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발언에 동학개미 ‘팔자’…상장 종목 절반이 52주 신저가

중앙일보

입력 2022.06.24 00:02

업데이트 2022.06.24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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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코트 강당에서 유가 대응과 관련해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의회에 향후 90일간 연방 유류세 면제를 요청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코트 강당에서 유가 대응과 관련해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의회에 향후 90일간 연방 유류세 면제를 요청했다. [AP=연합뉴스]

“주식 수익률이 -28%인데도 끝내 손절(손절매)했네요. 올해 여름 휴가는 포기예요.” 회사원 박모(34)씨는 1년여간 모아왔던 주식을 이달 들어 나눠 팔고 있다. 주식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그는 주가가 바닥권이라고 생각해 지난해부터 삼성전자와 네이버, 카카오 등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위 종목에 적립식으로 투자했다. 꾸준한 ‘물타기’(매수 단가를 낮추기 위한 추가 매수)로 누적 투자금은 3000만원을 넘겼지만, 현재 수익률은 -28% 정도다. 그는 “바닥 아래 지하실이 있다더니, 무서워서 더는 매수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증시가 급락하며 국내 증시 버팀목 역할을 했던 ‘동학개미’가 돌아서고 있다. 바닥없이 미끄러지는 시장에 지친 개인투자자의 ‘팔자’엔 개미의 ‘항복 신호’라는 시각도 나온다. 또 원화가치는 연일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2일(현지시간) 미 상원 은행위원회에 한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파월은 “경기 침체 가능성이 존재하며 (경제) 연착륙은 매우 도전적인 일”이라면서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둔화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할 때까지 금리 인상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시장 “물타기에 지친 개미 투매”

23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22% 내린 2314.32에 마감했다. 52주 최저치(2339.64)를 다시 갈아치웠다. 장 중에는 2306.48까지 밀리며 2300선도 위태로웠다. 코스닥은 전날보다 4.36% 급락한 714.38에 장을 마쳤다. 역시 52주 최저치를 새로 썼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종목 2502개 가운데 52주 신저가(체결가 기준)를 경신한 종목 수는 1391개(55.6%)에 달했다. 특히 코스피 시장에서 국내 증시 대표주인 삼성전자(장중 5만6800원)와 SK하이닉스(8만9700원)를 비롯해 카카오(6만6700원), 카카오페이(6만4800원) 등이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최근 개인의 팔자세가 두드러진다. 개미의 ‘팔자’는 시장은 인내심이 바닥난 개인투자자의 ‘항복 신호’란 진단이다. 이달 들어 15거래일 동안 개인이 순매도로 거래를 마친 건 이날 포함 4거래일(3일·16일·21일·23일)뿐이다. 순매도 규모도 이달 들어 가장 컸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동안 세 차례 있었던 개인투자자의 순매도는 시장 반등 시 손실 폭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날은 손해를 무릅쓴 ‘투매’의 성격이 강했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박광남 미래에셋증권 디지털리서치 팀장은 “코스피와 코스닥이 한 달간 10~18% 급락하자 투자 심리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소위 백기 투항의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무너지는 시장의 잔해 속에도 개인투자자는 국내 증시에 대한 믿음을 보여왔다. 23일 기준 연초 이후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14조4020억원)과 기관(12조7740억원)이 27조1760억원어치를 팔아치울 때 개인만 25조4190억원 순매수를 기록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도 “수급의 중심에 있던 개인이 버티지 못하며 매물이 쏟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원화값의 경우 ‘1달러=1300원’ 시대가 열렸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날(1297.3원)보다 4.5원 내린(환율 상승) 달러당 1301.8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화값이 종가 기준으로 달러당 1300원을 밑돈 건 세계 금융위기 때인 2008년 7월 13일(달러당 1315원) 이후 12년11개월여 만이다. 최근 원화가치 추락에는 날개가 없다. 원화가치는 종가 기준으로 지난 20일부터 4거래일 연속 연저점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번 주 들어 이날까지 달러당 14.5원이 빠졌다. 원화값이 달러당 1300원 선을 뚫고 미끄러지자 정부도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원화값 약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환율 방어도 쉽지 않다. 물가가 잡힐 때까지 원화값 하락 압력이 이어질 수밖에서다. 그렇지 않아도 수입물가 등이 뛰며 비상이 걸린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게 됐다.

올 1~5월 무역수지 적자 80억 달러 육박

원화값 추락을 이끄는 건 기본적으로 Fed의 긴축이 불붙인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다. 하나은행 서정훈 연구원은 “경기 침체를 감수하더라도 금리를 올리겠다는 파월의 발언에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늘어난 게 원화가치가 달러당 1300원 밑으로 떨어진 이유”라고 말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도 원화값 약세의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쌓이면서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5월 무역수지는 78억5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31억1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 10일 미국 재무부가 공개한 ‘주요 교역상대국의 거시경제 환율 정책보고서’에서도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상품 무역수지의 완화(축소)와 세계적인 금리 인상, 지정학적 불확실성 고조에 따른 상당한 자본 유출이 원화 약세의 지속적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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