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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l'은 웃음? 비웃음? 초고속 인터넷 시대, 말도 빨리 바뀐다[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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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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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때문에

그레천 매컬러 지음
강동혁 옮김
어크로스

'현웃'이라는 말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어도 국립국어원의 2014년 신어 조사 보고서에 실린 단어다. '현실 웃음'을 줄인 이 말은 "'ㅋㅋ' 따위를 타자로 쳐서 웃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웃음을 가리킬 때" 쓰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온라인 대화 중에 'ㅋㅋ'를 치더라도 그 사람이 꼭 실제로 웃고 있는 건 아니란 점이다.

영어권에는 'laughing out loud', 즉 '큰 소리로 웃기'를 줄인 'lol(혹은 LOL)'이라는 온라인 표현이 있다. 1980년대 캐나다에 사는 웨인 피어슨이라는 남자가 원격 회의 도중 너무 웃긴 얘기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진짜 큰 소리로 웃으면서 채팅창에 처음 썼다고 한다. '현웃'인 셈이다.

한데 요즘은 다르다. 캐나다 언어학자가 쓴 이 책 『인터넷 때문에』에 따르면 'lol'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꼭 폭소를 뜻하진 않게 됐다. 저자는 나아가 'lol'이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반어법이나 수동적 공격성 등을 뜻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또 이보다 나이든 세대는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게 무마하거나 실제 웃지 않아도 농담을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주로 쓴단다. 여러모로 '현웃'보다 'ㅋㅋ'나 'ㅋ'에 가까워 보인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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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자의 관심은 특정 신조어나 세대 차이 자체가 아니다. 과거 문헌에 기록된 말은 격식을 차린 문어 위주였다. 이와 달리 지금 인터넷 블로그나 게시판, 소셜 미디어에는 이전에 쉽게 포착하기 힘들었던 비격식체 문어가 쏟아진다. 저자 같은 학자에게는 일상 언어 연구에 새로운 보물창고가 열린 거나 다름없다. 그는 이 책에서 인터넷 언어의 변화 양상과 함의를 여러 흥미로운 개념과 시각을 통해 풀어간다.

우선 저자는 언제, 어떻게 인터넷을 쓰기 시작했나에 따라 이용자, 이른바 '인터넷 민족'을 다섯 그룹으로 나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나이와 세대만이 아니라 기술적 숙련도와 사회적 활용이다. 예컨대 가장 초기 이용자는 직접 코딩을 할 정도로 숙련도 높은 소수의 전문가 그룹이었다. 반면 요즘은 개인마다 숙련도가 천차만별이다. 초기 이용자들은 지구촌 곳곳에서 관심사가 비슷한 낯선 이들을 만나려 했다. 10대를 비롯한 요즘 입문자들은 원래 아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온라인에 접속한다. 또 이메일 등 직장생활을 위해 인터넷을 시작한 이들, 이와 달리 친구와도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사회생활까지 온라인을 활용한 이들도 서로 그 특징이 다르다.

이런 세분된 구분은 표현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예전에 점점점(...)을 문장을 바꾸는 용도로도 썼던 나이든 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 세대는 온라인에 점점점이 나오면, 문장 사이에 뭔가 말하지 않은 의미가 숨어있다고 여긴단다. 젊은 세대에게 문장 바꾸기는 엔터키를 치면 자동으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변화가 종종 기술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점도 재미있게 소개된다. 온라인에 소문자만으로 문장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진 과정은 초기 컴퓨터가 대문자만 지원했다는 점, 컴퓨터 운영체계 중에 유닉스는 대문자·소문자 구분이 너무 엄격해 이용자들이 오류를 막기 위해 아예 소문자만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등의 사실과 함께 그 변화가 설명된다. 이제 온라인에 대문자만으로 문장을 쓰면 흡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듯한 느낌을 준단다.

고양이 짤방은 이미지를 붙이기 쉽게하는 매크로의 등장으로 2000년대 중반 크게 유행했다. [사진 어크로스]

고양이 짤방은 이미지를 붙이기 쉽게하는 매크로의 등장으로 2000년대 중반 크게 유행했다. [사진 어크로스]

기술이 언어를 바꾸는 것은 인터넷 이전에도 그랬다. 전화의 발명 초기 에디슨이 사용한 'Hello(여보세요)'는 요즘 같은 인사말이 아니라 '어이' 하면서 사람을 소리쳐 부르는 의미였다. 그래서 'Hello'를 일상에서 쓰는 것은 1940년대까지도 에티켓에 벗어난 일로 여겨졌다고 한다.

저자는 이모지나 밈 같은 그림 요소도 주목한다. 특히 이모지가 빠르게 확산한 이유를 언어가 아닌 몸짓이라는 점으로 설명한다. 일상 대화에서 쓰는 몸짓, 그 중에도 엄지 척 같은 것은 특정 사회집단 안에서는 그 의미가 확실하게 전달된다. 이런 몸짓, 이른바 엠블럼을 온라인에서 표현하는 수단이 바로 이모지인 셈이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온라인의 언어는 첫째, 글자로 개별 소리를 나타내고 둘째, 문장부호나 대문자를 이용해 어조를 나타내고 셋째, 이모지 같은 그림 요소로 온라인에서 배제됐던 몸짓과 신체 공간까지 표현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물론 온라인상의 언어 파괴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저자에게 말의 변화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는 "언어는 궁극적인 참여 민주주의"이자 "인류의 가장 멋진 오픈소스 프로젝트"라고도 했다.

흥미진진한 책이지만,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 인터넷을 다뤘다면 더욱 흥미진진했을 게 분명하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곧잘 쓰는 물결표(~)는 영어권 온라인에서는 의미가 다르다. 과거에는 별표(*)와 함께 장식적이고 강조적인 용도로 쓰였다면 요즘은 비아냥대는 의미로 쓰인단다. 즉 '이 책 재미있네~'를 영어로 옮겨 물결무늬까지 붙이면 진심으로 재미있지는 않다는 뜻이 돼버린다. 책의 원제는 'Because Internet'. 어법대로 'Because of Internet'이라고 쓰지 않은 것 역시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감정적 부조화를 단어의 부조화로 나타내는 온라인 스타일을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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