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77조 대주주·기관 물량 풀려, 개미들에게 직격탄

중앙선데이

입력 2022.06.2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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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호 15면

보호예수 해제 주의보

서울에 사는 프리랜서 박정원씨(49)는 최근 하루에도 몇 번씩 하이브 주식을 보며 매도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BTS 팬심에 이끌려 2020년 말부터 주식을 시작한 그는 최근 하락장에서도 하이브 주식만은 매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BTS의 단체 활동 종료 발표에 이어 저스틴 비버와 아리아나 그란데 등 주요 주주의 보호예수가 종료된다는 소식에 주식 처분을 고민하고 있다. 박씨는 “저스틴 비버와 아리아나 그란데까지 떠나면 심리적으로 기댈 곳이 없을 것”이라며 “보호예수가 끝나기 전에 주식 일부라도 정리할지 매일 고민한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 내부사정 몰라 큰 피해  

최근 증시가 휘청 이는 가운데 박씨처럼 보호예수 해제에 긴장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보호예수는 기업공개(IPO)나 유상증자, 인수합병 때 주식을 다량 보유하게 된 투자자에게 일정 기간(3~12개월) 주식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최대주주와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은 의무이고, IPO·유상증자·인수합병 주체나 주요 투자자가 소액 주주 보호를 위해 자체적으로 3개월에서 1년까지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1990년대 말 코스닥 시장을 중심으로 최대주주가 지분을 매도하고 떠나는 이른바 ‘먹튀’가 빈번하자 미국 나스닥의 ‘매각제한기간제도(Lock-up Period)’를 참고해 도입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보통 3개월에서 1년가량 의무보유 기간이 설정되고, 이 기간에는 매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먹튀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지만, 투자자들이 불안해하는 건 지금처럼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을 때는 보호예수 해제 물량이 주가 하락을 재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4월 27일 보호예수 물량 일부가 해제된 LG에너지솔루션은 매물이 급증하면서 이후 10거래일 만에 주가가 14%가량 빠졌다. LG에너지솔루션처럼 매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오버행’(과도한 잠재 매도 물량 부담) 우려에 주가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호예수가 해제되면 투자자들의 이익 실현 욕구가 강해진다”며 “실제 매각으로 이어질 경우 시장에 부담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런데 올여름에는 SK리츠·롯데칠성음료·흥아해운·LG에너지솔루션 등의 보호예수 물량이 대거 풀린다. 코스피에서만 5억1231만주가량으로 77조5000억원 규모다. 금액만 놓고 보면 카카오뱅크와 크래프톤,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 최근 수년간 IPO시장을 주도했던 종목의 보호예수가 풀렸던 지난해 11월(11조원)과 올해 2월(14조원)을 뛰어넘는다. 지난 1월 27일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은 4월 일부 물량이 풀린 데 이어 7월 27일 전체 상장 주식의 86%(2억146만주)가 보호예수에서 해제된다. LG화학 보유 물량(1억9150만주)이 절대적이지만, 기관투자자 물량도 996만주가량으로 약 4조원 규모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할 때 기관투자자들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대부분 6개월 보호예수를 약속해 단기적으로 오버행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종목에서 대량 매물이 출회할지는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대주주의 재무상태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가늠은 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설명이다. 주요주주인 모회사가 차입금 상환이나 투자자금 조달 등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지분 매각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텔롯데는 지난 9일 보유 중이던 롯데칠성음료 주식을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도했다. 시장에서 거래된 주식은 20만주로 거래대금은 371억2800만원이다. 호텔롯데 측은 당시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 롯데칠성 지분을 매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대주주가 소리 소문 없이 보유 주식을 매도하는 행태도 부담이다. 기업 내부 사정을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는 대주주가 손을 털고 나간다는 것은 시장에 매도 신호를 줄 수 있는데, 파급력에 비해 사전 고지가 부족하다보니 피해가 개인 투자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8일 하루에만 18% 급락한 카카오페이다. 지난해 12월 경영진의 주식 대량 매도 사태로 홍역을 치른 카카오페이는 이달 7일에도 대량 매물에 충격을 받았다. 2대 주주인 알리페이가 보호예수 해제 물량 5101만5205주 가운데 500만주를 팔아치운 것이다. 시간외 거래이긴 했지만, 하루 거래량(약 35만주)의 14배에 달하는 물량이 한 번에 나온 셈이다. 이에 일반 주주들은 주가 급락의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10만원대에서 거래되던 카카오페이 주가는 지난 22일 6만원대 후반까지 하락했다.

알리페이 손 턴 카카오페이도 급락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내부자 주식 거래시 사전신고 제도 강화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미국은 보호예수 이후 주요주주가 주식을 처분할 때, 사전에 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선 이 같은 제한이 없어 경영진을 비롯해 주요주주들이 고지 없이 주식을 팔고, 이 피해는 일반 투자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김유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부자 증권거래는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데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며 “기업 내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주주에 한해선 사전에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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