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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에 돈방석? 정유업계 '가시방석'…초과이익 '횡재세' 압박

중앙일보

입력

=24일 서울시 내 한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표시돼 있다.   [뉴스1]

=24일 서울시 내 한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표시돼 있다. [뉴스1]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이 2100원 선을 넘으며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유사에 대한 고강도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고유가를 통해 얻은 초과이익에 이른바 ‘횡재세’를 부과하거나 기금 출연 등으로 이익 일부분을 환수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기업에 이윤 축소를 강요하는 것은 과도한 정치논리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휘발유·경유 가격 연일 최고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최근 국내 기름값은 지난달 첫 주 하락한 이후 7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4일 오후 5시 기준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L당 2126.71원, 경유 가격은 2143.13원이다. 경윳값은 지난달 24일 처음으로 L당 2000원을 넘었고 휘발윳값도 연일 최고가를 경신 중이다.

정부는 지난달 유류세 인하 폭을 기존 20%에서 30%로 확대한 데 이어 내달 1일부터는 37%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기름값 상승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정책 효과가 미미하자 정부는 담합 등 정유사와 주유소의 불공정 행위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 원화가치 하락 등 외부 요인이 크긴 하지만 정유업계 역시 유류세 인하분을 판매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어 가격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정치권, “정유사 고통 분담하라”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1분기 정유4사 영업이익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1분기 정유4사 영업이익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치권에서는 초과이익 환수 주장까지 나왔다. 고유가로 인한 정제마진으로 정유사가 이익을 봤으니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취지다.

포문을 연 것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휘발유·경유 가격을 200원 이상 떨어뜨리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도 이날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고통 분담 차원에서 정유사의 초과 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도 가세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수 부족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유류세 인하 폭을 최대한 늘렸다”며 “정유사들도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를 불리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통 분담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며 “고통 분담에 동참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정부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국내외 정유업체, 역대급 호실적

1년 만에 실적 살아난 정유업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1년 만에 실적 살아난 정유업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는 해외에서 추진 중인 이른바 ‘횡재세’와 같은 맥락이다. 미국 민주당은 초과이윤을 내는 석유기업에 대해 세금을 늘리기 위한 일종의 징벌세를 검토하고 있다. 영국도 지난달 석유·가스 기업에 25%의 초과이윤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고, 헝가리·이탈리아도 에너지 기업에 초과이윤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실제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며 전 세계 정유업체들은 역대급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정유사도 마찬가지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4개 정유사가 지난 1분기 거둔 영업이익은 4조7668억원이다. 오는 2분기 실적 전망 역시 밝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전년 동기 대비 100.3% 증가한 1조144억원이다. 에쓰오일 역시 같은 기간 60.5% 상승한 9163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이익 환수 놓고 의견 분분

하지만 정부가 민간 기업의 이익을 환수하는 것은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는 목소리도 크다. 우선 정유업계가 초과로 얻은 이익을 어떤 방식으로 산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손실에 대해서는 보상하지 않으면서 이익만 가져가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시작됐던 지난 2020년의 경우 국제유가가 급락하며 정유업계는 5조3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적자가 나면 정부가 보전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일시적 이익마저 억제하려 드는 것은 과도한 정치논리”라고 반발했다.

투자자들 역시 주주의 재산권을 훼손하는 조치라며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시각은 주가에도 반영되고 있다. 24일 유가증권시장에서 SK이노베이션은 19만8000원, 에쓰오일은 10만3500원에 장을 마쳤다. 정치권이 초과이익 환수 조치를 언급하기 전인 지난 20일과 비교해 SK이노베이션은 2만2500원, 에쓰오일은 9500원 떨어졌다.

기업 이익을 환수하는 방식의 접근이 전체적인 물가 관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가가 올라가는 상황 자체도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특정 시점에 이익이 났다고 이를 환수하는 것은 부적절한 조치”라며 “경제 원리나 시장의 작동과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물가를 제어할 수 없고 다른 물가 관리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오히려 유류세의 경우 100% 인하 조치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며 “가격을 통제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어떻게 기업의 비용을 줄여줄지, 어떻게 유동성을 회수할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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