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기도 했던 김지하, 그릇이 크니 소리도 컸겠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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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고 김지하 시인의 49재인 지난 25일 서울 천도교 대교당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행사에 앞서 이연정 무용가가 마고춤을 추고 있다. 김상선 기자

고 김지하 시인의 49재인 지난 25일 서울 천도교 대교당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행사에 앞서 이연정 무용가가 마고춤을 추고 있다. 김상선 기자

시인 김지하(1941~2022)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 세상과 불화하는 듯했다. 후배 시인 김사인이 49재 추모시에서 밝힌 것처럼 ‘그의 소신공양으로 엄혹했던 한 시대를 우리가 건널 수 있었음에도, 지난달 8일 그의 죽음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썰렁하다’고 할 정도였다. 1991년 분신 정국에서 잇단 자살을 비판한 시인의 신문 칼럼,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지지 선언 등의 여파는 여전해 보였다. 무기징역 형까지 감수하며 체제에 맞선 저항 문인이 정작 자신의 출발점인 진보진영에서 외면받았다.

지난 25일 49재는 달랐다.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소리꾼 임진택 등 시인의 서울대 미학과, 문화 운동 후배들이 주축이 돼 마련한 추모문화제에는 시인 신경림, 소설가 황석영,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등 진보진영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추진위원 등으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시인과 결별했던 함세웅 신부, 시인의 대표작 ‘오적’을 일본에 소개해 세계적인 구명 운동을 불러일으킨 일본인 편집자 미야타 마리에가 참석해 애증 관계를 고백했다.

추모제에는 함세웅 신부, 이부영 자유언론실 천재단 이사장 등 시인의 추모제를 준비한 문화예술인들을 비롯해 400여명이 자리했다. 김상선 기자

추모제에는 함세웅 신부, 이부영 자유언론실 천재단 이사장 등 시인의 추모제를 준비한 문화예술인들을 비롯해 400여명이 자리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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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9라면 과는 1인 인생”(유홍준 이사장), “맺힌 응어리를 풀고 명복을 빌어주자”는 추모제 취지대로, 흠결은 지적하더라도 성취는 객관화하는 자리였다. 추모제가 열린 서울 천도교 대교당에는 4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의 개막사에 이어 김사인 시인이 추모시 ‘해월신사께 한 줄 祝(축)을 올립니다’를 낭독했다. “심술 궂고 미운 데도 적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릇이 크니 소리도 컸겠지요. (…)” 해월은 천도교 2대 교주 최시형. 시인이 생전에 흠모했다고 한다. 추모식 사회를 맡은 유홍준 이사장은 “시인의 말년에 평소와 다른 언행으로 감정 상하고 척지는 일도 있어 (원주 장례식) 발걸음을 주저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 같다”며 “그렇다 해도 쓸쓸히 보내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추모제를 열게 됐다”고 했다.

함세웅 신부는 처음에는 49재 참석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신문 칼럼이 큰 상처를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은 화해의 과정”이라며 “시기를 나눠 김지하를 평가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미야타 마리에는 “‘오적’을 처음 접하고 압도적 말의 힘에 매료됐으나 박근혜 지지 선언을 편 들 수는 없었다”고 소개한 뒤 “상냥한 누나로 시인의 모든 행위를 받아들이는 게 좋았을지, 나는 마지막 날까지 후회하며 살 것”이라고 했다.

후배 문인을 대표해 시인의 신문 칼럼 반박글을 썼던 김형수 시인은 “선생님의 생명 운동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됐다.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유홍준 이사장은 진보 문학 진영의 좌장 격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지하 시인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시인이 백낙청 선생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지만 ‘김지하 선생은 병중이라 몸과 마음이 고통받고 있다’는 백 선생의 이해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7년 가까운 수감 생활, 고문 후유증 등으로 시인은 몸과 마음이 아팠다는 것이다.

시인의 생전 저서와, 쓰고 그렸던 서화가 함께 전시됐다. 김정연 기자

시인의 생전 저서와, 쓰고 그렸던 서화가 함께 전시됐다. 김정연 기자

유홍준 이사장은 시인의 생전 활동을 ▶민주화 ▶문학 ▶노래 ▶생명운동 ▶그림 ▶민중예술운동의 6갈래로 구분했다. 생명운동 등 시인의 후반기를 회고하는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소설가 황석영은 추모사 속 우화를 통해 시인의 ‘흰 그늘’ 미학을 이렇게 해석했다. “누군가를 저 세상에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에 겨워 몇 날 몇 밤을 실컷 울고 나서 피시식 하고 저절로 나오는 희미한 웃음 같은 것.” 문학은 논리로 재단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시인과 대학 시절부터 친구인 염무웅 문학평론가는 “김지하 시인은 아직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며 “김지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면 그의 세 권짜리 회고록 『흰 그늘의 길』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추모제에는 김정헌 전 문화예술인위원장, 시인 이근배·문정희·김정환·김기택·이진명·이승철·임동확, 화가 임옥상, 언론인 임재경, 정치인 김정남·김덕룡·손학규·유인태, 윤정모 소설가, 방송인 최불암 등이 참석했다.

김지하 시인 미발표 시

〈헌화〉
뜨겁고
붉은 사랑이로라
이 늙음
아니 부끄리시면
절벽 위
꽃 꺾어
고이 바치리
뜨겁고
붉은
어허, 사랑이로라.

〈심화心火〉
밤은 꿈속에 타고
꿈은
몸 속에 타고
아아
불타는 하늘
불타는
님의 눈빛.

김지하의 시는 곧 노래였다. 1980년대 대표적인 운동권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 ‘금관의 예수’ 등이 그의 시를 노랫말로 해 만든 곡이다. 지난 25일 시인의 49재 추모문화제에서 추모제추진위원회는 김지하 시인의 짧은 시 8편을 공개했다. 시인의 문화 운동 후배 임진택 명창에 따르면 1999년 희곡을 써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시인이 대신 건넨 작품들이다.

약속했던 희곡은 ‘세 개의 사랑 이야기’. 사랑에 관한 작품이다. 그런데 보통의 사랑이 아니다. 임 명창은 “(김)지하 형님이 같이 보낸 시작 메모를 보면, 결국 사람과 만물에 대한 사랑이 세상을 바꾸는 것인데, 여기서 사랑은 상대를 내 것으로 만들려는 연애 같은 사랑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공경심에서 나오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 ‘헌화’ ‘심화(心火)도 그런 측면에서 감상해야 할 것 같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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