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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중 86명은 구멍이 점점 커진다…두뇌가 ‘착시’를 지시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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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점이 찍힌 배경 가운데 커다란 검은 구멍이 놓여 있습니다. 가운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멍이 점점 확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글]

검은 구멍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사진 일본 리쓰메이칸대학교

검은 구멍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사진 일본 리쓰메이칸대학교

느끼셨다시피 이는 착시 현상입니다. 사진은 완전히 정지해 있습니다. 우리 눈이 거짓말을 한 거죠.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뇌’가 구멍이 커지는 것으로 인지한 것이죠.

구멍이 커지는 것처럼 안 보인다고요? 그것도 괜찮습니다. 이 ‘검은 구멍 착시’를 공동 연구한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와 일본 리쓰메이칸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실험 대상 50명 중 7명은 구멍이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구멍을 보면 착시를 일으킬까요. 착시를 일으키면 우리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 걸까요.

인간의 눈은 거짓말을 한다

오슬로대·리쓰메이칸대 연구진이 ‘검은 구멍 착시’를 연구한 이유는 착시에 대한 오래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착시가 생존에 도움을 준다는 진화론적 가설입니다.

현대 심리학은 인간 심리와 감각 활동의 많은 부분을 진화론으로 설명합니다. 식욕은 생존을 위해 존재하고, 성욕은 종의 유지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 등이 진화론적 설명입니다. 마음의 움직임, 즉 심리 역시 진화의 결과물이라는 겁니다.

검은 구멍이 점점 커지는 착시를 연구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에게 시각은 생명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감각이다. 만약 빛이 사라지는 어두운 공간에 들어간다는 건 엄청난 위험 요소다. 우리의 시각은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 따라서 빛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면 미리 동공을 확대하는 것이 좋다. 빛이 이미 사라진 뒤에 그렇게 반응하는 건 늦다.”

따라서 인간 두뇌는 위의 검은 구멍 사진을 ‘빛이 점점 사라지는 상황’으로 일부러 착각합니다. 그 결과 검은 구멍이 점점 커져 보이게 됩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런 착각은 빛이 사라져가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죠.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검은 구멍이 아니라 다른 색깔의 구멍은 어떨까요.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눈은 검은 구멍에만 반응해야겠죠. 다른 색깔은 빛이 존재한다는 걸 암시하니까요. 실제로, 실험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은 검은 구멍에서만 착시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진의 가운데 흰색은 주변의 흰색보다 더 밝지 않다. 사진 일본 리쓰메이칸대학교

이 사진의 가운데 흰색은 주변의 흰색보다 더 밝지 않다. 사진 일본 리쓰메이칸대학교

연구진은 이와 비슷한 실험을 과거에도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아사히(朝日)’ 실험입니다. 아사히는 일본어로 ‘아침 해’라는 뜻입니다. 나뭇잎들이 모이는 중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눈이 부실 정도죠.

이 역시 명백한 착시입니다. 가운데 하얀색은 바깥의 하얀색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가운데 부분을 눈부시게 느끼라고 우리 두뇌가 명령을 내리고 있을 뿐입니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이 모양은 우리가 구름이나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햇빛과 유사하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갑자기 내리쬐는 빛은 시각을 마비시키는 위험 요소다. 이 때문에 두뇌가 섬광으로 인한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착시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간 두뇌는 동공을 확대하라고 신체에 지시를 내림으로써 어둠의 위험에 대비합니다. 반대로 동공 수축을 지시함으로써 섬광으로 인한 망막 손상에 대비합니다. 어둠은 실족 위험을 높이고, 강렬한 빛은 안구에 손상을 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해서 본다

우리는 ‘본다’는 걸 눈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기’ 일어나는 일을 ‘눈이 본다’고 생각하죠. 과학적으로 보면 둘 다 사실과 다릅니다.

우리가 보는 건 눈이 감지하는 빛과 두뇌 활동의 결합물입니다. 사실 두뇌의 역할이 눈의 역할보다 훨씬 큽니다. 두뇌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상을 만듭니다. 두뇌가 해석하고 예측한 그림을 시각 정보에 입히죠.

