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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등산로 개방하라” 현수막…정치권도 “당장 열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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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 등산로 입구. 삼청동 주민들이 ‘등산로 폐쇄 반대’ 내용의 현수막 4개를 붙여 놓았다. 이수민 기자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 등산로 입구. 삼청동 주민들이 ‘등산로 폐쇄 반대’ 내용의 현수막 4개를 붙여 놓았다. 이수민 기자

‘헌법재판소 소장님! 길 좀 열어 주세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정문 맞은편 게시대에 걸린 현수막 내용이다. 지난달 10일 청와대 개방 이후 시민들이 애용했던 북악산 등산로가 이달 2일 닫힌 데 따른 항의 성격이 강하다. 해당 등산로 초입엔 헌법재판소장 공관이 있다. 헌재 측은 탐방객이 늘자 헌재소장 공관의 소음 피해와 보안상 문제 등을 이유로 문화재청에 폐쇄를 요청했고, 결국 문화재청은 지난 2일 해당 등산로를 닫기에 이른다.

항의 현수막은 이뿐이 아니다. 삼청동 통장협의회·새마을지도자협의회 등 5개 단체 명의로 건 ‘삼청동 북악산 등반로를 주민에게 돌려달라’부터 ‘북악산 등산로 폐쇄 결사반대’(삼청동 주민자치위원회 일동) 등 다양하다. 이날 삼청동을 찾은 시민 중엔 현수막 사진을 찍은 뒤 ‘#등산로 #재개방’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올리는 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등산로 폐쇄 이후 주변 자영업자들은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등산로 인근 국밥집 사장 최현배(58)씨는 “지난달엔 등산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국밥 한 그릇씩 하고 가니 식당 내 30석이 꽉 찼었는데, 요즘엔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금융연수원 맞은편 항의 현수막을 직접 달았다는 삼청동의 한 중식당 사장인 김노수씨는 “헌재 측의 (폐쇄) 요청에 이렇게 된 것 같아 너무 화가 난다”면서 “공관을 개방하고 국민에게 환원해 새로 건립되는 이건희 미술관부터 현대미술관까지 이어지도록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삼청동에서 만난 여러 탐방객은 “참 다니기 좋은 길이었는데…”라며 등산로 폐쇄에 따른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모(63)씨는 “등산 모임 지인 중 2명은 윤석열 대통령이 연 ‘국민제안’에 ‘등산로를 재개방해 달라’는 민원을 넣었다”고 말했다.

삼청동 주민의 민심도 심상치 않다. 삼청동에서 50년 이상 살았다는 주민 권모(68)씨는 “아침에 삼청공원에 운동하러 나가면 다들 ‘등산로 폐쇄’ 이야기뿐”이라며 “(중앙일보) 기사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뭔가 사정이 있으리라고만 생각했지 헌재소장 공관 하나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건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삼청동 주민들은 등산로 폐쇄 반대에 따른 의견을 모아 헌재 측에 민원을 제기한 상태라고 한다.

시민단체·정치권도 나섰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최근 헌재를 상대로 ‘헌재소장 공관 운영비’에 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등산로 폐쇄 논란에 이어 헌재소장 공관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지난 10년간 공관 유지를 위해 썼던 예산 내용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실은 “공관 사용 현황 자료 등을 헌재 측에 요청해 면밀히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당은 헌재소장 공관 주변의 등산로 폐쇄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국회 현안점검회의에서 “이번 주말부터라도 폐쇄했던 도로를 개방하라”고 작심 비판했다. 권 원내대표는 “(공관이) 안쪽으로 굉장히 부지가 크다”며 “낮에 사람들이 통행한다고 해서 무슨 소음 피해가 클 것 같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의 이런 발언에도 등산로는 주말에 다시 열리지 않았다. 헌재 측은 24일 “(등산로와 관련해) 관계기관과 다시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냈으나 주말 사이 헌재와 문화재청 간 진전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헌재 측과 원만히 협의해 해당 길을 (다시) 등산로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할 것”이라며 “아직은 헌재 측 요청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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