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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상욱의 미래를 묻다

우주 거버넌스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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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누리호 이후의 우주 개발 

박상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박상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순수 국내 기술 우주 발사체 누리호 발사 성공!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연구자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발사체 개발을 뚝심 있게 지원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박수받아 마땅하다. 우주 발사체 개발은 임무중심형 연구개발의 대표적인 사례다. 과기정통부는 재정당국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회의론을 무릅쓰고 지난 10여 년간 약 2조원의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했다. 약 5200억원이 투입된 나로호까지 치면 다섯 정부에 걸쳐 20년 가까이 한국형 발사체를 개발해 왔다. 이런 장기 프로젝트를 끌고 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연구개발 시스템이 강대국형으로 진화했다는 방증이다. 당장 돈 되지 않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감당할 국력을 갖춘 것, 과학기술을 끊임없이 지지하고 성원하는 국민이 있는 것도 성공의 필수 요건이었다.

누리호는 실용성보다는 상징성이 더 크다. 코로나에 지친 국민을 기쁘게 한 고양 효과가 값지다. 누리호는 1.5t 정도의 탑재물을 지구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중형 발사체다. 본격적인 상용 로켓으로서의 경제성이나 경쟁력과는 거리가 있다. 내년으로 예정된 3차 발사를 포함해 몇 차례 더 쏘아 올리겠지만 이는 경험 축적과 양산 기술 확보 차원일 것이다. 누리호로 세계 위성 발사 시장에 출사표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기술 발전에 따라 위성이 소형화하고,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처럼 다수의 저궤도 위성을 이용하는 식의 트렌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위성 발사 시장에서 갓 데뷔한 발사체가 신뢰를 얻기는 요원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한 번에 위성 수십 기씩 펑펑 쏘아 올리는 선진 민간업체의 대형 로켓과는 단가 경쟁이 되지 않는다. 한국보다 훨씬 앞서 발사체를 개발한 일본도 자국 과학위성이나 탐사선 발사에 사용할 뿐 상용 위성 발사 시장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누리호에 사용된 케로신 연료 가스발생기 사이클 엔진은 좋게 말해 검증된, 가성비가 좋은 기술이지만 최첨단 엔진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누리호 성공, 발사체기술 추격 첫발
세계 각국들 “우주는 성장동력”
세계와 경쟁할 차세대 발사체 필요
실효성 갖춘 우주 전담부처 있어야

발사체 개발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알게돼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된 한국형 최초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지난 21일 오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지휘통제소에서 연구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된 한국형 최초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지난 21일 오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지휘통제소에서 연구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누리호의 진정한 가치는 우주 발사체 기술에서 추격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데 있다. 일반적인 산업기술 분야에서 추격은 기술 도입과 국내 생산을 통한 모방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런 패턴은 간단한 가전제품부터 복잡한 체계 기술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통용된다. 예를 들어 한국형 고속전철은 프랑스의 테제베, T-50 고등훈련기는 미국 록히드마틴의 기술을 도입해 시작한 것이다. 독자 개발에 비해 단기간에 확실히 기술을 습득해 빠르게 추격할 수 있는 ‘후발자의 이익’이 존재한다.

우주 발사체는 다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다를 게 없어 전략무기 기술로 취급돼 확산이 금기시된다. 동맹국에도 기술이전을 해 주지 않아 미국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야말로 맨땅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주 기술은 다른 분야에 기술적 파급효과가 크지만, 역으로 다른 기술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소련과 미국이 1950년대에 개발한 기술을 21세기 산업 강국 대한민국이 어려워하는 이유다. 앞서 나로호의 1단 로켓 엔진은 러시아제 완제품을 사다 쓴 것이다. 나로호의 의의는 어깨 너머로 배운 로켓엔진 기술 자체보다 엔진부터 발사대에 이르는 발사체 기술 시스템의 구성요소들과 그것들을 종합하는 방법, 개발 프로세스와 추진 체계, 그리고 필연적인 시행착오로부터 학습하는 방법을 체득한 데 있다. 독자 발사체 개발을 위해 어떤 연구 조직이, 무슨 일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차세대 발사체 개발에 탄력 붙을 듯

누리호는 한국 최초의 국책 연구사업인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을 떠올리게 한다. 1983년 개발에 성공한 TDX-1은 당시 세계 시장에 내놓을만한 첨단기술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화 수요가 폭증했고, 외산 기성품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독자 개발한 TDX의 성공은 정보통신 선도기술 개발에 도전할 자신감을 주었고 국가연구개발 추진체계를 수립했다. 이것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이동통신 기술시스템의 민관 합동 개발로 이어졌고, 이런 성공들이 쌓여 오늘날의 정보통신기술 강국을 이룬 것이다.