우리는 경험적으로 호랑이 색깔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뇌는 자신도 모르게 경험에 기반해 호랑이의 색깔이 노란색이라고 해석해버린다. 하지만 실제 색깔은 흰색과 검은색 줄이 교차하는 형태다. 정말이다. 사진 일본 리쓰메이칸대학교

우리는 경험적으로 호랑이 색깔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뇌는 자신도 모르게 경험에 기반해 호랑이의 색깔이 노란색이라고 해석해버린다. 하지만 실제 색깔은 흰색과 검은색 줄이 교차하는 형태다. 정말이다. 사진 일본 리쓰메이칸대학교

우리가 사물을 보는 메커니즘은 이렇습니다. 우선 눈을 통해 사물이 반사한 빛을 봅니다. 빛은 각막을 통과해 수정체를 지나고 망막에 닿습니다. 망막 세포들은 이 빛을 받아들여 전기 신호를 만듭니다. 이 신호가 시각 신경을 통해 대뇌에 전달됩니다. 그러면 대뇌는 받아들인 정보를 바탕으로 ‘나름의 해석’을 입힙니다. 이게 우리가 ‘본다’는 행위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빛이 각막에 닿은 뒤 전기신호로 두뇌까지 전달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0.04~0.15초 정도로 알려져 있죠. 우리가 보고 있는 건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0.04~0.15초 전에 일어난 과거의 것들입니다. 문제는 두뇌가 그 찰나의 공백도 견디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경험’으로 찰나의 공백을 채웁니다. 공백을 채우기 위해 두뇌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결과 ‘착시’가 발생합니다.

이런 인간의 시각 메커니즘은 정신생리학적 용어로 ‘현재 감지(Perceiving-the-present)’라고 합니다. 0.1초를 기다리지 않고 두뇌가 상황을 예측해서 판단하는 겁니다. 오슬로 대학 연구진은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은 세상의 물리적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모양, 색깔, 밝기 등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뇌에서 추상화시킨다”고 했습니다.

뇌과학 전문가인 박문호 박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두뇌는 세계를 재구성한다. 눈이 감지한 것에다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세계상을 덧입힌 것이 우리가 보는 세상이다. 그 재구성 방식은 우리 진화와 생존에 도움이 되는 쪽을 택한다. 이 때문에 바깥의 진실과는 전혀 관련 없는 세계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우리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뇌가 믿는 대로 봅니다. 우리는 조명이나 색깔이 바뀌어도 사물의 고유한 모양과 색깔을 인지합니다. 우리 뇌가 사물에 고유한 색을 부여해놨기 때문이죠. 이는 유명한 ‘흰금-파검 드레스 실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뇌가 정해놓은 색깔에 따라 우리는 드레스의 색깔을 봅니다. 드레스 색깔이 먼저가 아니라 인간 두뇌의 해석이 먼저인 거죠.

흰금(흰색+금색)? 파검(파랑+검정)? 사람마다 두뇌 작용에 따라 색깔이 달리 보인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머리로 본다. 실제 색깔은 파란색, 검은색 조합이다.

흰금(흰색+금색)? 파검(파랑+검정)? 사람마다 두뇌 작용에 따라 색깔이 달리 보인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머리로 본다. 실제 색깔은 파란색, 검은색 조합이다.

두뇌가 채워 넣는 검은 공백

두뇌는 정보 공백을 없애기 위해 없는 것을 채우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간단한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죠. 맹점을 이용하면 됩니다. 맹점은 시각 정보를 망막에서 대뇌로 전달하기 위한 신경 다발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곳엔 시각 세포가 없어서 원칙적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마치 스마트폰에서 카메라 구멍 부분엔 화면이 안 뜨는 것과 같죠. 그래서 우리 시선이 미치는 곳 중 한구석은 까만 공백이 자리하고 있어야 하죠.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주위를 살펴봐도 시야에서 까만 공백은 찾을 수 없습니다. 일단 두 눈의 맹점이 겹치지 않아서죠. 그런데 한눈을 감고 봐도 여전히 그런 공백은 없습니다. 왜일까요. 두뇌가 알아서 이 부분을 채워 넣기 때문입니다.

맹점의 존재는 쉽게 확인이 됩니다. 한쪽 눈을 가리고요, 오른눈으로 보고 있다면 ‘오’라는 글자를, 왼눈으로 보고 있다면 ‘왼’이라는 글자에 초점을 맞춥니다. 가까이서 보다가 천천히 조금씩 멀리 두고 보다 보면 딱 어느 시점에 반대편 글자가 사라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지점이 바로 맹점이죠.

맹점이 확인되는가? 글자는 사라지지만 두뇌가 그 사라진 곳을 채운다.

맹점이 확인되는가? 글자는 사라지지만 두뇌가 그 사라진 곳을 채운다.

이상한 건 글자가 없어진 곳은 검은 공백이 아니라 배경처럼 그냥 하얀색이죠. 두뇌가 알아서 그 부분을 배경색에 맞춰 채워 넣었기 때문이죠.

