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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주 52시간제 보완, 노동개혁의 첫걸음 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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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직된 주 단위 근무시간 부작용 초래  

규제보다 자율 통해 노사관계 풀어야

정부가 근로시간과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 노동개혁에 나섰다. 주 단위로 묶여 있는 52시간제를 유연하게 바꾸고, 장년 근로자가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핵심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제2차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고도화·다변화된 경제·산업 구조에 비춰볼 때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노동규범과 관행은 더는 우리의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다”면서 “누적된 노동시장의 비효율·양극화·불공정 해소와 함께 당면한 산업구조 재편과 노동 전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동시장 개혁은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규정했다.

노동개혁안은 이날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에 담겼다. 현행 근로시간제는 주당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해 주 최대 52시간이다. 정부의 구상은 연장 근로시간이 월 48시간(주당 12시간x4주) 이내라면 특정 주에 12시간을 넘겼더라도 문제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주 52시간제는 노동자의 과로를 제도적으로 막아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간 특정 기간에 일감이 몰리는 기업 등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그간 노사가 합의한 뒤 정부의 허가를 받아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특별연장근로가 많이 늘어났다. 독일 등 서구 선진국은 이런 문제를 정부의 규제가 아닌 노사 자율을 통해 풀어나가고 있다. 이른바 ‘시간 주권’의 개념이 정착된 덕분이다.

이번 노동개혁안은 그간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하고 ‘노조 공화국’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판받던 지난 정부의 노사관계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란 측면에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여전히 손봐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선진국에선 대부분 시행하고 있는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과 같은 사용자의 대항권 규제는 건드리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도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잖아도 강성 노조에 시달리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사회에 노동자가 참여한다면 노사관계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할 우려가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논평에서 “노사관계에서 힘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는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향후 고용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사업장 점거 전면금지를 서둘러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이번 노동개혁안에서 근로시간 조정 등이 실현되려면 근로기준법 개정도 필요하다. 지금 국회는 여소야대에 대치 정국이지만 여야가 협치해 불합리한 노사관계를 풀어나가야 한다. 노동개혁 없이 한국 경제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헤쳐나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