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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탈북자, 월북자, 대한민국 국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94호 30면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2019년 11월 7일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장(중령)이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보낸 문자가 우연히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판문점에서 북한 주민 2명을 송환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닷새 전 17t 규모의 오징어잡이 어선을 타고 동해상에서 해군에 나포됐다. 귀순 의사를 밝혔지만, 포승에 묶이고 안대로 눈을 가린 채 판문점으로 이송됐다. 사진 한장이 아니었다면 자칫 묻힐 뻔한 사건이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이 사건 이후 강제로 북쪽으로 밀어내거나 북송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해상 탈북자 대부분은 공해상에서 한국 해군 만나기가 가장 두려웠다고 한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들이 선장을 포함한 선원 16명을 죽인 살인범이라서 북송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결정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제대로 된 조사나 재판도 없이 자백만으로 살인 혐의를 인정한 점, 설령 그런 혐의가 사실이더라도 북한은 우리나라와 범죄인 인도협약을 맺지 않아 송환 의무가 없다는 점, 유엔고문방지협약에는 흉악범이라도 고문 등 비인도적 처벌의 위협이 있는 경우 송환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데이비드 앨턴 영국 상원의원은 “탈북 선원을 북한으로 송환한 것은 죽음이 도사리는 베를린장벽 저 너머로 되돌려보내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75년 동독 군인이 국경경비대 두 명을 살해하고 귀순한 사건에서 서독은 송환을 거부하고 재판을 통해 3년6개월형을 선고했다.

“생명과 안전에 무한 책임”이라더니
범법 의혹만으로 국민 저버리는가

이런 법적 논란에 앞서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이다. 어느 나라도 자국민을 추방하지는 않는다. 1996년 대법원은 “탈북자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강제퇴거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런 판결은 국제적으로도 통용된다. 영국 법원은 2014년 “모든 북한 국민은 한국 국민”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를 근거로 영국·캐나다 등은 난민 신청을 한 탈북자들을 꾸준히 한국으로 추방한다.

2020년 9월 22일 벌어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군이 표류 중이던 해수부 어업지도원에게 총격을 가한 뒤 시신을 불태웠다. 사흘 뒤 “국무위원장 김정은 동지는 뜻밖의 불미스러운 일로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 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하시였습니다”라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사과문을 받았다.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해경은 억대 도박 빚을 진 이씨가 월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월북 시도 여부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국민을 보호하려 최선을 다했는지 의문이 든다는 게 문제다. 대마도 앞바다에서 일본 해상자위대가 표류 중인 우리 국민을 사살했다고 생각해 보자. 몇 시간 동안 지켜만보다가 나중에 ‘통석(痛惜)의 념(念)’을 담은 일본 천황 명의의 사과문 한장에 ‘우연히 벌어진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넘어갈 수 있을까.

최근 정부는 두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시작했다. 이에 대해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윤석열 정부가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에 대해 근거도 없이 정치 공세의 도구로 활용하더니, 16명의 무고한 동료들을 죽인 흉악 범죄 북한 어민의 북송사건을 2탄으로 꺼내 들었다”며 “엽기 살인마를 보호하자는 말이냐”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근거 없는 정치 공세가 민주당의 입장인가. 2017년 12월 3일 인천 영흥도 앞바다에서 낚싯배 전복 사고로 17명이 숨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날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앞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했다. 문 대통령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은 국가의 책임”이라며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해 무한 책임이라고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말하는 국민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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