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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못받아요, 일할 사람 없어서" 사라진 알바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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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롯데시네마 매점엔 일하는 사람 2명이 계산을 하거나 팝콘을 담으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엔 표를 검사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지정된 좌석에 앉아달라”는 안내문만 붙어있었다. 이달 초 서울 송파구의 영화관을 찾은 김모(43)씨도 "상영관을 찾아 들어가고 자리에 앉기까지 표를 확인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했다.

23일 오후 10시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롯데시네마 상영관 입구에 검표원은 없고, 셀프체크인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정진호 기자

23일 오후 10시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롯데시네마 상영관 입구에 검표원은 없고, 셀프체크인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정진호 기자

롯데시네마는 전 극장에 검표원을 두지 않는 자율입장제를 실시하고 있다. 메가박스·CGV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들도 일부 지점에선 자율입장으로 검표원 없이 운영하기로 했다. 매점 운영만으로도 인원이 빠듯한 상황에서 표 검사를 하는데 한 사람이 빠져있는 것만으로 업무 부담이 커져서다. 메가박스·CGV·롯데시네마 등 주요 극장 체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보다 70~90% 수준의 매장 인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구인공고는 늘 올라와 있는 상태다.

호텔·식당 등 구인난 ‘직격탄’

서울 강남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손모(45)씨는 2층짜리 식당의 1층에만 불을 밝혔다. 최근 거리두기 해제로 손님은 늘어났지만, 일할 사람을 뽑지 못해 2층에는 손님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2층을 오픈하지 못하다 보니 예약 문의를 거절하기 일쑤”라며 “시급을 올려도 지원자가 없다 보니 알바천국·알바몬 같은 곳에서 계속 새로고침 하면서 이력서가 올라오는 족족 혹시 일할 생각 있냐고 먼저 물어보고 있다”고 말했다.

26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영화관뿐 아니라 호텔·음식점·카페 등 대면 서비스업의 구인난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지난 4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2년 1개월 만에 해제된 이후 손님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일손은 이전만큼 충원되지 않으면서다. 서비스업 관계자들은 “안 뽑는 게 아니라 못 뽑는 것”이라며 “구인 공고를 계속 내고 있지만, 이전만큼 지원자가 없다”고 토로했다.

①노동수요 폭증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고용 수요가 갑자기 폭증했다. 팬데믹 전까지는 작은 폭의 변동이 있긴 했지만 일정 수준의 아르바이트생이 꾸준히 유지됐다. 그러다 코로나19 확산 때는 큰 폭의 인력 감축이 있었고, 이들은 고용 시장을 떠났다. CGV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알바생 규모는 2019년 대비 절반 수준이었다”며 “거리두기 해제 1주일 전부터 다시 채용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거리두기 해제 이후 대부분의 서비스업종에서 일제히 고용을 늘리려고 하다 보니 노동공급이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별 업체 입장에선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24일 구인구직 플랫폼인 알바천국에 올라온 영화관 메가박스와 호텔 관련 구인 공고. [알바천국 캡처]

24일 구인구직 플랫폼인 알바천국에 올라온 영화관 메가박스와 호텔 관련 구인 공고. [알바천국 캡처]

②플랫폼 일자리

플랫폼 노동 시장이 급격히 성장한 영향도 있다. 이전까지는 없거나 일자리가 많지 않았던 배달업 같은 플랫폼 시장이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급격히 커졌다. 고정된 시간에 일해야 하는 서비스업이 원하는 때 근무가 가능한 플랫폼 노동에 비해 매력도가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자로 꼽히는 배달원은 지난해 하반기 기준 42만8000명으로 1년 새 9.7%가 증가해 역대 최다였다.

서비스 산업에서 비대면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스마트폰을 들고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찾고 돈을 버는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유목민)’가 늘어나면서 대면 서비스 업종의 인력난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③인구 감소

청년 인구가 감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15~29세 인구는 859만5000명이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같은 달엔 907만3000명이었다. 15~29세는 대학생·취업준비생 등이 포함돼 대면 서비스 관련 아르바이트를 가장 활발히 하는 연령대다. 청년 인구는 꾸준히 감소세이긴 했지만, 올해만 전년 대비 20만4000명(2.3%)이 줄어드는 등 그 속도가 최근 들어 빨라졌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④대학 정상화

코로나19로 누리지 못했던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3년 만에 대면수업과 대학 축제 등이 재개되다 보니 대학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두 신입생이 된 기분으로 학교에 간다는 것이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전에 알바생은 대학 2·3학년이 많았는데 이들이 신입생처럼 술 마시고 동아리 활동 등을 즐기느라 지원을 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⑤MZ세대 특성

청년 세대 인구는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이른바 ‘Z세대’가 그 주를 이루고 있다. 이전과 동일한 단순노동에서의 파트타임 근무는 젊은 세대 특성상 기피한다는 분석도 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얼마 안 되는 시급보다 자기 시간이 확보되거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활동에 익숙해진 세대다 보니 대면 서비스업을 어려워한다는 업계의 분석도 나왔다.

“인구구조·세대 변화 반영해야”

영화·호텔·카페·주점 등 대표적인 서비스업종이 구인 대상을 청년으로 한정해선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유럽처럼 중·장년층의 서비스 제공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구구조가 변함에 따라 문화가 바뀌어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윤 교수는 “중년이나 시니어를 고용해 구인난을 해소하는 것과 함께 MZ세대에 맞춘 대책이 필요하다”며 “미국은 파트타임에서 시작해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으면 지점장·점장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처음 출발을 어떻게 하느냐에서 결정되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요즘 세대는 일을 하면서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에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비정규직 개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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