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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 파워로 쥐락펴락했나…뮤지컬스타 ‘인맥캐스팅’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뮤지컬 ‘엘리자벳’ 캐스팅을 두고 벌어진 ‘인맥 캐스팅’ 논란이 뮤지컬계 전반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배우 김호영·옥주현 간 고소전에 이어, 1세대 뮤지컬 배우들이 발표한 성명문에 동료들의 릴레이 ‘동참’이 나오면서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타 캐스팅’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뮤지컬 제작 환경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옥주현(左), 김호영(右)

옥주현(左), 김호영(右)

사태는 지난 13일 공개된 ‘엘리자벳’ 10주년 기념 공연 주인공에 옥주현·이지혜가 더블 캐스팅되면서 불거졌다. 지난 시즌 출연자인 배우 김소현이 빠지고 이지혜가 캐스팅된 게 옥주현과의 친분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배우 김호영이 소셜미디어에 “아사리판은 옛말이다. 지금은 옥장판”이라고 쓰면서 논란이 퍼졌다. 이에 옥주현은 “사실 관계없이 주둥이와 손가락을 놀린 자는 혼나야 한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고, 지난 20일 결국 김호영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 22일 1세대 뮤지컬 배우인 남경주·최정원과 연출·음악감독 박칼린은 “배우는 연기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야 할 뿐 캐스팅 등 제작사 고유 권한을 침범하면 안 된다” “뮤지컬의 정도(正道)를 위해 모든 뮤지컬인이 동참해달라” 등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에 김소현·정선아·신영숙·차지연·정성화·최재림 등 유명 배우들이 잇달아 지지 의사를 표했고, 논란은 업계 전반의 문제로 확대됐다. 배우 이상현은 호소문을 공유하며 “이런 게 싫어서 무대를 떠났다”고 적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인맥 캐스팅’ 의혹의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스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뮤지컬 제작 환경으로 보고 있다. 작품의 완성도나 예술성보다 스타 캐스팅이 흥행을 좌우하고, 여기에 제작사가 영향받는 관행이 문제의 뿌리라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한 뮤지컬계 관계자는 “흥행이 중요한 제작사로서는 티켓 파워가 막강한 배우가 강하게 주장하면, 이를 무시하기 쉽지 않다”며 “뮤지컬 제작환경 자체가 큰 공연을 올리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스타를 캐스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쉽게 해결책을 내놓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국 뮤지컬 시장은 2000년 연 100억원 이하 규모(매출액 기준)에서 20여년 만에 연 4000억원 가까운 규모로 급성장했다. 전체 공연 시장 매출의 70%를 차지한다. 코로나19팬데믹 속에서도 뮤지컬은 선방하며 전체 공연시장 매출을 지탱했다.

그 사이 뮤지컬 대작들은 팬덤이 큰 스타 캐스팅 여부가 흥행을 좌우했다. 회당 5000만원 안팎이라는 유명 배우의 고액 개런티와 인맥 캐스팅, ‘끼워팔기’ 등 시장 왜곡 요소들이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뮤지컬 전체 예매자 중 12.6%는 같은 작품을 2회 이상 예매한 이른바 ‘회전문 관객’으로 나타났다. 대중보다 이른바 ‘뮤덕’(뮤지컬 덕후)이 뮤지컬 시장을 좌우하는 양상을 보였다.

한국 뮤지컬 성장시킨 주역들

한국 뮤지컬 성장시킨 주역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외국은 뮤지컬이 150년 넘는 오랜 시간을 거쳐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했지만, 우리나라는 최근 20년간 압축 성장했다. 질적 성숙보다 ‘스타 마케팅’을 통한 양적 팽창에 급급했다. 그 폐해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며 “언젠가 겪을 문제가 닥친 것을 계기로 캐스팅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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