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병 늘어놓고 숨진 노모와 아들…0.06%뿐인 재택의료 현실

중앙일보

입력 2022.06.27 05:00

업데이트 2022.06.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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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3월 서울 강남구의 하나이비인후과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화상전화를 통해 진료 하는 모습.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 2월 이후 코로나 환자가 1802만회 전화(화상)진료를 받았다. 하나이비인후과 제공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3월 서울 강남구의 하나이비인후과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화상전화를 통해 진료 하는 모습.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 2월 이후 코로나 환자가 1802만회 전화(화상)진료를 받았다. 하나이비인후과 제공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김모(49)씨는 3년 전부터 고혈압·당뇨병·척추통증 때문에 늘다봄의원에 다녔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말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번지자 비대면진료를 신청해 네 차례 전화 진료를 받았다. 집에서 혈압·혈당을 측정해 알려주면 원장이 확인하고 병세를 체크했다. 원장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저염식 먹되 절대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김 씨는 "낮에 일 때문에 병원 가기 쉽지 않은데 저녁에 전화진료를 받으니 좋다"며 "대면진료와 (진료의 질에) 차이가 없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전화진료를 하면 반나절을 아낄 수 있어 계속 이용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병원 원장은 "오래 다닌 환자는 병력·생활습관 등을 잘 아니까 전화진료 해도 문제 없다. 저녁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의료가 불쑥 찾아왔다. 비대면진료·원격진료 등의 이름으로 수요가 폭발했다. 2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2월 이후 코로나 환자가 1802만회 전화진료를 받았다. 감기·급성기관지염·알레르기비염·고지혈증·고혈압·당뇨병 등의 비코로나 환자도 512만회나 이용했다. 원격진료 플랫폼 기업 닥터나우를 통해 탈모·질염 등의 드러내기 싫은 질환 환자도 적지 않게 이용했다. 진료 받으려면 병원에 가는 게 상식이었지만 여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전화진료(일부는 화상진료)는 코로나 때문에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2년 반 동안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환자도, 의사도 되돌리기 힘든 상황이 됐다. 그간 원격의료에 강하게 반발해온 의료계도 "협의 가능"으로 입장을 바꿨다. 윤석열 대통령도 '상시적 관리가 필요한 환자에 대해 일차의료 중심의 비대면 진료 제도화 추진'을 110대 국정과제에 넣었다. 재택의료는 환자가 집에서 진료 받는 형태이다. 전화진료와 달리 의료진이 환자 집으로 가는 재택의료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왕진·방문간호·장애인주치의 등 6가지 유형이 시행되고 있다. 비대면 시대를 맞으면서 재택의료가 크게 늘긴 했지만,의료 전체 통계로 보면 아직까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지난해 5만7492명(중복 가능)이 방문진료를 받았고, 649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들어갔다. 전화진료 건보지출(349억원)을 더하면 998억원이다. 건보·장기요양보험 지출(105조원)의 0.095%, 건보·자동차보험·민간보험 등을 더한 국민 의료비(162조원, 2020년)의 0.06%에 불과하다. 보건소의 방문건강관리사업을 포함해도 0.1%대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초고령화와 기대수명 연장, 1인 가구 급증 등으로 재택의료가 필요한 환자가 급증한다. 서울시의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3만2825명 가운데 질병을 앓는 사람이 1만5003명(49.2%), 장애인이 2713명(8.2%)이다. 건보 통계를 종합하면 왕진·전화진료 등을 받은 환자는 치매·욕창·고혈압·등통증·당뇨병·뇌경색·파킨슨병 등 매우 다양하다. 중증 장애인·정신질환자도 적지 않다. 당장 입원은 필요없지만 주기적인 의료 처치가 필요한 환자이다. 정혜진 우리동네 30분의원 원장은 "와상 환자 소변줄 하나 갈려고 119 불러서 침대째로 이송한다. 가족 2명 이상이 하루를 다 비워야 하는데 의료인이 가면 해결된다"며 "항암치료 중인 환자, 소변줄·콧줄 등의 카테터(소변 등을 배출하거나 영양액을 주입하는 관)를 달고 있는 환자 등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고경심 서울36의원 원장(오른쪽)과 이정선 간호실장(왼쪽)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혜화동의 한 가정을 방문해 상담 후 진료를 보고 있다. 강정현 기자.

고경심 서울36의원 원장(오른쪽)과 이정선 간호실장(왼쪽)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혜화동의 한 가정을 방문해 상담 후 진료를 보고 있다. 강정현 기자.

 전국에 7만여개의 의료기관이 있지만 방문의료를 제공하는 데는 왕진 138곳, 중증소아재택의료 시범사업 4곳, 가정호스피스 38곳, 장애인주치의 640명 등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유는 제도 미비 탓이다. 왕진은 그동안 건보 수가가 없어서 의사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시범사업 수가를 만들었지만 진료실의 의사를 끌어낼 정도가 못 된다. 의사도 진료실로 오는 환자에 익숙하지 재택의료는 낯설다. 장기요양보험은 방문요양 위주로 설계돼 있어 방문간호는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극과 극의 현장이 나타난다.

#지난 4월 2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82세 노모와 51세 아들이 숨진지 한 달 여만에 발견됐다. 현장에는 고혈압·진통제 등의 약병이 늘려 있었다. 아들이 심장병(부정맥)으로 먼저 숨지고, 이후 노모가 심근경색(심장마비)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노모의 관절이 너무 좋지 않아 몇 년째 누워만 있었던 것 같다. 노모의 심장도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을만큼…."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고혈압 약을 누가 먹었는지, 제대로 먹었는지 알려진 게 없다. 약 몇 개에 의지하는 사이에 모자의 심장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진이 환자를 찾아가는 제도가 거의 없는데다 (있어도) 현실적으로 잘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자립생활주택에 사는 발달장애인 이모(39)씨는 지난 3월 세브란스병원에서 욕창 수술을 받았다. 대중교통 이용을 두려워해 통원 치료가 쉽지 않았다. 엉덩이 욕창이 도졌고 서울36의원에 왕진을 요청했다. 취재진이 두 차례 동행했다. 지난 8일 욕창 하나는 2.5㎝에서 2㎝로, 나머지는 1.5㎝에서 1㎝로 줄어있었다. 이씨는 고경심 원장과 이정선 간호실장 앞에서 가수 장윤정의 '사랑의 콩깍지'를 불렀다. 고 원장은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선 "하루에 2~3회 엎드려서 사랑의 콩깍지를 10번 불러라"라고 당부했다. 이씨를 돌보는 최민지 활동가는 "새로운 사람이 와서 얘기를 들어주니 정서적으로 자극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의사·간호사님이 잘 돌봐줘 행복하다. 감사 편지를 쓰겠다"고 말했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한국은 3년 후 초고령사회가 돼 5명 중 1명이 노인이 된다. 병원을 이용하기 어려운 노인이 늘 수밖에 없다"며 "환자가 집에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고, 편히 임종하려면 재택의료 확대가 필수적이다. 이번 코로나를 계기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1차 의료기관(주로 동네의원을 지칭)이 방문진료·방문간호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통합적인 의료·동봄 서비스 기관으로 변화해야 한다"며 "외래진료에만 매여 있으면 지역사회 통합 의료·돌봄 대상자를 제대로 케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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