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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이직·구직 활성화하려면 실업자 지원 확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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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서유럽과 북미의 근로자들을 만나보면 한국 근로자와는 다른 한 가지 모습을 보게 된다. 외국 근로자들은 한국과 비교할 때 일과 직장에 대해 높은 만족감을 보인다. 이런 차이는 국제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2021년 유럽의 기업 대상 설문조사 업체인 이펙토리 인터내셔널의 국제근로자 참여지수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직업 만족도는 세계 평균(7.1점)에 비해 낮은 6.5점이었다.

왜 많은 한국 근로자는 직업이나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을까? 과거 개발도상국 경제 수준에서 존재했던 열악한 직종이 아직도 많아서, 또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좋은 직장이 없는 게 이유일 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며 적성에 맞는 일을 할 수 있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직장을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이들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원하는 것을 파악하더라도 그런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을 찾기 쉽지 않다.

한국 근로자의 직업 만족도 낮은 편
원하는 일 찾는 이직 등 활발해져야

젊은이들이 적성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을 찾는 것은 노동시장에서 시행착오를 통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최적의 직장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얻은 일자리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더 나은 직장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직업 탐색을 통한 이직·구직 과정은 개인적으로는 성취감을 높일 수 있고, 열심히 일하고 싶은 일자리에서 높은 소득을 얻을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것이 경제학자가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이직·구직이 자유롭게 이루어져 개인 능력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일자리에 근로자가 배치되는 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성은 근로자 개인뿐 아니라 기업이나 국가 경제에도 혜택을 준다. 기업은 근로자 이직·취직을 통해 우수 인력을 확보해 이윤을 높일 수 있고, 국가는 인적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이직·구직이 자유로울 뿐 아니라, 계약·해고가 신축적인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연한 노동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이직 후 구직까지 실업 기간에 근로자 생계를 지원해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무리 현 직장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구직할 때까지 먹고 사는 게 걱정된다면 누구도 새 일자리 탐색을 하지 않을 것이고 시장은 유연해질 수 없다. 이런 사회안전망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연 단위 소득 정산 후 지원이 아니라 월 또는 분기 단위의 신속한 지원이 돼야 하는데, 한국 정부는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개인 소득 정보를 이미 충분히 취합하고 있다.

실업 기간의 사회안전망은 실업자를 지원해 효과적 직업 탐색과 인력 배치를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새로운 스타트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업가에게는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고, 이를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어줄 수 있다. 구체적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으로 구직·고용을 쉽게 하기 위한 파견과 도급 규제 완화, 기간제 규제 및 파업 대체근로 금지 완화가 필요하다.

둘째, 이직·해고를 쉽게 하기 위해서는 영업 비밀 보호와 전직 금지 약정을 완화하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성과 부진 사유에 의한 통상 해고를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노동시간을 신축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최근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52시간 유연 운영 시행은 적절한 방향이다. 특례 업종을 산업별이 아닌 직종별로 전환하거나, 특례 업종에 스타트업 기업을 포함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임금 유연화와 관련하여 최저임금 결정을 위원회가 아닌 국회가 하고, 5년에 한 번씩 결정한 후 물가상승률에 연동해 자동 조정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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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