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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참전국에 12년째 기부…‘학도병 아들’ 치과의사의 호소

중앙일보

입력

 이규원(오른쪽)씨는 12년째 에티오피아에 매년 1000만원씩 기부하고 있다. 사진 본인 제공

이규원(오른쪽)씨는 12년째 에티오피아에 매년 1000만원씩 기부하고 있다. 사진 본인 제공

“잘 전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대단한 일이 아니다”라며 하얀 가운을 입은 그는 쑥스러워했다.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는 이규원(60)씨는 지난 2일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 월드투게더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군인에게 보내달라면서다. 올해로 12년째 매년 1000만원씩 한국전쟁 참전 군인을 위해 기부했다. 이씨는 “생면부지의 나라에 와서 목숨을 걸고 싸운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은하고 싶은 마음일 뿐”이라며 웃었다.

‘학도병 아버지’ 기억에 시작한 기부

이씨의 특별한 기부는 12년 전 우연히 듣게 된 참전군인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1951년 에티오피아는 유엔의 파병요청을 받자 황실 근위병을 중심으로 한 지원군 6000여명을 한국에 보냈다. 이들 중 120여명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종전 이후 시간이 흘러 퇴역군인이 됐고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현재는 300여명이 생존해있는데 대부분이 형편이 넉넉지 않다고 한다.

이규원씨의 사무실 한쪽은 학도병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차 있다. 심석용 기자

이규원씨의 사무실 한쪽은 학도병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차 있다. 심석용 기자

이씨는 뉴스에서 들은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아버지 이경종(88)씨가 떠올라서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 중학교 3학년 때 군복을 입고 총을 들었다. 3년간 사선을 넘나드는 동안 곁에 있던 전우 수백명이 죽거나 실종됐다고 한다. 다행히 아버지는 무사히 군복을 벗었지만,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평소 아버지의 아픔이 안타까웠던 이씨는 이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군인에 대한 보답을 결심했다. 그는 “에티오피아에선 5인 가족의 한 달 생활비가 4만원이라고 한다. 한 가구당 1년 생활비가 50만원이다. 내가 1000만원을 보내면 20가구가 1년간 편안히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학도병 재조명하는 치과의사

이규원 원장의 아버지 이경종씨는 인천 상업중 3학년이던 1950년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심석용 기자

이규원 원장의 아버지 이경종씨는 인천 상업중 3학년이던 1950년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심석용 기자

이국의 참전 군인에 관심을 가지면서 국내 학도병 문제에도 더 진지해졌다. 평소 아버지를 비롯한 학도병이 제대로 예우받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진료 사이사이 시간을 쪼개 학도병 재조명 작업을 시작했다. 전국에 흩어진 아버지의 옛 전우를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증언을 녹취했다.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치과 건물 1층에 ‘인천 학생 6·25 참전관’을 열었다. 참전관 곳곳을 학도병의 사연으로 채웠다. 운영비로 매년 8000만원을 쓰지만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간 수집한 학도병의 이야기를 엮은 『인천 학생 6.25 참전사』도 펴냈다. 이씨는 “현재 4권까지 출고했고 추가 수집한 자료가 정리되는 대로 5권과 6권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아버지의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녹취해 책으로 엮어냈다. 심석용 기자

이씨는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아버지의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녹취해 책으로 엮어냈다. 심석용 기자

최근 이씨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학도병들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진실과화해위원회에 요청했다. 당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전선에 남아야 했던 소년들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들이 공적에 적합한 예우를 받아야 한다는 게 이씨의 말이다.

“아버님이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기 전에 ‘내가 죽더라도, 우리 부자가 제대로 해내지 못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 나라 양지바른 곳에 전사한 내 친구들 이름만이라도 돌에다 새겼으면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분들을 위해 기부와 학도병 연구를 계속해보려고 합니다.” 어느덧 ‘학도병 지킴이’란 호칭이 익숙해진 치과의사의 간절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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