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해녀 가장 많은 곳…귀양살이 윤선도와 얽힌 ‘대·대·대’

중앙선데이

입력 2022.06.25 00:02

업데이트 2022.06.25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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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호 22면

[휴가지가 된 유배지] 부산 기장

대(臺). 질펀하게 펼쳐지되 툭 돋아 보이는 너른 바위. 부산은 어쩌면 대로 시작해 대로 끝난다. 해운대·신선대가 꼽힌다. 태종대를 빼면 섭섭하다. 대는 부산의 동쪽 모서리를 살짝 올라가면서 이어진다. 기장이다.

부산 기장의 오랑대 위로 해가 뜨고 있다.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의 오랑대 위로 해가 뜨고 있다. 김홍준 기자

“어데?”

부산 출신인 정모(55)씨는 그 대를 잘 모른다고 했다. 기자는 다시 말했다. “시랑대.”

시랑대(侍郞臺)는 기장군 시랑리 남쪽이자, 시랑산(82m) 동쪽에 있다. 작은 해송 머리에 이고 힘차게 솟은 바위다. 이조 참의(정3품) 권적(1675~1755)이 귀양살이하듯 기장 현감(종6품)으로 좌천됐다가 그 이름을 남겼다.

권적은 박문수(1691~1756)가 영남어사로 있으면서 안동서원을 철폐하고 여색을 탐했다며 호남 관찰사로 임명하는 것을 반대했다(조선왕조실록 영조 9년 1733년 4월 22일). 영조의 미움을 샀다. 권적은 원앙대(鴛鴦臺)로 부르던 시랑대에 올라 시를 짓고 바위에 새로운 이름을 새긴다. ‘귀양살이라 하지만 오히려 신선이 노는 봉래산을 가까이 두고 있다…석 자를 써서 푸른 바위에 밝혔으니…시랑대로 남으리라.’ 시랑은 권적의 벼슬이었던 참의와 같은 자리의 고려 시대 관직이다. 권적의 시로 순식간에 바뀐 이름이 지금까지 남았다.

부산 기장 시랑대는 숨겨진 절경이다. 해동용궁사에서 접근할 수 있지만 동선이 애매해서 지나치기 쉽다.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 시랑대는 숨겨진 절경이다. 해동용궁사에서 접근할 수 있지만 동선이 애매해서 지나치기 쉽다. 김홍준 기자

지난 7일, 구름과 바람 가득한 날이었다. 하지만 시랑대가 주는 바위와 바다의 은밀하고도 농밀한 어울림은, 권적의 감탄을 자아낼만했다. 나무데크는 이곳을 백패킹 성지로 떠밀고 있다.

이날 부산 갈맷길(9개 구간, 총 278.8㎞)을 걷던 남성 두 명이 시랑대에서 해동용궁사로 이어지는 샛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동선이 난해해진다. 부산 출신 정모씨도, 택시기사도 “어데?”라며 되물어봤음을 탓할 순 없었다. 이미재 기장군 문화관광해설사는 "길이 헷갈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시랑대의 절경 놓치는 건 아쉽다"고 밝혔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 해동용궁사 절경, 오랑대 근처엔 휴양시설
조선 시대 최초의 기장 유배인은 승려였다. 태종은 왕위에 오르자 대대적인 불교 개혁을 단행했다. 1405년(태종 5년) 국가가 지정한 사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찰에 속해 있는 전답과 노비를 환수해 국가에 귀속시켰다. 승려 혜정(惠正)은 반기를 들었다. 그는 “내가 간직한 참서(讖書·주술적 예언을 기록한 책)로 보건대, 승왕(僧王)이 나라를 세워 태평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다녔다(태종 6년 1406년 6월 19일). 역모였다. 왕은 혜정을 잡아들였지만, 참형에서 유배로 형벌 수위를 내렸다. 정승들이 ‘500년간 이어져 온 것을 개혁하면서, 중을 죽이면 반드시 말이 있을 것’이라고 청했기 때문이라고 실록은 전한다.

