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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가신 분 많았다"…폐업 한 시간 늦춘 37년 맛집 '을지면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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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대표적인 평양냉면 맛집 '을지면옥'의 영업 종료일인 25일 서울 중구 을지면옥 앞에서 손님들이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을지면옥은 1985년 문을 열어 37년간 영업해 왔다. 이곳이 있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은 2017년 4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2019년부터 보상 절차와 철거 등 재개발 절차가 추진됐다. 연합뉴스

서울의 대표적인 평양냉면 맛집 '을지면옥'의 영업 종료일인 25일 서울 중구 을지면옥 앞에서 손님들이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을지면옥은 1985년 문을 열어 37년간 영업해 왔다. 이곳이 있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은 2017년 4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2019년부터 보상 절차와 철거 등 재개발 절차가 추진됐다. 연합뉴스

25일 오후 4시 37년 전통의 서울 평양냉면 맛집 을지면옥이 문을 닫았다. 을지면옥은 당초 이날 3시까지만 영업을 하기로 했지만, 이미 기다린 손님들을 배려해 재료가 소진될 때까지 영업시간을 연장했다.

을지면옥 홍정숙(67) 사장은 입구 셔터를 내린 뒤 마지막 손님에게 인사를 하며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영업이 끝나고 직원들은 단체 사진을 찍고 서로를 향해 수고했다는 의미로 서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한 직원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을지로에서의 마지막 영업을 마친 홍 사장은 "의도치 않게 이전하게 돼 너무 가슴이 아프고, 대대로 내려온 이 자리를 지켰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어디로 이전을 하더라도 이 맛을 자식들이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심경을 전했다.

홍 사장은 "오늘 울고 가시는 분도 많았다. 마지막이라고 하니 너무 아쉬워서일 것"이라며 "맛은 둘째치고 그 추억이 없어지는 게 아쉬울 것이다. 저희가 나가게 되면 이제 바로 철거가 들어갈 거고, 그럼 이 동네는 이제 없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2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면옥에서 시민들이 영업 종료 전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뉴스1

2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면옥에서 시민들이 영업 종료 전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뉴스1

이날 을지면옥 앞에는 주말임에도 이른 오전부터 마지막 평양냉면 한그릇을 먹기 위해 몰려든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낮 기온이 30도가 넘는 뙤약볕 밑에서도 손님들은 양산을 쓰고 연신 부채질로 땀을 식히며 긴 줄을 기다렸다. 긴 대기 줄 속에서 지팡이를 짚거나 부축을 받고 찾아온 어르신들도 있었다.

이날 을지면옥을 찾은 마지막 손님 중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방 주치의였던 신현대 전 경희대 한방병원 교수도 있었다. 신 전 교수는 "남북 정상회담 때 옥류관에 가서 평양냉면을 먹었는데, 을지면옥 맛과 제일 비슷했다"며 "노 전 대통령님도 여기에 자주 왔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그나마 문을 아주 닫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했다.

25일 서울 중구 을지면옥에 영업종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25일 서울 중구 을지면옥에 영업종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1985년 문을 연 을지면옥은 37년간 한 자리에서 늘 같은 맛의 평양냉면을 선보이며 을지로의 대표적인 맛집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곳이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에 포함되고, 2017년 4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2019년부터 보상 절차와 철거 등 재개발 절차가 추진됐다.

분양신청을 하지 않은 을지면옥은 현금을 받고 건물을 넘기기로 했으나 재개발 시행사와의 합의에 실패했다. 이에 시행사는 을지면옥을 상대로 건물 인도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지만 을지면옥 측이 항소했다.

시행사 측은 본안 소송의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을지면옥을 상대로 지난 1월 부동산 명도 단행 가처분을 신청했다. 가처분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가처분이 집행될 경우 을지면옥은 본안소송에서 다퉈볼 기회가 사라진다"며 시행사의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2심을 판단한 서울고법은 이달 14일 1심과 달리 을지면옥이 시행사에 건물을 인도하라고 명령했다. 을지면옥은 이날 영업을 끝으로 을지로를 떠나 새로운 장소로 가게를 옮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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