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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look] “한국 이젠 새우 아닌 고래, 동맹과 함께 중국에 목소리 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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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파르도 킹스칼리지 런던 교수의 제언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al state)’가 되기를 희망한다. 한국은 이미 글로벌 중추국가라고 생각하는 많은 나라가 한국의 적극적인 국제무대 활동을 환영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오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참석한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첫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다. 미국 등 30개 나토 회원국은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러시아·중국·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려면 비슷한 생각을 지닌 파트너들이 필요하다. 미국·유럽, 인도·태평양의 한국 우방들이 한국과 협력하길 원하는 이유는 한국의 가치와 역량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나토 회원국은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

윤석열

윤석열

가치 측면에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의 지배, 인권을 존중한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같은 나라가 많지 않다. 아시아의 경우 일본·대만 정도가 이런 특성을 공유한다. 유럽 관점에서 한국은 자연스러운 파트너다. 가치가 외교 정책 결정의 유일한 요소는 아니지만, 정책 결정권자와 외교관들은 비슷한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과 쉽게 협력할 수 있기 때문에 가치 공유는 중요하며, 강력한 연결을 뒷받침한다.

한국은 역량도 있다. 유럽·미국 입장에서 한국만큼 경제적·군사적·외교적 역량을 갖춘 파트너를 찾기 어렵다.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자 선진국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 한국의 해외 구호 단체들은 불우한 국가들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삼성·현대 등 한국 기업들은 전 세계가 원하는 투자자다. 한국 관광객은 어디에서나 환영받는다.

원조는 한국이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해외 원조 비율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하위권이다. 동남아시아에서 중남미에 이르는 개발도상국들은 한국이 수십 년 동안 경제 발전을 통해 축적한 전문 지식을 원한다. 한국이 더 많이 원조한다면 한국의 국가 브랜드는 더 강력해진다.

군사 역량과 관련해 한국군은 세계 10대 강군에 속하며, OECD 회원국 중 유엔 평화유지 임무에 가장 많이 기여한 국가 중 하나다. 한국 방위산업체들은 인도네시아·베트남·호주·폴란드 등에 기술·장비·노하우를 수출한다. 한국이 남중국해 등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환태평양훈련(RIMPAC) 같은 해상 훈련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논리적 수순이다. 한국군이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는 걸 의심하는 국가는 없다. 한국도 스스로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외교 역량 면에서 한국은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이자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기구의 글로벌 이슈들에 활발히 참여한다. 한국이 처음부터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한 것은 한국의 외교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중추국가는 특정 영역에서 주도해야 한다. 한국이 유엔 지속가능발전사무소를 인천에 유치하고, 기후 변화 대응 글로벌 협의체 P4G의 창립국이 된 것은 한국 지도자들이 녹색성장을 한국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역으로 보고 있음을 뜻한다. 국제기술표준 설정에 적극적 역할을 하고, 백신 제조 허브국이 되며, 북핵뿐 아니라 지구촌의 핵 비확산 옹호도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분야다. 한국은 작지만 일관된 틈새 분야를 찾아 주도권을 발휘해야 한다.

작지만 일관된 틈새 찾아 주도권 발휘를

서울의 소프트파워도 자산이다. 방탄소년단(BTS)이 반아시아인 인종차별을 이야기하고, 블랙핑크가 기후 변화에 맞서는 목소리를 결집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것은 전통적인 능력이다. 윤 정부는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한국이 국제 문제, 특히 중국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안보 문제에서 목소리를 높여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믿음은 잘못된 것이고 시대에 뒤떨어졌다. 이런 인식은 한국이 새우(약소국)였을 때나 의미가 있었다. 한국은 더는 새우가 아니다. 강대국 간 경쟁을 솜씨 좋게 헤쳐나가야 하는 돌고래도 아니다. 한국은 동아시아와 글로벌 문제를 형성할 수 있는 고래 중 하나다. 단독으로는 힘에 부치겠지만 다른 파트너들과 함께라면 가능하다.

불필요하게 중국을 대적하라는 말이 아니다. 유럽이나 동남아 어느 쪽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미국·호주·일본 등 현실적 세계관을 가진 나라들은 중국과의 전면전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 정부가 중국 대신 미국을 선택할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한국이 국익을 보호하고 동맹국·파트너와 협력하기 위해 강력한 입장을 취하면 더 큰 국제적 존경을 받을 것이다. 한국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더 많은 국제무대로의 초대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한국이 적과 파트너를 모두 다루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

라몬 파체코 파르도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유럽·국제학부 학과장이자 브뤼셀자유대학 KF-VUB 한국석좌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세종연구소의 비상임 선임연구원도 맡고 있다. 『북핵 위기와 북·미 관계』 『새우에서 고래로: 잊힌 전쟁에서 K팝까지의 한국』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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