부산 기장 해동용궁사는 바다와 가장 가까운 절이라고 한다. 3대 관음성지로 꼽힌다.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 해동용궁사는 바다와 가장 가까운 절이라고 한다. 3대 관음성지로 꼽힌다. 김홍준 기자

기장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는 바다와 가장 가까운 절이라는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일컬어진다. 방문객들은 금빛 불상과 푸른빛 바다 사이를 거닐다 불사에 쓰일 기와에 이름을 적고 있었다. 벨기에에서 온 데메울레나렐(24)은 “앞의 바다와 뒤의 산(시랑산)이 어우러지는, 신비로운 사찰”이라며 감탄했다. 미국 교포인 한정근(80)씨는 “산속 절에서 느끼는 고즈넉함과는 다른 분위기가 묻어나온다”며 “불상과 전각이 그다지 오래돼 보이지 않는데, 그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절은 1376년 보문사로 창건, 임진왜란(1592) 때 소실, 1930년에 재건, 1975년에 해동용궁사로 변경된 내력이 있다. 한 언론사에서 해동용궁사의 연혁에 관해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다. 심현호 기장문화원 상임연구원은 "해동용궁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면서 "기장을 대표하는 사찰인 만큼 앞으로 철저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난티코브 앞에서 바라본 부산 기장 해동용궁사.김홍준 기자

아난티코브 앞에서 바라본 부산 기장 해동용궁사.김홍준 기자

해동용궁사는 들어가서 보는 것도 괜찮지만, 멀리서 바라봐도 좋다. 아난티코브 해안 산책로에서 바라보면 절이 해수면에 착 달라붙은 게 드러난다. 아난티코브는 2017년 7월 기장군 기장읍 해안로에 문을 연 복합리조트다. 기장 남쪽 366만㎡ ‘오시리아 관광단지’의 일부다. 오시리아 관광단지에는 고급 휴양시설이 잇따라 만들어진다. 리조트 ‘빌라쥬 드 아난티’가 내년에, ‘반얀트리 해운대 부산’이 2025년에 개관한다. 이미 지난 3월에 부산 롯데월드가 기장에 문을 열었다.

부산 기장 오시리아 롯데월드에서 방문객들이 놀이기구를 타며 환호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 오시리아 롯데월드에서 방문객들이 놀이기구를 타며 환호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그래서 기장은 현재 핫한 여행지 중 하나로 떴다. 인스타에 태그 된 게시물이 180만 개에 육박한다. 한국관광 데이터랩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전국 관광지 방문객이 18% 떨어졌지만, 기장은 오히려 5% 늘어났다. 이미재 해설사는 "유적과 휴양시설의 조화, 동해선의 교통 편의가 작용한 것 같다"고 밝혔다. 때문에 최근 “부산 관광은 해운대 아니라 오랑대”라는 말도 나왔다. 속속 들어서는 고급 휴양시설이 오랑대(五郞臺)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오랑대는 귀양 중인 선비를 보러 온 친구 다섯 명이 이곳에서 술을 마셨다는 설, 다섯 선비가 앉아 시를 논했다는 설로 붙은 이름이다. 심 상임연구원은 "오랑대와 관련, 일각에서는 '귀양 중인 선비'를 윤선도로 보기도 하지만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만큼 기장에 유배온 이들이 100여 명으로 많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윤선도(1587~1671)는 1616년 병진년의 상소문이라 이름 붙은 병진소(丙辰疎)를 광해군에게 올렸다. 총 4328자 속 이이첨(1560~1623)을 스물아홉 번이나 언급하며 그의 국정농단을 고했다. 하지만 윤선도는 이이첨의 역공으로 유배형에 처해졌다. 30세, 그의 16년 유배 생활이 시작됐다. 윤선도의 유배지는 함경북도 경원을 거쳐 기장으로 옮겨졌다. 그는 기장에서 6년이나 머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기장은 한양과의 거리가 971리(약 381.33㎞)에 이른다. 『선조실록』은 ‘바닷가의 잔읍(殘邑·황폐한 고을)으로 피폐함이 더욱 심하다’고 적고 있다. 거기에 유배인을 관리할 관원들이 있으니 유배지로 적합했다. 조선 시대 14번째로 많은 유배인이 보내졌다.

