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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폐'에 -95%여도 팔았는데, 정작 회사는 부활…개미의 절규

중앙일보

입력

감마누 회사 홈페이지의 모습. 사진 홈페이지 캡쳐

감마누 회사 홈페이지의 모습. 사진 홈페이지 캡쳐

60대 A씨는 1주당 1만 2000원에 샀던 주식을 주당 500원에 팔았다. 수익률이 마이너스 95%에 이르는 가격이었다. 2018년의 일이다. 코스닥 상장사 ‘감마누’(현 THQ)의 주식이었는데, 당시 회사가 상장폐지를 앞두게 되면서 눈물을 머금고 처분했다고 한다.

노후를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한 투자였다. 2017년부터 꾸준히 사들였던 주식이 푼돈이 되는 데에는 몇 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2018년 3월, 감마누는 회계감사에서 감사범위 제한으로 ‘의견거절’을 받고 거래가 정지됐고 한국거래소는 같은 해 9월 감마누의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급작스러운 ‘상폐’ 소식에 주주들은 패닉에 빠졌다. 2018년 9월 28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열린 정리매매(상장폐지 주식에 대해 마지막으로 거래할 기회를 주는 것)에서 감마누 주가는 1주당 400원 선까지 급락했다. 거래정지일 기준 종가(1주당 6170원)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었다. A씨도 대출을 5000만원까지 받아가며 매입한 주식을 정리매매 기간에 대부분 처분하고 1억 7000만원을 손해봤다. A씨는 “당시 감마누가 중국 여행사에도 투자를 해 미래를 보고 주식을 샀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거래 정지, 상장 폐지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대출도 갚아야 해서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주식 처분했는데…상장폐지 피한 회사

2017년 1월 1일부터 현재까지 감마누(현 THQ)의 주가 차트. 사진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 캡쳐

2017년 1월 1일부터 현재까지 감마누(현 THQ)의 주가 차트. 사진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 캡쳐

그런데, 회사는 상장이 폐지되지 않았다. 법원에 신청한 상장폐지 결정 효력정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지고 본안 소송에서도 상장 폐지 결정이 무효로 인정됐다. 2심 재판부는 “추가 개선 기간 부여 권한에 관한 거래소의 재량권 일탈·남용이 인정된다”고 판결했고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감마누는 재감사를 받아 2019년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적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대법원 판결 후 감마누는 거래가 재개됐다.

기존 주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거래소 판단 때문에 주식을 처분했는데 결국 막대한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공시에 따르면 상장폐지 결정이 나기 전인 2018년 3월 감마누의 소액주주는 1만2336명으로 이들이 1189만1902주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2020년 6월 기준 소액주주는 7324명, 이들이 보유한 주식은 874만3164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에 개인 투자자 수백명은 거래소를 상대로 2020년 10~11월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액주주 소송에 법원, “거래소 불법행위 아니다”

법원은 거래소에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24일 서울남부지법은 감마누 기존 주주 262명이 거래소를 상대로 45억7800만원을 배상하라며 제기한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거래소)가 객관적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그로 인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할 정도에 이르렀다거나, 상장폐지 결정이 주주들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법원 입구. 연합뉴스

법원 입구. 연합뉴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의 이 사건 상장폐지 결정 및 이 사건 정리매매 진행 행위가 감마누 주주들인 원고들에 대한 불법행위에 해당함을 전제로 하는 원고들의 청구는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앞서 지난 2월 중앙지방법원에서도 개인투자자 308명과 법인 한 곳이 거래소에 59억96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가 패소했다.

소액주주들 망연자실…“누가 책임지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송을 진행했던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투자자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걸 알지만, 거래소가 상장 폐지를 했다가 뒤집히는 사상 초유의 상황까지 투자자가 몽땅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감마누 소액주주 모임 대표 양장민(40)씨는 “주주들은 대학생부터 은퇴한 분까지 다양하다. 퇴직금이나 주택 전세 자금을 넣은 분도 있다. 주주들이 무슨 잘못이냐”고 반문했다. A씨는 “(거래소가) 개미들한테 정확한 자료를 주고 거래 정지나 상장 폐지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 아니냐.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있는데 책임은 어디도 안 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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