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영복 글씨 뺀 국정원, 61년전 '김종필 원훈석' 세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다시 세운 국정원 원훈석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원훈(院訓)이 1961년 6월 중앙정보부 설립 당시의 원훈으로 전격 교체됐다. 김종필 전 총리가 초대 중앙정보부장 시절에 만든 '우리는 陰地(음지)에서 일하고 陽地(양지)를 指向(지향)한다'를 국정원 직원들의 여론 등을 반영해 부활시킨 것이다. 길이 4m, 높이 1.7m, 두께 0.38m 크기의 화강석 재질인 이 원훈석은 1999년 교체된 뒤 23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김종필 초대 중정부장이 1961년 만든 원훈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문재인 정부 때 '신영복체' 친북 이념 논란 #김규현 원장 등 참석해 원훈석 교체 행사

 24일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날 오전 김규현 원장 등 주요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마당에 설립 당시의 원훈석을 다시 세웠다. 옛 원훈석은 국가기록물 보존 차원에서 훼손되지 않고 보관해 왔다. 원훈이 새겨진 윗돌 부분은 세척했고, 받침석은 낡아 교체했다고 한다.
 김규현 국정원장은 "첫 원훈을 다시 쓰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문구 그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의미"라고 직원들에게 원훈 교체의 취지를 밝혔다. 외교부 차관 출신인 김 원장은 "직원들 모두 이 원훈을 마음에 새겨 앞으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업무에 매진하자"고 당부했다고 한다.

김규현 국가정보원 원장이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달 2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는 모습. 김성룡 기자

김규현 국가정보원 원장이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달 2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는 모습. 김성룡 기자

 앞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일각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에 바꾼 원훈석이 국정원의 가치와 맞지 않는 인물의 글씨체를 사용했다는 비판이 나오면 원훈을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복역했던 고 신영복 교수의 '신영복체(어깨동무체)'였다. 문 전 대통령은 신 교수에 대해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라고 평가해 이념논란을 일으켰다.
 과거 국정원은 정치권력의 입김과 정치 개입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관 이름과 원훈이 수시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반복해왔다. 기관 이름은 세 번 바뀌고 국정원 원훈은 종전까지 다섯번이나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6월 4일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 제막식을 한 뒤 당시 박지원 국정원장에게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뒤에는 신영복체로 쓴 당시 원훈석.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6월 4일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 제막식을 한 뒤 당시 박지원 국정원장에게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뒤에는 신영복체로 쓴 당시 원훈석. [청와대 제공]

 1981년 4월 당시 전두환 정권이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꿨다. 1999년 1월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으로 개명하면서 원훈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뀌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다시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바꿨고, 2016년 박근혜 정부 때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바뀌었다.
  2021년 6월 문재인 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바꿨다. 당시 전직 국정원 직원들이 반발했고 "대북 정보활동을 벌이는 국정원에 간첩 글씨체는 부적절하다"며 릴레이 시위를 하기도 했다.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전직 국정원 직원모임' 소속 회원들이 2021년 6월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부근에서 당시 문재인 정부가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고 신영복 교수의 '신영복체'로 국정원 원훈석을 제작한데 항의하며 원훈석 교체를 촉구하는 릴레이 시위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 독자제공]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전직 국정원 직원모임' 소속 회원들이 2021년 6월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부근에서 당시 문재인 정부가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고 신영복 교수의 '신영복체'로 국정원 원훈석을 제작한데 항의하며 원훈석 교체를 촉구하는 릴레이 시위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 독자제공]

 두 세대를 넘긴 국정원이 61년 만에 옛 원훈을 회복한 데 대해 한 국정원 출신 원로는 "다시는 국정원이 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국가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