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영웅 웨버 대령 알링턴 안장 "공산주의로부터 韓 구해 후회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2.06.23 18:11

업데이트 2022.06.24 00:35

'한국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고(故) 윌리엄 웨버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이 생전 왼손으로 경례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편집물. [연힙뉴스]

'한국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고(故) 윌리엄 웨버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이 생전 왼손으로 경례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편집물. [연힙뉴스]

한국전 참전 영웅인 고(故) 윌리엄 웨버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이 22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지난 4월 향년 97세로 별세한 지 두 달여 만이다.

별세 두 달 만에 알링턴 국립묘지 안장

이날 고인이 살던 메릴랜드주 프레데릭을 출발한 운구 행렬은 워싱턴 시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머문 뒤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로 이동했다. 웨버 대령은 한국전 참전용사추모재단(KWVMF) 이사장을 맡아 이 공원이 들어서는 데 기여했으며, 공원 내 세워진 '19인 용사 동상'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공원 내 새로 세운 '추모의 벽' 완공을 보지 못하고 떠난 웨버 대령 대신 부인 애널리 웨버 여사와 며느리 베스 웨버, 손녀 데인 웨버 등 유족이 현장을 둘러봤다.

고 윌리엄 웨버 미 육군 예비역 대령 부인 애널리 웨버 여사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시내 한국전 참전용사기념공원에 새로 세워진 '추모의 벽'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고 윌리엄 웨버 미 육군 예비역 대령 부인 애널리 웨버 여사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시내 한국전 참전용사기념공원에 새로 세워진 '추모의 벽'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애널리 웨버 여사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웨버 대령은 한국전에서 팔과 다리를 잃었지만 한 번도 참전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애널리 여사는 "한국전 전사자들은 모두 이 나라를 공산주의로부터, 압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희생했다고 (남편은) 믿었다"면서 "자유 국가를 압제로부터 구한 것은 '옳은 일'이었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항상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남편은 참전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다. 가끔 '아, 나도 오른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럴 땐 내가 그의 오른손이 돼줬다"며 울먹였다. 오른팔을 잃은 웨버 대령은 생전 왼손으로 경례하는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며느리 베스 웨버는 "아버지가 꿈꿨던 추모의 벽이 이렇게 아름답게 나올 줄 몰랐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고 윌리엄 웨버 미 육군 예비역 대령 유족이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시내 한국전 참전용사기념공원을 찾았다. [사진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고 윌리엄 웨버 미 육군 예비역 대령 유족이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시내 한국전 참전용사기념공원을 찾았다. [사진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웨버 대령은 말년에 한국전 전사자 한 명 한 명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을 건립하는 데 공을 들였다. 입법 과정부터 깊이 관여해 의원들을 만나고 정부를 설득해 관철했다. 공원 내 추모의 연못을 둘러싸고 원형으로 세워진 대리석 벽 100장에는 미군 3만6634명과 카투사 7174명 이름이 새겨졌다.

손녀 데인 웨버는 "(할아버지는) 한국 전쟁을 미국과 전 세계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걸 추모하고 싶었고, 대가 없는 자유는 없다(Freedom is not free)는 것을 모두 확실히 기억하길 원했다"고 회상했다. 추모의 벽 제막식은 다음 달 27일 열린다.

고 윌리엄 웨버 미 예비역 대령의 운구 행렬이 22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의장대 인도로 안장식장으로 향할 채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윌리엄 웨버 미 예비역 대령의 운구 행렬이 22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의장대 인도로 안장식장으로 향할 채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정부는 최고의 예우로 전쟁 영웅을 떠나보냈다. 이날 알링턴 국립묘지 안장식은 유족과 지인, 참전용사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군악대의 조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미국 국기 성조기에 감싼 웨버 대령 관은 7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 실려 묘역으로 옮겨졌다. 7명의 의장대는 3발씩 예포를 쐈다. 예포 21발은 최고 예우를 뜻한다. 관에는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안장식에 참석한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웨버 대령이 죽는 날까지 이룬 업적을 기억해야 한다"며 "한미동맹의 중요성, 한국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법치의 중요성을 보여줬다"고 추모했다.

조태용 주미대사가 22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윌리엄 웨버 대령 안장식에서 웨버 대령 부인 애널리 여사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태용 주미대사가 22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윌리엄 웨버 대령 안장식에서 웨버 대령 부인 애널리 여사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태용 주미대사는 "웨버 대령의 뜻을 기려 한미동맹이 미래세대에도 계속 튼튼히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인은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공수 낙하산부대 작전 장교(대위)로 참전했다. 1951년 강원도 원주에서 중공군과 혈투를 벌이다 수류탄 폭발로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크게 다친 뒤에도 수술과 치료를 거쳐 현역에 복귀한 뒤 30년 가까이 더 복무해 진정한 전쟁 영웅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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