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아파트 둘러싼 희대 사기극, 시작은 "아들 여섯 전사"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2022.06.25 05:00

업데이트 2022.06.2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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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유족 기장 여섯개 단 김병조 

1959년 6월 6일 서울 동작동 국군묘지. 분향소 앞에 선 유족은 연신 눈물을 훔치거나 입을 틀어막은 채 흐느꼈다. 6·25 전쟁(1950~1953) 때 전사한 군인 유족을 초청한 ‘제4회 현충일’ 기념식 모습이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는 그런 유족의 손을 꼭 잡으며 위로했다. 서울기록원과 e영상역사관이 보유한 흑백사진에 담긴 모습이다.

[e즐펀한 토크]

당시 이 대통령의 눈에 띈 유족이 있었다. 왼쪽 가슴에 6개의 군인 유족 기장을(紀章)을 단 김병조(55)씨였다. 6개 기장은 여섯 아들의 죽음을 의미했다. 김씨는 이 대통령에게 “6·25 때 육 형제를 고스란히 조국에 바쳤다”며 “제주도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정부는 김씨에게 건국공로훈장을 수여하고 전사자 연금을 지급했다.

1961년 박정희 제2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김씨를 더욱 우대한다. 박 의장은 김씨에게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옛 풍전(豊田)빌딩(현 충정아파트)의 관리·운영권을 통째로 넘겨줬다. 당시 건물의 가치는 5000만 원으로, 현재 수십억 원으로 추산된다.

6.25 때 여섯 아들이 모두 전사했다고 주장해 정부로부터 충정아파트를 무상 불하받은 김병조씨(왼쪽)과 국내 최고령 아파트인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 사진 KTV, 김민욱 기자

6.25 때 여섯 아들이 모두 전사했다고 주장해 정부로부터 충정아파트를 무상 불하받은 김병조씨(왼쪽)과 국내 최고령 아파트인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 사진 KTV, 김민욱 기자

반공의 아버지로 언론에 소개  

정부가 김씨에게 무상 불하를 하기 전까지 풍전빌딩은 ‘트레머(Traymore)호텔’이라는 이름으로 미군(軍)이 갖고 있었다. 당시 미 군당국 핵심 관계자 역시 김씨의 기구한 사연에 감동해 한국 정부에 풍전빌딩을 넘겨줬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한 가정에서 4명 넘게 전사자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언론에 ‘반공의 아버지’로 소개됐다.

같은 해 8월 김씨는 ‘코리아관광호텔’로 명칭이 바뀐 풍전빌딩의 소유자가 됐다. 이듬해인 1962년 4월 대한뉴스는 이 소식을 상세히 다뤘다.

1959년 '제4회 현충일 기념식'에 초청된 6.25 전사자 유족들이 분향하면서 오열하고 있다. 사진 서울기록원

1959년 '제4회 현충일 기념식'에 초청된 6.25 전사자 유족들이 분향하면서 오열하고 있다. 사진 서울기록원

투서 한 통으로 시작된 수사 

하지만 국가재건회의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 후 김씨의 대국민 사기극이 드러나게 된다. 편지에는 ‘(본명이) 김병조가 아닌 김병좌(佐)다’, ‘그에겐 여섯 아들이 없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당시 치안국 수사 결과 김씨가 아들들이 전사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엉뚱한 사람을 자신의 호적에 허위로 입적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맏이부터 둘째·여섯째 등 3명은 전쟁이 터진 6·25 당일에, 셋째는 같은 해 10월 10일, 넷째·다섯째는 1951년 9월 15일에 각각 전사한 것으로 조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군인이 어디서 전사했는지, 탈영 또는 실종됐는지 직속 부대장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김병조씨 사기극 수사상황을 다룬 1962년 8월 21일자 동아일보 신문. 사진 동아일보

김병조씨 사기극 수사상황을 다룬 1962년 8월 21일자 동아일보 신문. 사진 동아일보

김병조 “쌀 배급이라도 타려 했다” 

김씨의 사기 행각은 아들 중 일부의 사망 신고일과 호적 입적일이 같은 점을 수상히 여긴 수사당국에 덜미가 잡혔다. 두 형제의 군번이 329945, 329936 처럼 연번인 점도 의심을 샀다. 결국 징역형을 선고받은 김씨는 “(단순히) 쌀 배급이라도 타려고 했던 것이 어마어마한 범죄가 됐다”고 말했다.

국내 최고령 공동주택인 충정아파트를 둘러싼 희대의 사기극 전말이다. 당시 언론은 ‘봉이 김선달도 무색할’이란 표현을 써가며 대서특필했다.

충정아파트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준공돼 올해로 85년이 된 건물이다. 서대문구의 옛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등기에 의한 등재’라고 쓰여 있다는 점에서 건축 전문가들은 1937년보다 앞서 준공됐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국내 최고령 아파트인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 올해로 85살이 됐다. 김민욱 기자

국내 최고령 아파트인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 올해로 85살이 됐다. 김민욱 기자

85세 국내 최고령 충정아파트 

과거 ‘도요타(豊田) 호텔’로 불렸던 아파트가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건 1980년대부터다. 70년대 후반엔 인접 충정로가 확장되면서 한 쪽이 밋밋하게 잘렸는데, 이후 건축물의 큰 변화는 없다. 현재도 건물 안에는 중정(中庭)이 있으며, 과거 중앙난방장치에 딸린 굴뚝도 있다.

낡은 충정아파트가 서있는 주변은 역세권이어서 역동적인 분위기다.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에서 100m가량 떨어져 있다. 1층엔 부동산·편의점·분식점·사진관 등이 자리해 있다. 한때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표어로 알려진 ‘화장실문화시민연대’ 사무실이 입주하기도 했다.

부동산 거래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저층 매물(전용면적 90.9㎡)이 6억 원에 거래됐다. 같은 해 6월에는 전세계약도 2건 이뤄졌다.

충정아파트 입구 모습. 세월의 흔적이 내려 앉아 있다. 김민욱 기자

충정아파트 입구 모습. 세월의 흔적이 내려 앉아 있다. 김민욱 기자

안전진단 ‘D등급’…서울시 철거 결정 

충정아파트가 한국 근현대 건축사를 관통하다 보니 “보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다. 안전진단 결과 가장 낮은 단계 바로 위 등급으로 긴급한 보수·보강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판정이다. 충정아파트 보존안은 지난해 8월 열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후 지난 15일 서울시 도계위는 건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충정아파트의 구체적인 개발계획은 아직 미정이다. 앞으로 주민제안 등을 통해 확정될 것”이라며 “건물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지만, 시민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공개공지(公開公地) 조성을 통해 충정아파트를 기억할 수 있는 역사공간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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