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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 아닌 권위로 국민 막았다…헌재공관 옆 등산로 폐쇄 전말

중앙일보

입력

청와대 개방과 함께 열렸던 인근 등산로가 다시 폐쇄된 법적 근거는 뭐였을까. 헌법재판소 옆 등산로가 다시 폐쇄되는 과정에서는 ‘법치’는 찾을 수 없었다. 관리 주체인 문화재청의 임의적 판단, 헌법재판소의 편의가 국민의 발길을 막은 근거였기 때문이다.

靑 인근 일부 등산로 폐쇄 결정 주체는 문화재청

문화재청과 헌재는 헌재 옆 등산로 폐쇄에 대해 “애초 등산로로 사용됐던 곳이 아니었고, 보안 문제 등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조처”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지난 19일 오후 폐쇄된 금융연수원 앞 등산로 입구. '출입금지' 표시와 함께 '청와대~북악산 탐방안내소 이전'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수민 기자

지난 19일 오후 폐쇄된 금융연수원 앞 등산로 입구. '출입금지' 표시와 함께 '청와대~북악산 탐방안내소 이전'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수민 기자

해당 등산로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맞은편에서 북악산으로 향하는 길로, 지난달 10일 청와대 개방 이후 많은 관람객의 발길이 향한 곳이다. 그러다 지난 2일 이 등산로엔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 명의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었다. 헌재 측이 사생활 침해 및 소음 발생, 보안상 문제를 이유로 문화재청에 등산로 폐쇄를 요청하면서다.

문화재청 등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등산로 폐쇄 결정은 법령에 근거를 둔 게 아니었다. 대통령 공약 사안인 청와대 개방과 맞물려 있는 인근 등산로 구간 설정은 ‘정책적 판단’과 ‘문화재청의 운영’에 따른다는 게 공식 설명이다.

문화재청의 권한은 ‘청와대’에서 출발한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23일 대통령실로부터 청와대 권역 및 시설 개방 등 관리 업무를 위임받았다. 인근 등산로 관리 업무도 함께 맡고 있다. 앞서 청와대 안팎을 관리해왔던 대통령실로부터 권한을 받은 것으로, 기존엔 경호처 등 대통령실이 청와대 인근 등산로를 통제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고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통제의 권한 자체가 사라진 셈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문화재청 “구성하기 나름”…헌재는 “예전처럼”

문화재청 측은 청와대 인근 등산로 구간 설정에 대해 ‘구성하기 나름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등산로 구간은 구성의 문제이지 법이나 규정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헌재 소장 공관이 등산로 입구 쪽에 있고, 헌재가 관리하는 부지인 만큼 문화재청이 일방적으로 (등산로를) 개방 결정하긴 어렵다”는 이유도 들었다.

개방했던 등산로를 폐쇄해 통행을 막게 된 경위에 대해선 “엄밀히 따지면 (해당 구간이) 등산로라고 볼 수는 없다. 임시로 운영됐던 구간이다”는 설명이 앞섰다. 이어 “청와대가 처음으로 개방되는 것이고, 시뮬레이션 등 진행할 여건이 안 됐다. 개방 후 운영 과정에서 구간을 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헌재 측은 청와대 임시 개방 때까진 등산로 쪽 부지 사용을 허용했지만, 보안 이유로 불가피하게 폐쇄를 요청했단 입장이다. 사실상 헌재의 사적 부지 사용을 ‘협조’해 온 것이고, 기존부터 활용됐던 등산로를 새롭게 막은 건 아니란 취지다. 헌재 측 관계자는 “(청와대가) 상시 개방으로 전환되면서 보안상 어려움이 우려돼 예전처럼 (폐쇄)해 줄 것을 요청했다”며 “(해당 구간은) 원래 등산로로 제공됐던 곳도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들 두고 한 법조계 인사는 “국민의 통행 자유보다 국가기관이 더 우위에 있다는 식의 권위주의적인 구태(舊態)”라고 지적했다.

지난 19일 오후 폐쇄된 금융연수원 앞 등산로 입구. '출입금지' 표시와 함께 '청와대~북악산 탐방안내소 이전'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수민 기자

지난 19일 오후 폐쇄된 금융연수원 앞 등산로 입구. '출입금지' 표시와 함께 '청와대~북악산 탐방안내소 이전'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수민 기자

대통령도 나왔는데…국민보다 기관이 우선?

결국 이번 등산로 통제 결정은 문화재청이나 헌재 등 각 기관의 사정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관리되는 공관과 그 주변 길 운용의 우선순위를 기관에 둔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되고, 청와대는 내부까지 개방된 상황에서 추가 등산로 조정 논의 등 국민을 위한 대안 제시나 조처는 현재까지 없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헌재는 보안상 잠재적 위험을 (폐쇄 요청) 이유로 들지만, 통제하지 못할 정도의 위험성이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며 “정부 방침에 따라 국민이 청와대 인근 등산로 이용이란 자유를 누렸는데 ‘전례’를 이유로 이를 막는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재라는 헌법기관이 구체적 법률 근거 대신 ‘관행’을 주장하는 건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국민이 오가는 등산로를 열었다가 (기관 요청으로) 다시 닫는단 건 청와대 개방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며 “제기된 우려 사항은 여러 대안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가장 적극적인 대안은 공관을 옮기는 것이다”고 짚었다.

헌재 보안과 국민 기본권 양쪽을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더 무게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단 의견도 있다. 법관 출신 변호사는 “통행 통제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모호한 상황에서 헌재 보안을 이유로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게 과연 합당한지 판단해 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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