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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 땅 아닌데 등산로 막아놓고…시민 비판 뭉개는 헌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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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청와대 개방 이후 시민들이 등산로로 애용했던 종로구 삼청로 일부가 헌법재판소장 공관 측 요청으로 폐쇄된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 확인 결과 이번에 길이 막힌 등산로 소유권은 폐쇄를 요청한 헌재 측이 아닌, 관할 구청에 있는 데다 토지이용계획 상 ‘공공공지(公共空地)’로 확인돼서다. 공공공지란 주민 일상생활의 쾌적성·안정성을 위해 보행자 통행과 휴식공간 등을 확보하기 위한 시설공간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헌재소장 공관 측은 21일째 등산로 폐쇄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3일 법원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보면 지난 2일부터 폐쇄된 헌재소장 공관 인근의 삼청로 일부는 토지 소유자가 ‘서울특별시 종로구청’으로 돼 있다. 큰길에서 북악산 등산로 방향으로 꺾어져 들어오면서 가장 처음 만나는 삼청동 117-1번지(77.6㎡)와 145-27번지(166.9㎡)가 대상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앞서 헌재 측은 공관 사생활 보호와 소음 등을 이유로 청와대와 함께 개방된 공관 앞 등산로를 폐쇄해줄 것을 문화재청에 요청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토지 소유권이 헌재 측에 있다”며 다시 길을 막았지만 정작 도로 소유자는 헌재가 아닌 구청 땅으로 확인됐다. 법원에 따르면 이 길을 따라 100여m 들어가야 나오는 헌재소장 공관 입구 근처에 이르러서야 도로 관리청이 종로구청에서 헌법재판소로 바뀐다.

이번에 막힌 길은 지난 5월 청와대 개방 이후 수십 년 만에 통행이 가능해졌고 입구엔 ‘북악산 한양도성 안내소’가 설치됐었다. 그러나 다시 길이 폐쇄되면서 안내소는 춘추관으로 옮겼고, 현재는 출입금지를 알리는 현수막과 ‘통제구역’이라고 쓰인 울타리가 남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길을 이용해 북악산을 오간 등산객은 지난달에만 평일 약 1000명, 주말 3000명에 달했다. 등산객들은 길이 막힌 지난 2일부터는 길이 폐쇄된 지점에서 400~500m를 우회한 후 다른 등산로를 이용해 산행하고 있다.

지적도(地籍圖)상 이번에 폐쇄된 도로 주변 일대가 ‘공공공지’인데도 통행을 제한했다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령인 ‘도시·군 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제59조에 따르면 공공공지란 ‘시·군내의 주요시설물 또는 환경의 보호, 경관의 유지, 재해대책, 보행자 통행과 주민의 일시적 휴식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하는 시설’로 돼 있다.

또 같은 법령 제61조의 공공공지의 구조 및 설치기준에는 ‘주민의 접근이 쉬운 개방된 구조로 설치하고, 일상생활에 있어 쾌적성과 안전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돼 있다. 일대에 밀집한 헌재소장 공관과 국무총리 공관 등을 보호해야 할 주요시설물로 본다 하더라도 ‘보행자 통행’과 ‘주민 휴식공간 확보’가 함께 명시된 길을 막는 것은 법령 취지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나 시민들은 “대통령실도 용산으로 이전한 마당에 등산객들이 애용하던 길을 다시 막는 건 권위적인 태도”라고 비판한다. 서울시가 개방된 청와대 인근을 찾는 보행자 편의를 돕기 위해 이 일대의 보도 폭을 넓히고 횡단보도를 추가하기 위한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에 착수한 것과도 상반된다는 반응이다.

헌재 측은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등산로 폐쇄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등산로 폐쇄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은 없는 상태”라면서도 “등산로 개방·폐쇄에 관한 문제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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