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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가 팔고 17세 집단투약…'이 말'에 10대 1만명이 마약중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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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해볼래? 기분이 좋아져. 한 번 정도는 괜찮아. 다이어트도 돼.”

17세 A양은 아는 언니(20)의 소개로 함께 만난 30대 남성한테서 이 말을 듣고 주사기를 건네 받았다. 그 후 일주일 만에 “주사를 안 맞으면 못 견딜 거 같다”는 중독 증세가 나타났고, 언니에게 계속 연락해 “맞게 해달라” 했다고 한다. 지난해 경찰에 검거된 그녀는 “처음 주사기에 든 게 필로폰인 줄 알았다면 안 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뒤늦은 후회였다.

펜타닐은 아편(오피오이드)계 마약성 진통제로 기존 모르핀보다 80배나 강력하다. 미국에선 2017년에만 펜타닐 등 합성아편으로 인한 사망자가 4만 7600명에 달해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한국에서도 헤로인, 모르핀과 함께 마약으로 지정돼 있다. 중앙포토

펜타닐은 아편(오피오이드)계 마약성 진통제로 기존 모르핀보다 80배나 강력하다. 미국에선 2017년에만 펜타닐 등 합성아편으로 인한 사망자가 4만 7600명에 달해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한국에서도 헤로인, 모르핀과 함께 마약으로 지정돼 있다. 중앙포토

중앙일보가 취재한 10대(代)들의 마약공화국은 이처럼 단순한 호기심에 1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10대가 해외 직구로 마약을 밀수하고 소셜네트워크(SNS) 메신저나 비밀 채팅앱을 통해 판매까지 한다. 암호화폐로 결제하며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린다.

대한민국이 10대 마약 사범을 양산하는 ‘마약공화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해외 직구(전자상거래)만 연 1억개, 통관 검색을 포함해 단속은 어려워지는데 10대를 위한 마약 예방교육은 물론 치료·재활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극소수 연예인·유학생·장기중독자만 마약을 할 것이란 마약청정국 신화는 7년전 이미 깨졌다.

[10대 마약공화국①] 작년 10대 마약사범 사상 최대…10년 전보다 11배 폭증

정부 공식 통계에서도 비상등은 켜졌다. 대검찰청 「마약류범죄백서」(2012~2021)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에 송치된 10대 마약류 사범은 역대 최대치인 450명을 기록했다. 10년 전 2011년 41명의 11배다. 최근 5년 새 증가세도 가파르다. 2017년 119명→2018년 143명(20.2%)→2019년 239명(67.1%)→2020년 313명(31.0%)→지난해 450명(43.8%)으로 매년 급증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10대 마약사범은 2021년 전체 마약류 사범(1만 6153명) 중 비중(2.8%)이 작게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발생 건수는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마약은 살인·강도·강간 등 다른 강력범죄와 달리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한 사건이 훨씬 많은 대표적 암수범죄(暗數犯罪)이기 때문이다. 마약 범죄 특성상 밀수·판매·투약 사범 모두 공범이어서 범행이 은밀하고 자진 신고율은 극히 낮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학과 교수는 “한국의 마약범죄의 평균 암수율(검거 대비 실제 발생범죄 수를 계산하는 배수)은 28.57배로 산정되는데, 10대 검거 사범 450명에 28.57을 곱한 1만 2857명가량이 전체 10대 마약사범 숫자로 추산된다”라고 분석했다. 한 수사기관 전문가는 “10대 마약사범은 학부모부터 자녀의 미래가 걸렸다고 생각해 드러내길 꺼리기 때문에 암수율이 100배에 이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약사범 평균 연령대가 최근 10년 새 급속도로 연소화(年少化)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2년 전체 마약사범 중 38%를 차지했던 40대는 2019년 절반 수준 21.7%로 줄었고 대신 30대(25.7%)가 연령별 1위에 올라섰다. 그런데 2년 후인 2021년엔 20대가 5077명(31.4%)이 검거되며 연령별 1위를 차지했다. 2011년 비중이 8.2%에 불과했던 20대가 10년 만에 국내 마약범죄의 주류가 된 것이다.

