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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건다" "함정 빠진다"…'독한 발언' 퍼붓는 대기업 총수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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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모르겠고, 그냥 목숨 걸고 하는 것"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제자리걸음만 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유럽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뉴시스]

유럽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뉴시스]

국내 대기업 총수들의 발언이 독해지고 있다. 그만큼 대내외 경제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는 방증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국내 기업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원자재를 중심으로 한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 확대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재용 부회장, "목숨 걸고 하는 것"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8일 11박 12일간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취재진을 만나 "한국에선 못 느꼈는데 유럽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훨씬 더 느껴졌다"며 "시장의 여러 가지 혼돈과 변화와 불확실성이 많은데 저희가 할 일은 좋은 사람 모셔오고, 조직이 예측할 수 있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같다"고 강조했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주요 전략으로 '기술'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대회에서 삼성이 밝힌 450조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과 관련 "앞만 보고 가겠다. 숫자는 모르겠고, 그냥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라는 의미로 '위기의식'을 주문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 부회장의 유럽 출장 직후 삼성전자는 한종희 부회장 주재로 관계사 사장단 회의가 열렸다. 이 부회장이 강조한 기술 중시, 인재 확보, 유연한 조직문화를 주제로 8시간가량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다. 한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국제 정세와 산업 환경, 글로벌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변화의 흐름을 읽고, 특히 새로운 먹거리를 잘 준비해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2022 확대경영회의'에 참석하며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2022 확대경영회의'에 참석하며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17일 열린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에서 열린 확대경영회의에서 그룹의 임원들에게 과감한 경영 활동을 주문했다. 최 회장은 "현재의 사업 모델이나 영역에 국한해서 기업 가치를 분석해서는 제자리걸음만 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면서 "벤치마킹을 할 대상 또는 쫓아가야 할 대상을 찾거나 아니면 현재의 사업 모델을 탈출하는 방식의 과감한 경영 활동에 나서야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역시 이 자리에서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성장하는 회사를 만드는 데 힘써 달라"고 강조했다.

정의선 회장 "시나리오 갖고 민첩하게 움직여야" 

뉴욕 국제오토쇼 참석차 방미 중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맨해튼의 제네시스하우스에서 특파원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욕 국제오토쇼 참석차 방미 중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맨해튼의 제네시스하우스에서 특파원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4월 뉴욕 국제오토쇼를 참석해 "국제 정세가 불안정하고 변화가 많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다"며 "항상 시나리오를 가지고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차질이 발생할 수 있지만 신규 지역과 같은 기회 요인도 있다"며 "회사 내에서도 예측 기능을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4월부터 반도체 부족·원자재가 상승 등 국내외 경영 환경을 감안한 통합리스크관리업무협의팀(CFT)을 운영하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앞서 3월 주주총회에서 "올해는 여전히 코로나로부터의 일상 회복이 지체되는 가운데, 글로벌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럴 때일수록 LG는 고객 가치를 가장 최우선에 두고 변화에 민첩히 대응하며 위기 속에서 기회를 만드는 노력을 지속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경기도 평택 LG전자 HE연구소를 방문해 OLED 대세화 추진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LG]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경기도 평택 LG전자 HE연구소를 방문해 OLED 대세화 추진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LG]

이처럼 최근 몇 개월 사이 국내 4대 그룹 총수들이 입을 모아 위기 극복과 대응 전략을 주문하는 이유는 그만큼 대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6일 논평을 통해 "최근 우리 경제는 국제 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 글로벌 긴축과 세계 경제 위축, 보호무역‧자국중심주의 확산 등 글로벌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미증유의 복합 경제위기에 직면해있다"고 진단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 문제, 금융시장 불안, 인플레이션 등 우리 기업들이 산업현장에서 체감하는 위기감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기업은 차세대 기술 개발, 생산성 향상을 위한 폭넓은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정부는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과감한 규제 개혁과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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