부산 기장 죽성리 황학대의 윤선도 동상과 윤선도 시비.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 죽성리 황학대의 윤선도 동상과 윤선도 시비.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 죽성리의 황학대는 귀양 간 윤선도가 자주 찾던 곳이다. 사진 오른쪽 소나무 우거진 곳이 황학대다.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 죽성리의 황학대는 귀양 간 윤선도가 자주 찾던 곳이다. 사진 오른쪽 소나무 우거진 곳이 황학대다. 김홍준 기자

윤선도는 기장 죽성리에 적거(謫居·귀양살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황학대(黃鶴臺)가 있다. 30여 그루의 푸른 소나무 품은 노란 바위가 바다를 향해 학처럼 날갯짓하고 있다. 윤선도가 매일 찾았다고 한다.

부산 기장 죽성리 국수당은 5그루의 소나무 가운데에 있다. 죽성리는 윤선도의 적거터로 추정된다.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 죽성리 국수당은 5그루의 소나무 가운데에 있다. 죽성리는 윤선도의 적거터로 추정된다. 김홍준 기자

황학대에서 뭍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언덕 위에 거대한 해송 한 그루가 있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다섯 그루다. 국수당이라고 부르는 작은 사당이 소나무 사이에 있다. 정월 대보름에 풍어제를 지낸다. 400여 년 전에 국가 기원제를 지내기 위해 지은 국수대가 있었던 자리다. 해송 수령은 300년이다. 윤선도가 이곳에 머물렀을 때, 이 해송들은 없었던 셈이다.

사당 아래에는 성당이 있다. 그런데. 이 죽성성당에 신부님이 없다. 드라마세트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당은 갤러리로 쓰고 있다. 해안 돌출부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성당은 방문객들의 사진 촬영 명소로 떠올랐다. 마을 주민 한 명이 오가는 사람들 숫자를 세고 있었다. 그녀는 “주말에는 1000명 가까이 오간다”며 “쓰레기 줍고 사람 숫자 세는 게 일”이라고 말했다. 죽성리왜성에 오르면 이 황학대·국수당·죽성성당이 한눈에 보인다. 죽성리왜성은 임진왜란 때 왜장 구로다 나가마사(黒田 長政, 1568~1623)가 조명 연합군을 막기 위해 쌓았다.

부산 기장 삼성대. 윤선도는 이곳에 올라 아우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증별소제'라는 시를 남겼다. 이미재 기장군 문화관광해설사는 "해안 침식과 해수욕장 개발로 삼성대가 현재처럼 잘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 삼성대. 윤선도는 이곳에 올라 아우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증별소제'라는 시를 남겼다. 이미재 기장군 문화관광해설사는 "해안 침식과 해수욕장 개발로 삼성대가 현재처럼 잘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윤선도는 기장 일광면 삼성리의 삼성대(三聖臺)에도 올랐다. 시랑대와 시랑리처럼, 마을 이름 삼성리는 삼성대에서 유래했다. 1621년 윤선도는 이곳에서 동생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증별소제(贈別少弟)'라는 시를 지었다. ‘명에 따른 유배길은 수많은 산 너머요, 세파를 따르자니 부끄러운 얼굴 어찌하리오 ….’ 윤선도가 기장 유배 중 남긴 시는 8편에 이른다. 인현왕후의 폐비를 반대한 이선(1632~1692)도 1684년 기장으로 유배됐다. 그는 『송강가사(松江歌辭)』를 비롯한 송강 정철(1536~1593)의 문집 일부를 재정리하고 기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 대변초, 아이들 놀림에 용암초로 바꿔
유배 1번지는 제주다. 조선 시대 260여 명이 유배됐다. 그 제주에서 기장으로 온 이들이 있다. 해녀다. 제주 해녀가 부산에 처음으로 정착한 때는 1880년대로 알려졌다. 그곳이 영도구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기장 해녀가 가장 많다. 신고 해녀가 521명에 이른다. 영도구는 56명이고 사하구·서구는 각각 20명이 안 된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앞바다에서 한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앞바다에서 한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 기장군 연화리 해녀촌 인근에사 낚시꾼들이 바다를 보며 온 신경을 모으고 있다.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군 연화리 해녀촌 인근에사 낚시꾼들이 바다를 보며 온 신경을 모으고 있다.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 연화리 신암어촌계에서 다시마를 말리고 있는 모습.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 연화리 신암어촌계에서 다시마를 말리고 있는 모습. 김홍준 기자

