.

국립3·15민주묘지에 봉안된 김영준 열사의 영정사진과 위패. 추모 책자 캡처

국립3·15민주묘지에 봉안된 김영준 열사의 영정사진과 위패. 추모 책자 캡처

김영준 열사, 어머니와 약속 접어두고 의거 참여

책자에는 의거 며칠 전 마산고를 졸업한 김영준 열사의 내용도 담겨 있다.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인 그는 1946년 월남했다가 6·25전쟁이 나자 마산으로 이사와 살고 있었다. 공대 진학을 꿈꿨던 그는 “5년 뒤 어머니를 비행기에 태워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평소 온순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기억된 그가 의거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어머니조차 의거 당일 사라진 아들을 찾아보라는 이웃의 말에 어머니는 “우리 애는 그런 데 안 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시위에 참여한 김영준 열사는 경찰이 쏜 총탄에 하복부를 관통당했다. 도립마산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흘 뒤인 3월 18일 숨졌다.

『마산고등학교 1960년 3월 15일 ? 김용실·김영준 열사를 재발견하다』 표지. 마산고등학교총동창회

『마산고등학교 1960년 3월 15일 ? 김용실·김영준 열사를 재발견하다』 표지. 마산고등학교총동창회

“고귀한 희생정신 동등하게 조명돼야”

편찬위는 두 열사를 재조명한 이유에 대해 “3·15의거라고 하면 김주열 열사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어 당시 부정선거에 온몸으로 맞섰던 시민들의 저항정신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망자이든 부상자이든 다른 모든 희생자도 김주열 열사만큼 널리, 그리고 제대로 알려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책자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김주열 열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인물이다. 1960년 당시 전북 남원이 고향이던 그는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마산에 머물던 중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 이후 실종된 그는 27일 만인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혀 숨진 채 발견됐다. 분노한 마산 시민들이 시위를 일으켰고, 이것이 4·19혁명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0년 4월 11일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발견된 고 김주열 열사. [중앙포토]

1960년 4월 11일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발견된 고 김주열 열사. [중앙포토]

당시 옛 경남 마산(현 창원시)에서는 김주열 열사를 비롯해 1만 명이 넘는 시민이 3·15의거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250여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거나 체포·구금돼 고문을 당했다. 당시 의거에는 김용실·김영준 열사를 포함해 강융기, 김삼웅, 김영길, 김영호, 김종술, 김주열, 김평도, 김효덕, 오성원, 전의규 등 12인의 열사가 숨졌다.

편찬위원장인 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는 “3·15의거는 (김주열 열사 외에도) 당시 거리에 나온 모든 시민 희생과 헌신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꽃다운 젊음을 조국의 민주화와 맞바꾼 열사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제대로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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