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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 변곡점, 나토 정상회의 D-4]중·러 밀월에 대응, 미 범유라시아 군사 협력체 결성 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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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호 10면

SPECIAL REPORT 

지난 6일 북유럽 발트해에서 진행된 나토 합동군사훈련에서 편대를 형성한 나토 전투기들이 미 해군 강습상륙함 위를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6일 북유럽 발트해에서 진행된 나토 합동군사훈련에서 편대를 형성한 나토 전투기들이 미 해군 강습상륙함 위를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는 29~30일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이 옵서버 자격으로 초청받아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참석한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도 함께 초청됐다. 지금 유럽 대륙에선 1945년 2차 대전 종식 후 77년 만에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발해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의 군사동맹 회의에 한국 등 아시아 주요국이 초청된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한국의 참석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1949년 소련 공산주의 패권 확장을 막기 위해 결성된 나토는 냉전 기간 미국과 영국·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옛 소련의 대규모 지상군과 핵무기에 맞서 유럽은 물론 전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 가장 강력한 군사동맹의 역할을 수행했다. 옛 소련의 몰락으로 냉전이 종식되자 나토도 해체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동유럽 내 유고연방의 해체로 보스니아·코소보 등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과거 전범국인 독일의 재부상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를 해소할 집단안보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존속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낸 러시아엔 나토 비확산을 약속하기도 했다.

문제는 나토가 당초 약속과 달리 옛 소련의 동맹이자 위성국가 역할을 하던 동유럽 국가들을 신규 회원국으로 잇따라 받아들이며 규모를 키워갔다는 점이다. 2008년엔 러시아 안보의 안전판 역할을 하던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마저 나토 가입을 표명하자 러시아의 안보 불안은 더욱 가중됐고 나토와 러시아의 대립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2008년 조지아 분쟁, 2014년 크림반도 병합은 올해 우크라이나 침공의 서막이었다. 여러 국제정치학자들이 미국과 나토의 확장 정책을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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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도 속에서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 동맹국들을 초청한 미국의 속내와 전략적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강력히 규탄하며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쟁을 미국과 나토는 유엔 헌장의 근본 원칙에 위배되는 자의적 무력행사로 규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핵을 보유한 러시아와의 무력 충돌이나 확전은 기본적으로 배제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경제 지원은 하면서도 직접적인 군사 개입엔 명확히 레드라인을 긋는 까닭이다. 대신 국제사회의 강력한 규탄을 통해 러시아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미국의 기대와 달리 중동·아프리카·중남미와 아시아의 상당수 국가들은 중립과 관망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미국이 민주동맹으로 가장 공을 들인 인도의 경우 러시아와의 특수 관계를 들어 싼값의 러시아산 원유를 루블화로 대량 수입하며 오히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국가가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러시아 규탄에 동참할 경우 미국 입장에선 큰 힘이 될 수 있다.

둘째, 미국은 러시아와 푸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과 더불어 경제적 고립과 제재를 가장 중요한 정책 압박 수단으로 채택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나 금융 거래 중단 등을 1차 제재로 시행 중이다. 여기에 첨단기술을 보유한 한국과 일본의 제재 동참은 러시아에 실질적인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셋째,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 민주국가들이 함께하는 ‘민주 대 비민주’ 진영의 대결 구도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밀월 관계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 공산당을 프랑켄슈타인에 비유하며 맹비난한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도 시진핑 주도의 중국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이 결속을 과시할 경우 중·러 중심의 권위주의 축에 맞서는 21세기판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넷째, 유라시아 대륙을 통해 연결된 중·러의 지정학적 연합에 대응하는 새로운 다자적 군사 협력의 틀을 수립하려는 미국의 전략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범대서양 회의에서 커트 캠벨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과거 자신이 수립한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피봇(중시) 전략이 실수였다고 토로했다. 마치 미국의 전략 중심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가는 듯한 정책적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실제론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그 어느 때보다 서로에게 관심이 많고 정치·군사·경제 모든 면에서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면서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중·러의 군사적 제휴에 대응해 나토와 아시아 주요 동맹국들의 범유라시아 군사 협력 구조를 형성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런 미국의 의도와 전략에 한국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는 물론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 차세대 첨단기술 분야에서 일본·독일 등에 앞서고 있다. 여기에 각종 첨단 무기로 현대화된 60만 군사력은 탈냉전 이후 20만 명 남짓으로 축소된 나토 동맹국들을 능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평가하는 민주화 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 전 세계 16위로 17위 일본, 18위 영국, 그리고 트럼프 스캔들로 얼룩진 26위 미국보다 앞서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한·미·일 외교사상 처음으로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한반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북핵 문제 등에서 여전히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 러시아의 존재를 간과할 순 없다. 삼성·현대차 등 많은 기업이 진출한 주요 교역국이자 장차 시베리아를 통한 에너지·식량 교류 등 경제적 잠재 가치도 높다. 한국의 야심찬 우주 개발과 로켓 프로젝트의 중요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여기에 중국과 북한도 한국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한국도 이번 회의에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양국 관계를 한반도를 넘어 민주주의·인권과 국제 질서 등 공동의 가치를 진작하는 글로벌 포괄 전략 동맹으로 발전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지난해 문재인 전 대통령의 G7 정상회의 참석에 이어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역할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기대와 관심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국제사회도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표방한 윤 대통령의 첫 외교 무대 데뷔를 그 어느 때보다 주목하고 있다.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미국 터프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 국방부 아태안보연구소 연구교수와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연구원 등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 국제안보센터 소장과 외교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전략적 경쟁시대 한반도 안보정세 분석 전망』(편저) 등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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