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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가 걷겠습니다…미 참전용사 위한 기부행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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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19년 미국 ‘리버티 워크’에 참석한 구성열(79)·김창화(75)씨 부부(왼쪽). [사진 구성열씨]

2019년 미국 ‘리버티 워크’에 참석한 구성열(79)·김창화(75)씨 부부(왼쪽). [사진 구성열씨]

“오늘 같은 열기 속에 행진했을 군인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 걷기는 수월하죠.”

6·25 전쟁 72주년을 맞아 25일 서울 용산구 일대에서 열린 ‘리버티 워크(Liberty Walk·자유의 걸음)’에 참여한 미국인 스티브 로빈스(64)씨의 소감이다. 한국전 미 참전용사를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을 출발해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약 4㎞를 1시간 동안 걷는 행사다. 낮 기온이 섭씨 30도까지 오르고 습도가 높아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서도 주최 측 추산 약 500명이 걷기에 동참했다. 주한미군 50여명을 포함해서다. 이날 행사는 6·25 재단과 대한민국육군협회가 주관하고 부영그룹이 후원했다.

친구 심영미(53)씨와 4㎞ 걷기를 완주한 로빈스씨는 “걷기를 통해 참전 용사들을 기리고 떠올리는 것은 꽤 좋은 방법 같다”고 말했다. 심씨도 “미처 피지도 못한 19살, 20살 젊은 사람들이다. 한국이 어딘지도 모르고 와서 대부분 보병으로서 맨 앞에서 그냥 죽어간 거잖나. 그 희생이 참 값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에서 처음 열린 리버티 워크는 원래 2018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6·25 재단을 설립한 구성열(79)·김창화(75)씨 부부가 매해 6월 25일이면 1마일(1.6㎞)을 걸을 때마다 2달러(2500원)씩을 성금으로 걷었던 것이 출발이다. 부부는 2019년 6·25 재단을 설립하고 그동안 모은 성금에 사재를 보태 2020년부터 미 참전용사 고향의 초등학교에 5000달러(약 648만원)씩을 기부해왔다. 이른바 ‘리버티 프로젝트’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11개 주 학교 도서관에 기부금과 참전용사의 명패를 전달했다.

이날 행사엔 70~80대의 모습이 가장 많이 보였다. 강철원(85)씨는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영천으로 내려가다 미군을 본 이야기를 들려줬다. 강씨는 “피난을 가는데 시냇가에 미군이 조종하는 헬리콥터가 사람하고 떨어져 있더라고. 겁이 나가지고. 그땐 미군이 많았으니까 미군이라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군 관련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날 행사를 알게 됐다는 20대도 있었다. 학군사관(ROTC) 출신으로 2년 전 전역한 예비역 중위 천혁진(27)씨는 “한국전 당시 유엔군의 희생정신을 깊이 존경하기 때문에 이날 행사에 나왔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함께 걷기에 나선 초등학교 5학년 정민호(11)군은 “이렇게 걷는 모습을 보고 하늘나라에 있는 유공자들이 기뻐하실 것 같아요”라는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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