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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PGA 우승 전인지, 대회 직전 은퇴까지 생각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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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컵을 안고 있는 전인지. [AFP=연합뉴스]

우승컵을 안고 있는 전인지. [AFP=연합뉴스]

“이제 골프 그만하고 은퇴할래?”

지난 20일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이 열리는 워싱턴 D.C.로 가던 중 한 식당에서 전인지의 코치인 박원 JTBC골프 해설위원이 물었다.

박 위원은 “최근 2경기에서 인지가 열정 없이 경기하더라. 이렇게 시간을 보내느니 은퇴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의견을 물었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혼신의 힘을 다한 US오픈에서 15위에 그친 후 맥이 빠진 상태였다. 벌써 미국 생활 7년이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전인지는 가시 돋친 인터넷 댓글에 상처를 받았고, 어머니 대신 자신을 키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외로움이 커졌다. 향수병에 우울증 증세를 겪었다. 전인지는 지쳐 있었다.

전인지는 27일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그 말에 대답하지 못 했다. 힘들지만 스폰서와 팬들 응원에 보답은 하고 그만두려 했는데 코치 선생님이 은퇴라는 말을 꺼내니 당황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언니에게 전화를 해 울기만 했다. 전인지는 “언니에게 ‘내가 왜 미국까지 와서 이렇게 해야 하나 서럽다’고 했다. 언니도 함께 울면서 ‘골프가 중요하지만 너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그만두고 싶으면 바로 그만두라’고 했다”고 전했다.

전인지는 “그렇게 쉽게 그만두고 싶지는 않은데 너무 단호해서 서운하기도 했다. 쉽게 그만둘 거면 내가 왜 지금까지 버틴 거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그만두고 싶은 게 아니라, 어리광 부리고 알아주는 사람이 필요한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세상일에 감사하게 됐다. 전인지는 이번 대회에서 표정이 밝았다.

전인지(가운데)와 그의 코치인 박원 JTBC골프 해설위원(왼쪽). [AFP=연합뉴스]

전인지(가운데)와 그의 코치인 박원 JTBC골프 해설위원(왼쪽). [AFP=연합뉴스]

전인지는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첫날 8언더파를 쳤다. 2위와 무려 5타 차였다. 코스가 어렵다고 난리가 난 코스에서 그는 무아지경의 집중 상태 속에서 경기했다.

점수 차가 커 전인지가 우승할 것 같은 분위기의 기사가 나왔다. 2라운드에서 3언더파를 더해 6타 차 선두가 됐다. 경기 내용이 1라운드만은 못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36홀 6타 차 선두는 뒤집힌 적이 없다는 통계 등이 나왔다.

좋은 게 아니다. 전인지로서는 절대 뒤집혀서는 안 되는 게임이 됐다. 엄청난 부담감이 생기고 집중력이 깨졌다.

전인지는 3라운드에서는 3타를 잃어 3타 차 선두가 됐다.

차근차근 올라간 상승세의 3타 차 선두는 잡기 어렵다. 그러나 비틀거리는 3타 차 선두라면 매우 좋은 사냥감이다. 추격자들의 면면도 만만치 않았다. 메이저 우승자인 렉시 톰슨, 하나 그린, 김세영, 이민지가 추격권이었다. 패기 넘치는 루키 최혜진과 아타야 티티쿨도 근처에 어슬렁거렸다.

전날 밤 박원 위원은 전인지에게 “이번 대회에서 할 건 다 했다. 무아지경 속 코스레코드를 쳤고 망신당하면 어떻게 하나라며 긴장감 속에 경기도 했다. 남은 것은 재미있게 치는 것 하나밖에 없다. 결과를 의식하지 말고 안 맞을수록 더 재밌고 즐겁게 치자. 그러면 기회가 온다”라고 했다.

전인지는 티오프 직전 “정말 그 말 믿어도 되죠”라고 물었다.

쉽게 가지는 않았다. 전인지는 6번 홀까지 보기 3개를 했다. 동반자인 렉시 톰슨이 버디 2개로 역전했다. 9번 홀 까지 전인지는 4타를 잃어 공동 2위 그룹 중 한명이었다. 흐름으로 봐서는 10위 혹은 그 이상으로 밀려날 것 같았다. 메이저대회 최종라운드에서 왕창 무너지면 복구하기가 거의 어렵다.

그러나 전인지의 표정은 밝았다. 전인지는 “게임 플랜을 유지하려고 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과정을 즐기느냐에 따라서 쫓아오는 것이니까 그런 생각들보다 나를 믿고 과정을 즐겨보자고 생각하고 플레이했었다”고 공식 인터뷰에서 말했다.

메이저대회에서 많은 역전패를 당한 톰슨은 주로 짧은 퍼트에 긴장해 마지막 7개 홀에서 보기 4개를 했다. 전인지는 한 타 차 우승자가 됐다.

밝은 표정도 도움이 됐다. 선두를 놓쳤으면서도 밝은 표정을 유지한 전인지에 대한 미국 팬들이 응원이 더 많았다고 한다. 미국 선수인 톰슨으로서는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랜카스터 자선행사에서 장학금 수혜자 등과 함께 한 전인지. [사진 LPGA]

지난해 랜카스터 자선행사에서 장학금 수혜자 등과 함께 한 전인지. [사진 LPGA]

전인지는 28일부터 사흘간 펜실베이니아 주 랜캐스터의 자선 행사에 간다. 전인지가 2015년 랜캐스터에서 열린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할 때 그를 응원해준 지역 커뮤니티를 위해 자선 재단을 만들었다.

골프장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캐디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한다. 전인지는 “우승컵을 가져갈 수 있게 되어서 더욱 즐겁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경기 후 울음에 대해 “해냈다, 끝냈다는 생각 때문에 울었다. 솔직히 안 울려고 했다. 이 전 우승한 대회에서 너무 많이 울어서, 이번 대회도 울면 너무 울보 같다고 생각을 해서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눈물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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