더 신기한 건 또 있습니다. 이번엔 왼눈으로만 실험해 봅시다, 오른눈은 가리고요. 오른쪽에 있는 점 부분에 왼눈의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왼쪽 바큇살 무늬의 한가운데 비어 있는 부분에 맹점을 놓도록 거리 조절을 해보죠. 그러면 바큇살 가운데가 빈 게 아니라 모두 연결된 것처럼 보이죠. 이 역시 맹점을 두뇌가 채워 넣기 때문입니다. 두뇌가 판단하기엔 바큇살 가운데 공백이 있는 건 연속성이 없으니 선을 그냥 연결해버린 거죠.

바큇살 가운데에 맹점을 맞추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바큇살 가운데에 맹점을 맞추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우리가 보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은 두뇌의 세심한 보정을 거쳐서 보고 있는 겁니다. 이 때문에 대뇌에서 시각 처리를 담당하는 부분이 손상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보통 시각을 잃은 사람 대부분은 안구 손상 때문이지만, 때때로 대뇌의 시각 기능을 다쳐서 시각 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있죠.

대뇌엔 두 가지 시각 회로가 있는데, 하나는 ‘무엇 회로’이고, 하나는 ‘어떻게 회로’입니다. ‘무엇 회로’는 사물의 형태와 색깔 등을 인지하고, ‘어떻게 회로’는 받아들인 시각의 방향과 위치 정보를 파악해 동작을 가능케 합니다. 따라서 ‘무엇 회로’가 손상된 사람은 사물을 전혀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사물의 형태와 색깔을 인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회로’가 살아 있기 때문에 사물을 전혀 보지 못하는데도 물체를 모양에 맞게 손에 쥐거나, 날아오는 물체를 피하기도합니다. 우체통 납작한 구멍에 맞게 편지를 넣을 수도 있죠. 물론 본인은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뭔가를 채워 넣으려는 두뇌의 속성 때문에 시각이 크게 손상된 사람들은 이상한 환상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찰스 보넷 증후군’이죠. 백내장, 각막 손상, 황반변성, 당뇨망막변증 등에 걸린 사람에게 흔히 나타납니다. 대체로 노인이 많이 경험하죠.

이 증후군에 걸리면 환각을 매우 생생하게 겪습니다. 집안에 동물들이 출현하기도 하고, 만화 캐릭터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작은 인간들이 바글바글하게 움직이는 걸 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 증후군을 앓는 환자 수가 적지 않습니다. 2019년 전북대 의학전문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대상자 245명 중 찰스 보넷 증후군으로 진단된 사람은 6명으로 유병률은 2.4%였습니다. 환시의 형태는 원, 자동차, 굼벵이, 사람, 풍경 등 다양했습니다. 진단 환자의 평균 연령은 70.3세로 주로 고령에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증후군에 시달리지만 실제로 주위에서 그런 일 겪었다는 사람을 보기 힘듭니다. 세계적 뇌과학자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박사는 “환상을 보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기 위해 환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진실은 관점에 따라 바뀐다

인간 감각 중 시각만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촉각도 100% 확신할 수는 없죠. 라마찬드란 박사의 ‘가짜 손’ 실험이 유명합니다.

우리는 앞에 놓인 고무팔이 가짜인 걸 알지만, 내 팔이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우리는 감각을 믿을 수 있을까? 인스타그램 캡처

우리는 앞에 놓인 고무팔이 가짜인 걸 알지만, 내 팔이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우리는 감각을 믿을 수 있을까? 인스타그램 캡처

피실험자가 자신의 오른팔을 볼 수 없도록 가림막과 담요로 가립니다. 그다음 고무로 된 가짜 팔을 피실험자의 오른팔이 뻗은 모양대로 놓죠. 그런 뒤에 가짜 팔과 진짜 팔의 똑같은 부위에 똑같은 느낌의 자극을 줍니다. 그러면 어느새 피실험자는 고무팔을 자기 팔로 느끼게 되죠. 그 팔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죠. 이런 뒤에 누군가가 고무팔을 내리치려고 하면 피실험자는 실제로 자기 몸이 위협받는 듯 기겁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는 전기 피부 반응을 통해서도 확인이 되죠.

이렇게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세상은 우리가 느끼는 것과 다릅니다. 두뇌 보정을 거쳐 우리가 세상을 받아들인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에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박문호 박사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건, 우리의 환경이 만들어낸 ‘단편적 진실’일 뿐이다. 지각은 개념을 넘어설 수 없다"며 "그러니 내가 본 세계가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유용한 착각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다른 사고 체계에 늘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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