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현예의 톡톡일본

미스터 엔 "1달러 150엔 가더라도, '나쁜 엔저' 아니다" 근거는?

중앙일보

입력 2022.06.2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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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지난 24일 오전 환전소들이 몰려있는 일본 도쿄(東京) 니시신주쿠(西新宿). 오전 11시에 열리는 환전소 문 앞에 외화를 엔으로 바꾸러 찾아온 사람들이 하나둘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만난 50대 한 남성은 이틀째 환전소를 찾았다고 했다. 여행업에 종사하는 그는 지난 22일 엔화가 장중 한때 1달러에 136엔 후반대에 거래되면서 ‘24년 만의 엔저(円低) 기록을 찍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집에 있는 달러와 유로·위안화까지 모두 들고 다음 날 환전소를 찾았다고 했다. 외국돈을 엔화로 바꾸려는 지인과 동행했는데 집에 있던 1000원짜리 한국 돈까지 가져와 엔화로 환전했다.

지난 24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환전소. 돈을 바꾸기 위해 손님들이 줄을 서있다. 지난 22일 외환시장에서 달러 당 엔화 가치가 24년만의 최저치인 136엔대까지 떨어진 이후 환전소에 달러 등 외화를 들고와 엔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 김현예 도쿄 특파원

지난 24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환전소. 돈을 바꾸기 위해 손님들이 줄을 서있다. 지난 22일 외환시장에서 달러 당 엔화 가치가 24년만의 최저치인 136엔대까지 떨어진 이후 환전소에 달러 등 외화를 들고와 엔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 김현예 도쿄 특파원

니시신주쿠에서 가장 큰 환전소인 인터뱅크를 운영하는 사토 고(佐藤 豪) 대표는 “엔저로 요즘 하루 150~200명의 손님이 집에 있던 외국돈을 가져와 엔화로 바꿔 간다”고 전했다.

전례 없는 엔저가 계속되고 있다. 일본 포털 사이트엔 연관 검색어로 ‘엔저 때 해야 할 것’까지 등장했다. 일본은 이 엔저를 어떻게 바라볼까. 외환위기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에서 외환정책을 총괄하면서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으로 ‘미스터 엔(Mr. Yen)’이란 별칭을 얻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 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난 21일 만났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는 지금의 엔화 가치 하락이 내년 여름까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1달러에 150엔을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 이유로 ‘나 홀로 금융완화’를 계속하고 있는 일본은행을 언급했다. 그는 최장수 총재로 꼽히는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와 옛 대장성 선후배 사이로 친분이 깊다. “구로다 총재가 회의에서 하는 발언 등을 보면 지금 상태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엔저가 지금보다 더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에서 근무하며 1090년대 후반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으로 ''미스터 엔'으로 불렸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난 21일 도쿄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현예 특파원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에서 근무하며 1090년대 후반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으로 ''미스터 엔'으로 불렸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난 21일 도쿄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현예 특파원

그는 ‘나쁜 엔저’라는 지적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엔저 원인이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금의 엔저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일본의 낮은 금리 사이에서 벌어진 금리차 때문일 뿐, ‘일본 매도(日本売り)’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14%에 달하는 엔화 가치 하락이 있었는데 일본 정부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자 “정부 입장에서는 일본 매도도 아니고, 이유가 확실한 엔저이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과 미국이 금융정책 차이에서 벌어진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김명중 닛세이 기초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위기감을 갖지 않는 것은 자신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신감의 가장 큰 배경은 60%대 지지율이다. 일본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집권 여당이 승기를 잡을 것이란 예측이 다수다. 김 연구원은 또 “일본 정부의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하지만, 관료 출신 경제학자나 관료들이 엔저에 대해 긴장감이 없는 것은 ‘일본 정부가 망할 일은 없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엔저로 인해 일본의 한 연구소는 일본이 세계에서 애플 아이폰이 가장 싼 나라가 됐다는 조사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사진은 긴자에 있는 애플 매장. 김현예 특파원

엔저로 인해 일본의 한 연구소는 일본이 세계에서 애플 아이폰이 가장 싼 나라가 됐다는 조사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사진은 긴자에 있는 애플 매장. 김현예 특파원

경제평론가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히토츠바시대 명예교수도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않는 것은 채무 초과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무제한 국채를 사들이고 있는 일본은행 입장에선 기준금리를 올리면 이자 상환 부담이 늘어나 손해가 커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말 기준 국채 잔액이 1000조엔(약 9700조원)을 넘어섰다.

