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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억 노린 '투구꽃 사망사건'…계곡살인 이은해가 놓친 결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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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꽃. 독성이 있어 섭취하면 치명적이다.

투구꽃. 독성이 있어 섭취하면 치명적이다.

[요지경 보험사기] 

지난 3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은해와 조현수의 ‘계곡 살인 사건’ 첫 재판에서 이들의 변호인은 “아직 검찰의 증거기록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혐의 인정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이은해는 보험금 8억원을 타내기 위해 공범 조현수와 남편을 계곡에 빠지게 한 살인죄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공개 수배된 '계곡 남편 살인사건' 용의자 2명 이은해, 조현수 [연합뉴스]

공개 수배된 '계곡 남편 살인사건' 용의자 2명 이은해, 조현수 [연합뉴스]

검찰은 두 사람이 향후 재판에서도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두 사람은 계곡에 빠진 피해자를 구조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하지 않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기소됐는데, 입증이 쉽지 않아서다.

조재빈 인천지검 1차장검사는 “신체 접촉이 없는 특이한 사건으로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사건”이라며 “판사가 보기에 ‘살인한 게 맞다’고 확신이 설 수 있을 정도로 증거를 확보해서 법원에 보내는 게 검찰의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형사 재판에서 무죄를 받는다고 해서 이들이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면 이들은 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는 민사 소송이라 형사 소송의 범죄 입증과 달리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적용받아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신의칙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사의 대원칙이다.

실제로 형사 사건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신의칙 위반으로 보험금을 받지 못한 경우가 있다. 2012년 발생한 ‘투구꽃 사망 사건’이다.

경남 김해의 한 주점에서 일한 20대 여성 장모씨는 의자매처럼 가깝게 지낸 언니 오모씨와 평소 ‘죽고 싶다’ ‘같이 죽자’는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2012년 8월 장씨는 오씨와 친분이 있던 보험모집인을 직접 찾아가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보험가입금액 10억원으로, 월 보험료는 117만원이었다.

장씨는 보험에 가입한 날부터 인터넷에서 ‘투구꽃’ ‘협죽도’ 등 독성이 있는 식물과 이를 파는 화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협죽도는 꽃이 화려해 조경수로 많이 심지만 먹으면 치명적인 독성 식물이다. 투구꽃 역시 독성이 있는 꽃으로 영화나 소설에서 범죄 도구로 종종 등장하는 소재다.

같은 해 9월 장씨는 한 화원에 전화해 투구꽃과 협죽도 화분을 각 1개씩 주문해 자신이 장기 투숙하고 있던 모텔로 배송받았다. 다음 달 초 장씨는 보험모집인에게 전화해 수익자를 오씨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장씨는 투구꽃과 협죽도를 직접 달여 마셨다.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 않자 장씨는 모텔에 찾아온 오씨에게 “협죽도를 먹었는데 멀쩡하다”고 말했다. 이에 오씨는 인터넷에서 ‘협죽도 독’ ‘투구꽃 독’ 등을 검색해보고, 한 화원에 전화해 살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추가 구매를 하지는 않았다.

투구꽃과 협죽도를 달여 마셨던 장씨의 건강은 곧 악화됐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가 되더니 그해 10월 10일 급성심장사로 사망했다. 2주 뒤 오씨는 보험사에 장씨의 사망보험금 42억5000만원을 청구했다. 사망보험금에는 장씨가 은퇴할 시기까지의 미래 소득이 포함됐다.

늘어나는 살인.상해 보험사기 적발금액.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늘어나는 살인.상해 보험사기 적발금액.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보험사는 생명보험금 부정 취득을 노린 사기를 의심해 수사당국에 조사를 요청했다. 경찰은 오씨가 장씨를 꼬드겨 자살하도록 한 뒤 보험금을 타내려 했다며 자살방조죄 등 혐의로 구속했고, 검찰은 이를 재판에 넘겼다. 2014년 서울고등법원은 “오씨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장씨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오씨는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민사 소송 재판부의 판단은 형사 소송과 달랐다. 재판부는 우선 장씨의 재산 상태를 살폈다. 보험 체결 당시 장씨의 통장에는 247만원이 있었고, 월평균 240만원 정도를 벌었다. 월 보험료 117만원은 장씨 소득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게다가 이 보험 계약은 실적배당형 종신보험으로 저축을 위해 납입한 것으로도 볼 수 없었다. 장씨가 협죽도와 투구꽃을 달여 마신 뒤, 오씨가 인터넷으로 ‘사망보험금 지급기한’ ‘사망보험금 세금’ 등을 검색한 기록도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1심 재판부는 “보험계약 체결 당시 장씨의 직업과 재산 상태, 시기와 경위, 규모와 성질, 계약 체결 후의 정황 등을 종합하면 장씨는 자살을 우연한 사고로 가장해 오씨가 보험금을 부정하게 취득하도록 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해당 보험계약은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 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며 오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오씨는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오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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