제주와 부산 해녀는 끈끈하다. 김정자(73) 기장읍 신암어촌계 해녀회장은 "제주와 부산 해녀들이 서로의 바다를 찾아 물질하며 교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는 기장 2세대 해녀다. 80~90대 기장 1세대 해녀를 다룬 『나는 해녀다』를 낸 김여나 작가는 “1세대 해녀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고 2세대가 전성기를 맞이하셨다"며 "기장의 해녀 문화가 온전히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랑대에서 기장해안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연화리 해녀촌이 있다. 해녀들이 직접 잡아올린 해산물이 펄떡인다.

해녀촌 너머, 대변항에 학교가 보인다. 연화리 대변초등학교 아이들은 학교 이름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없었다. ‘똥초등’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1963년 개교한 대변초는 대변리라는 지역 명칭을 딴 교명이다. 대변리는 조선 시대 대변포(大邊浦)라고 부르던 곳이다. 이곳에 대동고(大同庫)가 있어 대동고변포(大同庫邊浦)로 부르다가 '대변'으로 줄여서 부르던 것이 지명으로 정착된 것으로 전해진다. 2017년, 아이들이 교명을 바꾸자고 나섰다. 4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대변리의 옛 이름을 이용해 용암초등학교로 개명했다.

부산 기장 기장척화비와 (구)대변초등학교. 현재 초등학교 이름은 대변이라는 명칭으로 인해 아이들이 놀림을 받는다며 용암초등학교로 바뀌었다.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 기장척화비와 (구)대변초등학교. 현재 초등학교 이름은 대변이라는 명칭으로 인해 아이들이 놀림을 받는다며 용암초등학교로 바뀌었다.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 망월산과 매암산은 소학대가 펼쳐지는 봉우리다. 아래로 정관 신도시가 보인다. 사진 오른쪽 산이 달음산이다. 김홍준 기자

부산 기장 망월산과 매암산은 소학대가 펼쳐지는 봉우리다. 아래로 정관 신도시가 보인다. 사진 오른쪽 산이 달음산이다. 김홍준 기자

기장 정관읍의 소학대(巢鶴臺·516m)에 올랐다. 기장군은 이 소학대를 '100척이 넘는 바위를 깎아 세운 듯이 우뚝 솟아 있고 정상은 평평한 모습(높이 35m, 폭 70m, 길이 250m)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근처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김민수(62) 대표는 “동네사람들은 매바우나 매암바위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정상 표지석에는 매암산으로 적고 있다. 정관 신도시에 사는 이종수(49)씨가 올라와 “1년새 매일 올라와 10㎏ 빠졌으니, 망월산은 살 빼주는 산”이라며 땀을 훔쳤다. 헷갈린다. 소학대는 매암산·망월산을 두루 포함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소학대·매암산은 같은 곳이고 소학대·망월산도 같은 곳이다. 달음산(587m)이 보인다. 산과 산, 대와 대를 넘어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끊임없다. 여기는 어데? 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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