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뜰보리수는 왜 남들보다 빠르게 열매 맺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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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한 달 내내 비가 거의 오지 않고 가물어서 걱정이 많았죠. 다행히 6월이 되면서 비가 몇 번 와서 가뭄 해갈이 좀 되었어요. 제때제때 맞춰서 비가 오면 좋겠지만 애를 태우고 나서 비가 오니 조금은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비가 오긴 옵니다. 그래서 농사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게 해주죠. 이런 자연의 리듬이 참 경이롭습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되면 보다 더 더워지고, 이렇게 늘 변화하고 그 변화에 맞춰 생장하고 번식하며 적응해서 살아가는 자연의 모습은 새삼스레 감탄을 자아내지요.

이른 봄, 많은 풀이 먼저 꽃을 피우고 번식을 준비합니다. 나무는 풀에 비해서는 조금은 더디 움직이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다 느린 건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행동이 빠른 나무들이 있죠. 아직 6월밖에 안 됐는데 벌써 열매가 익어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산딸기·뽕나무·앵두나무·벚나무·보리수나무 등이죠. 이번에는 보리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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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보리수’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건 바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나무일 텐데요. 그 보리수는 인도무화과 중에 한 종류로 학명은 'Ficus religiosa'예요. 앞의 'ficus'는 무화과라는 뜻이고 뒤에 'religiosa'는 종교적이란 뜻입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런 학명이 생길 만도 하죠. 이 보리수는 사실 우리나라에 사는 보리수와는 다른 식물이에요.

고대 인도어를 산스크리트어라고 합니다. 우리는 ‘범어’라고도 하지요. ‘찰나’ ‘나락’ ‘아수라’ 등 불교적 용어가 많은데요. 산스크리트어로 ‘깨닫다’는 단어가 ‘보디’입니다. 거기에 ‘나무 수(樹)’를 합해서 보디수라 한 것을 중국에서 한자로 ‘보제수(菩堤樹)’라 적고, 우리는 ‘보리수’라고 부르게 된 거죠. 우리나라 자연환경에서는 인도의 보리수가 자랄 수 없어 그것과 닮은 피나무(보리자나무·달피나무)를 심고 보리수라고 부른 경우가 많아요.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 역시 인도 보리수가 아닌 유럽 피나무입니다. 독일어로는 ‘린덴바움(Lindenbaum)’이라고 하죠.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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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보리수도 있습니다. 빨갛게 익어가면서 단맛과 신맛, 떫은맛도 좀 있는 빨갛고 타원형의 열매꼭지가 길게 달리는 나무죠. 이 나무가 바로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 보리수예요. 앞서 나온 보리수와 달리 보리수나무과에 속하죠. 언뜻 보면 산수유하고도 닮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헷갈리기도 하는데요. 열매를 입에 넣고 꼭지를 당기면 씨가 쏙 빠집니다. 그 씨앗 모양을 자세히 보면 보리를 닮았어요. 그래서 보리수라고 이름 지었다고도 합니다.

자연에서 만나는 보리수보다 타원형으로 더 큰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을 ‘뜰보리수’라고 해요. 주택가나 공원 등에 심어진 것은 대부분 뜰보리수입니다. 많은 열매가 가을에 익는데 이 뜰보리수는 6월에 익습니다. 초록색에서 주황색 그리고 빨간색으로 익어가는데 덜 익은 열매는 무척 시고 떫지만 잘 익은 것은 말랑말랑하고 단맛이 강합니다. 새들도 아주 좋아해서 어떻게 보면 새를 겨냥해서 만들어낸 열매라고도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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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뜰보리수나무 열매는 이른 여름에 익는 걸까요? 일 년 사계절 중에 동물들이 겨울 준비로 가장 바삐 음식을 먹어두거나 저장하는 때가 가을입니다. 그래서 많은 열매가 가을에 맞춰서 익어가죠. 하지만 동물들이 가을에만 먹는 건 아니에요. 늘 먹어야 해서 어느 때고 먹을 만한 것들은 필요하죠. 뜰보리수나무 같이 일찍 익는 열매들은 그런 틈을 노립니다. 다른 나무들보다 먼저 열매를 성숙시켜서 어느 누구보다 먼저 멀리멀리 씨앗을 이동시키려는 거지요.

오랜 시간 열매를 매달고 있으면 번식 확률도 그만큼 높아집니다. 그렇다고 모든 나무가 일찍 열매를 맺어 익지는 않습니다. 누구는 빨리 익고 누구는 천천히 익는 것이죠.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속도를 갖고 있습니다. 빠른 것이 유리하다, 느린 것이 유리하다 말하기 어려워요. 혹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면서 그 사람들의 속도에 맞추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나요? 저마다 자기만의 속도가 있으니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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