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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하다 단체 팔굽혀펴기…인도 청년들 기차에 불 지른 이유 [세계한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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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비하르주에서 지난 16일(현지시간) 정부의 군 복무제도 개편에 항의 시위를 하던 청년들이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 튼튼한 체력을 과시하며 군대에 더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인도 비하르주에서 지난 16일(현지시간) 정부의 군 복무제도 개편에 항의 시위를 하던 청년들이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 튼튼한 체력을 과시하며 군대에 더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시위를 하던 젊은 남성들이 갑자기 단체 팔굽혀펴기를 선보인다. 이 모습을 지켜보다 웃음이 터진 사람도 있지만, 이들의 이유는 절박하다. 정부를 향해 "이렇게 체력이 튼튼하니 군대에 더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인도 비하르주에서 벌어진 일이다.  

인도 현지 매체와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인도 전역에선 이날부터 며칠 째 청년 수천 명이 이런 목소리를 내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17~18일엔 안드라프라데시주·비하르주 등의 기차역에 난입한 시위대가 기차에 불을 질러 이 지역 철도 교통이 한때 마비가 되기도 했다. 일부 시위대는 도로를 막고, 공공기물도 파손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체포되고, 최소 한 명이 사망했다.  

'평생직장' 인도 군대에 무슨 일이  

인도 정부는 지난 14일 '아그니패스(Agnipath·불의 길)'란 이름의 군 복무제도 개편을 발표했다. 군 입대 시험을 준비하던 인도 젊은이들은 즉각 반발했다.  

취업난이 심각한 인도에서 군인은 수입이 안정적이고 존경받는 인기 직업이다. 35년 이상 복무가 가능해 '평생직장'으로 여겨지고, 전역 후엔 연금 혜택도 있다. 모병제 국가인 인도의 현역병은 약 140만 명이다.  

인도의 대학생들이 지난 3월 군 관련 전시회에서 전시물을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도의 대학생들이 지난 3월 군 관련 전시회에서 전시물을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런데 이번 개편으로 4년 복무 후 75%는 전역해야 하며 연금 혜택도 사라지게 됐다. 선발된 25%만 15년 장기 복무가 가능해졌다. 군 지원 가능 연령도 17.5~21세로 상한 연령을 기존 23세(육군 기준)에서 낮췄다.  

평생직장을 꿈꾸며 군 입대만 바라보던 청년들에게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인도에선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군 입대 시험을 수년 간 준비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체력 시험에 대비해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거리를 달리는 청년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인도 정부의 군 복무제도 개편에 항의하는 젊은이들이 지난 17일 안드라프라데시주의 기차역에서 불을 지르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도 정부의 군 복무제도 개편에 항의하는 젊은이들이 지난 17일 안드라프라데시주의 기차역에서 불을 지르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19세인 가우라브 쿠마르 싱은 "인도에선 군인이 되면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자동으로 달라진다. 수입은 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이며 집을 짓기 위한 대출도 쉽게 받을 수 있어서 배우자감으로도 인기가 좋다. 군인 한 명이 그 가정의 평생 보험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제도 개편으로 지난 3년간의 준비가 모두 허사가 됐다"며 "복무 4년 후에 (장기 복무자로) 뽑히지 않으면 난 실업자가 되지 않느냐"고 걱정했다. 

또 다른 육군 지원자는 “정부가 우리의 꿈을 망가뜨렸다. 군 입대를 하더라도 4년 후 우린 버려진 전사란 오명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발 뻔한데 강행 이유는   

인도 정부가 반발이 불보듯 뻔한 제도 개편을 강행한 건 재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인도 국방비에서 군인 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3%에 이른다. 2022~2023년 인도 국방 예산 700억 달러(약 90조 8530억원) 중 160억 달러(약 20조 7660억원)가 연금에 쓰인다. 또 국방 예산의 29%는 현역병 월급으로 사용됐다.

이로 인해 무기 조달이나 자동화와 같은 국방력 강화를 위해 예산의 절반도 쓰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20일 인도 첸나이에서 젊은이들이 군 복무제도 개편에 항의하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0일 인도 첸나이에서 젊은이들이 군 복무제도 개편에 항의하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EPA=연합뉴스

군사력 평가 단체 글로벌파이어파워(GFP)에 따르면 인도의 군사력은 미국·러시아·중국에 이어 세계 4위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병사의 높은 평균 연령(육군 기준 32~33세)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아지트 도발 인도 국가안보보좌관은 현지 언론에 "젊은 나라는 오래된 군대를 가질 수 없다"며 "내일을 준비하려면 우린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도군은 이번 개편으로 8~10년 안에 평균 연령이 26세로 낮춰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인도 정부의 이번 발표는 높은 실업률에 대한 인도 젊은이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인도경제모니터링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대졸자의 5명 중 1명이 실업자이며, 청년 실업률은 20%를 웃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사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파괴적인 불황 때문에 청년층이 겪는 경제적 고통의 깊이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인도는 올봄 기록적인 폭염으로 밀 생산량이 급감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간접적인 영향으로 식량 물가가 8% 넘게 올랐다.

정부 달래기에도 전면 철회 요구    

인도 싱크탱크 정책연구학회의 치트라푸 우다이 바스카르는 알자지라에 "병사 채용 정책, 재정 사용을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이번 시위 사태를 볼 때 제도 개편이 종합적이고 세밀하게 검토되지 않은 게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개편은 국회에서 철저하게 논의되어야 하고,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청년들에게 시행 이전에 그 취지가 설득력 있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16일 인도 첸나이에서 군 복무제도 개편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을 경찰이 저지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6일 인도 첸나이에서 군 복무제도 개편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을 경찰이 저지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월에도 인도 철도공사 입사 시험에 예정에 없던 2차 시험 등이 도입되자 인도 청년들이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인 바 있다. 당시 3만5000명을 뽑는 철도공사 사무직 채용 시험엔 1200만 명이 몰렸다.

청년들의 거센 반대에도 인도 공군 등은 24일부터 이번 개편에 맞춰 모집 계획을 냈다. 정부는 성난 청년들을 달래기 위해 올해 한정해 지원 상한 연령을 23세로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년들은 물론, 야당 등 정치권에서도 이번 개편에 대한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어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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