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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우주적 관점’ 일깨워 준 누리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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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호 31면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지난 21일 오후 4시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개발된 한국형 우주 발사체 누리호가 인공위성을 우주 궤도로 쏘아 올렸다.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에 이어 세계 7번째 일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구 너머 우주로 확장되는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는 감격을 누리게 되어 뿌듯하고 행복했다.

누리호가 우주로 간 사건은 우리가 자기 힘으로 ‘우주에 관한 더 깊은 질문’을 탐구하는 자리에, 즉 우주가 인간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들을 위치에 섰음을 뜻한다. 우리는 더는 지구에 붙박인 속 좁은 인간이 아니다. 비록 몸은 한반도에 발 딛고 있더라도, 우주의 눈으로 지구를 바라보고 인간을 성찰할 힘을 얻었다. 우주는 우리를 계몽한다. 우주는 더 넓은 시야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인간을 바라볼 것을 촉구한다. 그리하여 우주적 시선은 우리를 전혀 다른 존재로 살아가게 만든다.

누리호 성공은 우리의 시야 넓혀
지구와 인간을 다시 성찰케 해
티끌 같은 존재들이 증오하는 현실
부끄럽게 느끼는 계기 되었으면

선데이 칼럼 6/25

선데이 칼럼 6/25

우선, 우주를 만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지구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우주로부터의 귀환』에서 다치바나 다카시는 수많은 우주 비행사의 경험을 이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그들은 과학자로 우주로 갔으나, 자주 시인으로 귀환했다. 우주에서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해 우주의 시를 썼다. 지구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찬미했다. 우리는 우주를 알기 위해 갔으나, 실제로 더 많이 알게 된 것은 지구와 우리 자신이다.

우주는 우리를 영적 존재가 되게 한다. 우주를 탐험하는 일은 단지 과학적 사건만은 아니다. 우주는 우리를 언제나 과학적 탐구를 넘어서 영적 탐구에 이르도록 만든다. 일찍이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통찰했듯, 우주와의 접촉은 곧 인간 영혼의 확장이다. 먼 우주에서 본 지구는 한낱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는다. 광활한 어둠 속에 하나의 점으로 찍힌 지구는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미약함을 끝없이 환기한다. 우리가 더 거대한 세계의 작디작은 일부임을 선연히 느낀다면 무엇보다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우주로 간 인공위성이 보내올 사진에 찍힐 한반도 모습은 분명히 손가락보다 작을 테다. 그 가느다란 기둥에 5000만 인간의 사랑과 증오, 연대와 투쟁, 열정과 좌절, 기쁨과 슬픔 등이 모두 담겨 있다. 조그마하고 나약하며 하찮은 존재가 협소한 시야로, 눈앞의 욕망을 이기지 못한 채 약자에 대한 차별을 일삼고 환경을 파괴하면서도 수치를 모른 채 아등바등 다투는 가소로운 일이 그 안에서 벌어진다. 『코스모스』에서 세이건은 말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가 귀중한 존재입니다. 여러분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남을 죽여 없애려 하지는 마세요. 1000억 은하에 똑같은 인간은 둘도 없으니까요.”

우주는 우리를 사랑의 존재가 되도록 만든다. 누리호와 함께 우리는 우주에서 우리 자신의 정확한 위상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우주라는 커다란 양탄자의 한 오라기 실밥에 불과하다. 그러한 우리가 티끌처럼 작디작은 욕망을 이루고자 타자를 희생시키는 게 얼마나 헛된지를 깨달으면 증오를 부추기고 혐오를 찬양하며 약자를 무시하는 일을 차마 할 수 없게 된다. 대립과 분열의 정치에 표를 던지고, 선동과 도발의 방송을 후원하지 않게 된다. 자신이 야만의 표상처럼 느껴져서 부끄럽기 때문이다.

지난 40년간 남편과 함께 『코스모스』를 집필해 온 세이건의 아내 앤 드루얀은 이야기한다. “우주는 예술 작품이다. 우리 영혼을 파고들어 의식을 바꾸는 힘이 있다. 창백한 푸른 점은 근본주의자, 국가주의자, 군국주의자, 오염자를 말없이 질책한다. 우리가 지구를 지켜내고, 또 그 행성이 방대하고 차가운 어둠 속에서 지탱하는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는 모든 이들을 질책한다.”

우주는 우리를 생태주의자로 만든다. 유리 가가린 이후 우주를 다녀온 수많은 비행사는 우주에 나가면 차가운 우주 다른 어느 곳에도 생명이 없음을 선연히 깨닫는다고 고백한다. 광막한 우주에 수많은 별이 있지만, 우리는 지구 바깥에 생명이 있다는 어떤 증거도 아직 찾지 못했다. 지금으로서는 우주에 단 하나의 행성만이 생명 친화적 환경을 품고 있다. 공기·물·토양 등 우리 생명의 토대를 우리 스스로 파괴하는 일은 얼마나 한심한가. 지나친 자연 착취로 수많은 종을 멸종에 빠뜨리고, 기후 변화와 핵 재앙의 공포로 우리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주는 우리를 우주의 시민으로 진화시킨다. 『코스믹 커넥션』에서 세이건은 우주가 우리를 어떤 존재로 성숙시킬 것인지를 전한다. “의식 있고, 현명하고, 공감할 줄 알고, 뜨거운 호기심이 넘치고, 영원히 회의하고, 힘 있는 자의 조종과 위협에 굴하지 않으며, 우리를 가두고 갈라놓는 벽에 갇히지 않는 존재” 말이다. 그는 “서로를 배려하는 능력에 자부심을 느끼며 자연과 시공간의 직물에서 우리가 얼마나 하찮고 미미한가”를 깨닫는 동시에 “자연의 경이를 끌어안음으로써 충만한 안정감을 느끼며 과거와 미래의 세대를 연결하는 고리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존재일 터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이런 존재이기를 꿈꾸어 왔다. 누리호와 함께 지금 우리는 그 문턱에 섰다. 우주의 인간적 의미를 성찰하는 시민이 되자.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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