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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파워'가 뮤지컬 망친다? 옥주현·김호영 '옥장판' 전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뮤지컬 ‘엘리자벳’ 캐스팅을 두고 벌어진 ‘인맥 캐스팅 논란’이 뮤지컬계 전반으로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배우 김호영ㆍ옥주현 간 고소전이 벌어진 데 이어 1세대 뮤지컬 배우들이 발표한 성명문에 동료 배우들의 릴레이 ‘동참’ 물결이 일면서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타 캐스팅’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뮤지컬 제작 환경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태는 지난 13일 공개된 ‘엘리자벳’ 10주년 기념 공연에 옥주현ㆍ이지혜가 주인공으로 더블 캐스팅되면서 불거졌다. 지난 시즌 출연자인 배우 김소현이 빠지고 이지혜가 캐스팅된 것을 두고 옥주현과의 친분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배우 김호영이 SNS에 “아사리판은 옛말이다. 지금은 옥장판”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이에 옥주현은 “사실 관계없이 주둥이와 손가락을 놀린 자는 혼나야 한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한 데 이어 지난 20일 결국 김호영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뮤지컬 배우 옥주현(왼쪽)과 김호영. [연합뉴스·중앙일보]

뮤지컬 배우 옥주현(왼쪽)과 김호영. [연합뉴스·중앙일보]

뒤이어 지난 22일 1세대 뮤지컬 배우인 남경주ㆍ최정원과 배우ㆍ연출ㆍ음악감독 박칼린은 “배우는 연기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야 할 뿐 캐스팅 등 제작사 고유 권한을 침범하면 안 된다”, “뮤지컬의 정도(正道)를 위해 모든 뮤지컬인들이 동참해달라” 등의 호소를 담은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 글에 김소현ㆍ정선아ㆍ신영숙ㆍ차지연ㆍ정성화ㆍ최재림 등의 유명 배우들이 잇달아 지지 의사를 표하면서 논란은 업계 전반의 문제로 확대됐다. 배우 이상현은 호소문을 공유하면서 “이런 게 싫어서 무대를 떠났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인맥 캐스팅’ 의혹의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스타 배우’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뮤지컬 제작 환경이라고 보고 있다. 작품의 완성도나 예술성보다 유명 배우 캐스팅이 흥행을 좌우하고, 여기에 제작사가 영향 받는 관행이 문제의 뿌리에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한 뮤지컬계 관계자는 “상업적 흥행이 중요한 제작사로서는 막강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배우가 강하게 주장하면, 이를 무시하기 쉽지 않다”며 “뮤지컬 제작 환경 자체가 큰 공연을 올리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스타 배우를 캐스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쉽게 해결책을 말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2000년 100억원 이하 규모(매출액 기준)에서 20년 만에 연 4000억원에 육박하는 규모로 급성장했고, 전체 공연 시장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주요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위축됐던 공연시장 상황에서도 뮤지컬은 선방, 팬데믹 이전 수준을 빠르게 회복(2019년 하반기 매출 1316억원, 2021년 하반기 1388억원)하며 전체 공연시장 매출을 지탱했다.

하지만 그 사이 뮤지컬 대작들은 팬덤이 큰 스타의 캐스팅 여부가 흥행을 좌우하기 시작했고, 회당 5000만원 수준으로 거론되는 유명 배우들 고액 개런티, 인맥 캐스팅, ‘끼워팔기’ 등 시장을 왜곡시키는 요소들이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뮤지컬 전체 예매자 중 12.6%는 같은 작품을 2회 이상 반복 예매한 이른바 ‘회전문 관객’인 것으로 집계돼 뮤지컬계를 대중보다 이른바 ‘뮤덕’(뮤지컬 덕후)들이 좌우하는 양상이 드러나기도 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외국에서 뮤지컬은 150여 년 동안 오랜 시간을 거쳐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20년 동안 압축 성장하면서 질적으로 성숙되기보다 ‘스타 마케팅’을 통해 양적으로 ‘팽창’하기 급급했다. 그 폐해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며 “언젠가 겪어야 했을 문제가 닥친 것을 계기로 제작사ㆍ관객ㆍ평단 모두 자정 노력을 거쳐 캐스팅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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