추격의 첫 발을 잘 디디면 도약도 가능하다. 아직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중이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후속 KSLV-III 차세대발사체 개발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일단 길에 들어서면 선진국이 밟은 모든 걸음을 차근차근 다 되짚을 필요가 없다. 단계 생략형 추격이 가능하다. KSLV-III는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을 다섯 개 묶고, 고체연료 부스터 모듈, 대형 페어링, 1단 로켓 재사용형으로의 업그레이드까지 염두에 둔 개념설계를 제안하고 있다. 최신 개념으로 바로 가는 것이다. KSLV-III 또는 IV가 상용화되는 15~20년 후에는 한국 기업이 세계 위성발사 시장에서 스페이스X·블루오리진·로켓랩 등과 경쟁하고 있을지 모른다.

발사체는 멋지고 발사는 웅장·화려하지만, 발사체 제조와 위성 발사 서비스가 우주 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위성 통신과 영상 정보 활용 등 우주 활용기술 분야의 산업 규모가 훨씬 더 크다. 발사체 개발을 더 넓은 우주 산업 육성과 연계하고, 연구개발 위주의 접근을 종합적인 접근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우주를 전담할 정부부처로 ‘우주청’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우주 개발 패러다임이 냉전기 국가간 자존심 경쟁으로부터 우주의 경제적 활용을 강조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로 전환되면서 세계 각국이 우주를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 독자 발사체나 위성체 기술이 없는 나라들도 우주청 설치에 나서는 가운데 한국은 때늦은 감마저 있다.

우주 개발 전담할 ‘항공우주청’ 신설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국정과제에 항공우주청 신설이 포함되어 있다. 우주 개발만으로 청 단위의 행정조직 구성이 쉽지 않아 이미 꽤 성장한 항공 산업을 함께 묶는 것으로 보인다. 무리 없는 조합이다. 누리호의 성공으로 항공우주청 설립에 힘이 실린다. 그런데 그 기능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신설 부처를 어디에 둘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어 안타깝다. 입지 선정에서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기 어렵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일하기 위한 최적지를 찾는 것이다. 경남 사천은 발사체 체계총조립을 맡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엔진 제작을 맡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그리고 여러 협력업체가 자리를 잡은 산업기반이 장점이다. 우주 활용 기술 분야를 생각하면 항우연·국방과학연구원·한국천문연구원·KAIST가 있고 수도권과 가까운 대전도 후보가 될 자격이 있다. 우주 분야 범부처 협력이 용이한 세종시도 후보다. 과거 박근혜 후보는 해양수산부를 부활시켜 부산에 둘 것을 공약했지만, 부활한 해수부는 정부 세종청사에 입주했다. 윤 대통령도 후보 시절 광화문 시대를 공약했지만 대통령실은 용산으로 갔다.

항공우주청에 요구되는 주요 기능은 우주산업 진흥이다. 현재 항우연이 연구개발과 협력기업 관리를 맡고 있어 사실상 에이전시로 기능하고 있다. 항우연의 숙원이 한국판 NASA(미항공우주국)가 되는 것인데, NASA는 자체 연구뿐 아니라 외부 연구 지원 및 관리와 공공조달 등을 통한 산업 진흥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정부 기구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연구 관리와 수행을 분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항우연이 에이전시로 변모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어차피 항우연으로 갈 우주 연구개발 예산이 연구관리 전문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을 거치는 이유다. 공식적인 국가대표 우주개발 에이전시가 없어 국제무대에서 협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문제도 항공우주청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과기정통부·산업부·국방부·국토부·외교부 등 여러 부처에 분산된 우주 관련 기능을 종합조정하고 부처간 연계·협력을 조율할 기구로 국무총리가 의장인 국가우주위원회가 있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다. 국가우주위원회를 활성화해 범부처 우주 정책을 맡도록 하고 항공우주청이 국가우주위원회 사무국을, 청장이 위원회 간사를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항공우주청은 집행 기능에 초점을 맞춘 조직으로 과기정통부 거대공공연구정책국 일부,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 우주기술단과 거대사업실 일부, 항우연의 사업관리 및 정책 부서, 산업부와 방사청의 관련 조직을 한 지붕 아래 모아야 한다. 국가우주개발계획 및 투자계획 수립, 연구개발사업 관리, 우주 자산 관리 및 운영, 우주 외교, 우주 기술 사업화 등의 기능을 수행토록 하고, 상위 주무부처는 창구 역할만 맡도록 해 예산상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의 동요가 우려되지만 항우연을 국가과학기술연구회로부터 항공우주청 직속으로 편제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항공우주청을 사천에 두더라도 항우연을 대전 분소로 하여 연구개발과 산업진흥 기능을 맡길 수 있다. 정부 연구개발 사업을 통해 핵심 기술을 개발하되 사업화는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 항공우주청은 진흥기관을 넘어 민관 파트너십의 플랫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박상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