미스터 엔 "일본은 경기 회복 중"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 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은 ‘미스터 엔(Mr. Yen)’으로 불린다. 일본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에서 1990년대 후반 국제금융국장, 재무관(차관급)을 지냈다. 그는 90년대 후반 당시 1달러당 79엔까지 엔화 가치가 치솟자,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과 함께 세계 외환시장에 큰 영향력을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와는 대장성 선후배 사이로 지금껏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구로다 총재에 대해선 “학창 시절에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책을 좋아한 친구”라고 했다. “같이 출장길에 오르면 나는 비행기에서 술을 마시고 잠이드는데, 구로다 총재는 늘 책을 봤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이하 일문일답

90년대 후반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에서 근무하며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으로 ''미스터 엔'으로 불렸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 사진 본인 제공

90년대 후반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에서 근무하며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으로 ''미스터 엔'으로 불렸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 사진 본인 제공

엔화가 얼마나 더 떨어질까요. 150엔대도 최근 언급한 것으로 아는데
지금 상태가 이어진다고 봅니다. 미국이 금융긴축을 하고, 일본이 금융완화를 지속하면요. 구로다 총재가 회의에서도 언급하기도 했고요. (금융완화가)이어지면 엔저가 지금보다 더 진척될테니 150엔이나 150엔을 돌파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예상입니다만.
150엔대까지 엔화 가치가 내려가면 외환위기 수준 아닌가요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미국은 금리인상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하고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 경제가 과열된 상황이고, 조금 인플레가 있으니 금융긴축에 들어간 거라 봅니다.
외부에서 보면 일본이 엔저 위기감이 없어 보입니다.
위기감이 없다고 봅니다. 이유가 확실히 있으니까요. 미국이 금리인상을 하고 있고, 이를테면 ‘일본 매도’가 아니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위기상황이 아니라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판단이라고 봅니다.
나쁜 엔저라는 평가도 있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통화가치 하락은) 일본만 그런 것이 아니고요. 일본과 미국간 금융 정책 차이에 따라 엔저가 되기도 하고 엔고가 되기도 하니까, 나쁜 엔저가 아닙니다.
구로다 총재는 왜 금융완화를 지속하나요.
일본이 경기회복 도중에 있으니, 경기회복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완화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총재의 생각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일본 경제 성장이라는 면에서, 2013년부터 계속 (금융완화) 이어온 것이 일본경제에 있어서는 플러스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일본이 1% 정도 성장을 이어왔는데, 내년부터 내후년까지 2% 정도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예측되고 있습니다. 일본경제는 순조롭게 경기회복을 하고 있고, 디플레이션에서도 벗어나고 있고요.
잃어버린 20년, 30년이라고들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90년대부터 내려왔는데요. 대체로 고도성장기에는 9%, 안정성장기에는 4% 정도인데요. 매년 1% 정도인 것으로 마이너스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일본경제가 성숙해지면서 윤택해졌기 때문에, 성장률이 당연히 낮아지는 것이니까요. 
엔저로 인해 외환시장에 98년 때처럼 개입하는 거 아니냐는 관측도 있는데.
급속한 엔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재무상이 말하기도 했는데요, 시장개입은 상당히 어렵다고 봅니다. 특히 달러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미국과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단계에서 어렵다고 봅니다. 예전(1998년)에 재무관으로 있을 때는 미국과 직접 연락을 해서 시장 개입할지를 합의했었습니다. 당시에는 엔고가 지나치다보니, 미국도 대체로 비슷한 의견을 보였기에 개입이 가능했었습니다만, 그때와 지금은 전혀 다르니까요.
구로다 총재는 어떻게 평가하시죠.
구로다 총재와 꽤 친합니다만, 2013년이 취임해서 금융완화를 이어오고 있는데 강력한 금융완화책으로 경기회복을 시키겠다고 한 것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는 잘 했다고 평가합니다.  
일본의 물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물가는 약간 상승했는데요. (일본은행이) 2% 정도 목표를 하고 있는데요. 2% 정도의 물가 상승은 문제가 없지만 5~6% 정도 물가가 오르면 문제가 되겠지요. (※ 일본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1% 올랐다. 소비자물가는 지난 4월에 이어 2개월 연속 2%대 상승했다)
일본 경제에 가장 큰 리스크는 뭘까요.
인구감소 부분을 어떻게 하느냐일텐데요. 낮은 출산율을 어떻게 개선할지가 문젭니다. 어려운 일입니다만, 프랑스가 하는 것처럼 자녀가 3인 이상인 경우 보조금을 주거나 교육에 대해 국가가 서포트를 하는 등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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