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럽은 괜찮은데, 앵글로색슨이 문제" 돌연 저격한 러 속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3월 24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회의를 앞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웃으며 두 정상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월 24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회의를 앞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웃으며 두 정상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우크라이나와의 종전 협상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느닷없이 '앵글로색슨 족(族)'에 화살을 돌렸다. 우크라이나전 장기화의 책임을 영국과 미국에 돌리며 서방을 분열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4일(현지시간) 타스통신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전날 전파를 탄 벨라루스 국영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와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협상 테이블로 복귀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지만 앵글로색슨 족이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나는 그들이 협상 재개를 허락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종전 논의는 지난 3월 터키에서 열린 5차 협상을 끝으로 공개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라브로프 장관이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앵글로색슨 족이란 유럽대륙 국가와 구별되는 미국과 영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은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23일 폴리티코 유럽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주요7개국(G7)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들에게 "우크라이나가 '나쁜 평화 협상'(bad peace deal)을 하도록 압박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이날 영연방 정상회의 참석차 르완다를 방문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전 세계에 우크라이나 전쟁 피로도가 심한 것이 우려된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유리한 협상 또는 전승으로)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것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슨 총리는 또 이날 우크라이나 항구의 기뢰 제거 작업을 도와 곡물 수출 항로를 뚫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곡물을 선적한 선박에 보험 제공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가장 많은 군사 지원을 해온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이날도 다연장로켓을 포함 5800억원 규모의 무기를 추가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동안 지원한 60억 달러(약 7조 7880억원) 이상 군사 원조에 더해서다.

라브로프 장관의 발언은 유럽 국가들과 영·미가 협상 재개에 있어 다른 입장이란 것이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유럽연합(EU)은 23일 우크라이나에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는 데 합의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측면 지원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22일 "공격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와 함께하는 장래를 상상할 수 없다"며 변함없는 지원 의사를 밝혔다. 때문에 라브로프 장관의 이날 발언은 유럽의 '전쟁 피로감'이라는 약한 고리를 파고들며 서방을 분열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AP=연합뉴스]

한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는 러시아군의 집중 공세 속에 함락 초읽기에 몰렸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이날 TV에 나와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철군하라고 명령받았다"며 "몇달간 타격을 받아 산산조각난 진지에 단순히 잔류를 목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우크라이나 병력이 철수하면 러시아는 루한스크 주(州)를 사실상 점령하게 된다. 러시아는 돈바스의 나머지 지역인 도네츠크 주에서도 점령지를 확대하고 있다. 파블로 키릴렌코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군정청장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도네츠크의 55%는 러시아군이 점령했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