20대가 마약사범의 최다인 것도 그만큼 10대 청소년 때 마약을 처음 접한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중산층 평범한 10대 학생…한 번 투약했다가 판매상 진화

“저는 서울 강남에 살아요. 부모님은 평범한 회사원이고요. 필로폰, 합성대마, 케타민, 엑스터시 다 해봤어요. 코로나 전에는 어른들 민증을 빌리고 클럽 가서 했고요. 코로나 때는 친구들이랑 파티룸, 호텔 빌려서 했어요. 약 파는 오빠한테 싸게 많이 떼다가 친구들한테 비싸게 팔아서 몇 천만원을 벌기도 했어요.”(지난해 19세 B양 검찰 진술)

김대규 경남경찰청 마약수사대장은 최근 적발된 10대 투약자는 대개 연예인 지망생이나 고위층 자제가 아니라 평범한 학생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들이 많다”라며 “학력 수준이 높든 낮든, 가정환경이 좋든 나쁘든 가리지 않는다”라고 경고했다.

10대에 퍼진 마약류는 전통적인 대마나 필로폰, 신종 마약류인 엑스터시(MDMA) 등으로 다양하다. 2019년 10대에 인기 있는 힙합 래퍼들 사이에 유행해 사회 문제가 됐던 아편(오피오이드)계 합성마약인 펜타닐 진통제 등 마약성 의약품도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경남경찰청은 지난해 5월부터 부산·경남에서 이 펜타닐을 불법 처방받은 뒤 투약·소지하거나 되판 10대 고교생 50여 명을 적발했다. 올해 6월에는 전국 15개 시·도 중 울산·제주를 제외한 13곳에서 10대 100명가량이 마약성 식욕억제제인 디에타민을 불법 처방받은 뒤 투약한 등의 혐의로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디에타민 역시 향정신성의약품인 펜터민(암페타민)이 주성분으로 필로폰(메스암페타민)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환각 작용이나 중독성은 유사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0대들은 마약류를 구할 때 병원에서 불법 처방받는 게 아니라면 주로 SNS 메신저 비밀채팅방을 활용한다고 한다. 결제수단은 대개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다. 은행 송금 등 기록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인 인천지검 검사는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10대를 포함한 텔레그램 메신저 마약 거래방 조직에 대해 범죄단체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그는 올해 3월 논문에서 “전체 마약류 사건 중 지인간 차명계좌를 이용해 대금을 전달하는 전통적 방식은 약 30%에 그치고 텔레그램 등을 통해 서로 신원을 알지 못 하는 사람끼리 가상화폐로 대금을 전달하는 건 70%가량에 달한다”라고 분석했다.

학교 마약 예방교육 없고 전국 치료·재활병원 두 곳만 정상 가동

10대 마약 확산의 원인으로 검찰과 경찰 등 수사당국은 “10대는 단속이 문제가 아니라 예방교육 시스템이 부재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경찰은 최근 교육부에 “청소년에 대해 유해약물 중독 예방교육 때 마약류에 대한 부작용과 불법 구매 시 처벌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달라”라고 요청했다.

느슨한 CIQ(출입국관리·세관검사·검역)에 따라 마약류가 국내로 유입되고 병원 등 의료계 관리 부실로 마약류로 지정된 의약품이 10대에 불법 처방·판매되는 등 공급 측면의 문제도 지적된다. 검경 수사권조정 이후 일선 혼선으로 무너진 마약사범에 대한 공조 수사→처벌→재활·교정 시스템에도 구멍이 생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정부와 국회가 마약청정국이란 그릇된 믿음에 갇혀 치료·재활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재범을 막기는커녕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관세청 등 관계부처에선 “충분한 예산이 없어 전문인력을 배치해야 하는데 역부족”이라고 하소연한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유엔의 마약청정국 기준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적발된 마약류 사범 수가 20명을 초과하면 마약류 확산세를 통제하지 못하는 추세가 된 거로 본다”라며 “한국 인구를 5000만 명으로 보면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 수가 20명은 물론이고 30명까지 넘어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국내로 들어오는 마약류 유입량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검찰과 세관의 마약류 압수량은 전년 대비 4배 넘게 증가한 1295.7㎏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홍완희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과장은 “마약류는 한 번 확산하면 추세를 되돌리기 매우 어렵다”며 “서둘러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소위 ‘마약 선진국’처럼 정부가 투약자 관리를 위해 주사기를 나눠주는 날이 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10대 마약공화국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청소년이 해외직구로 마약을 밀수하고 메신저 채팅앱으로 판매하는 세상입니다. 한때 마약청정국에서 시나브로 10대들의 마약공화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중앙일보가 대검찰청ㆍ국가수사본부ㆍ식품의약품안전처ㆍ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가와 단속은 물론 치료ㆍ재활ㆍ교육예방 전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인 6월 26일부터 중앙일보 10대 마약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575)을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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