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60시간, 다음주 44시간" 주52시 이렇게 바꿀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6.23 11:22

업데이트 2022.06.26 17:32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와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에 나선다. 근로자가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시간 주권'을 확보해준다. 해만 바뀌면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제를 성과와 역할·직무 중심으로 바꿔 나간다. 특히 고령자의 고용을 보장·확대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도 손볼 계획이다.

정부, 노동시장 개혁방안 발표

그러나 전투적인 노사관계를 선진화하기 위한 방안이 개혁 목록에서 빠졌다. 노조가 반대할 경우 개혁 작업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23일 발표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4차 산업혁명과 저출생·고령화 등 거대한 변화에 따른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법·제도와 불합리한 관행이 성장과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고용노동 시스템을 현대화하는 개혁을 추진해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노동시장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제2차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고도화·다변화한 경제·산업구조에 비춰볼 때 제조업 중심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노동규범과 관행은 더이상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다"고 말했다. 1970~80년대 공장 근로시대의 제도로는 산업재편에 따라갈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노동시장 개혁은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독려했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방안은 근로시간의 유연화와 임금체계 개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시간과 임금체계는 노동시장의 핵심 사안으로 근로조건, 노동생산성과 직결된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기업의 활력 제고와 관련된 걸림돌을 제거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근로시간은 '시간 주권' 개념을 확대하고, 정착시키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근로자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도록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週)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근로시간을 월(月) 단위 총량 관리제로 변경한다. 현행 근로시간제는 주당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해 주 최대 52시간이다. 정부의 구상은 주 최대 52시간제의 틀을 지키면서, 연장 근로시간이 월 48시간(주당 12시간x4주) 이내라면 특정 주에 12시간을 넘겼더라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노사가 합의해도 일일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특별연장근로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길이 막힌 탓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노사가 합의해도 일일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특별연장근로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길이 막힌 탓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렇게 되면 일감(사용자 입장), 휴식이나 간병 등(근로자 입장)에 따라 월 단위로 유연하게 근로시간을 책정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주에는 주 44시간(연장근로 두 시간)만 일하고, 어떤 주에는 주 60시간 근무하는 식이다. 현행 제도에선 주 60시간 근로가 허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노사가 합의해도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늘리지 못하고, 정부에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해 인가를 받아야 가능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는 대표적인 노동규제로 꼽혀왔다. 그러나 연장 근로시간 관리를 월 단위로 변경하면 정부의 개입 없이 노사가 탄력적으로 연장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도 비슷한 방식으로 전환한다. 현행 1개월인 정산 기간(연구개발직은 3개월)을 3개월로 확대하는 방식이다. 정산 기간이 3개월로 바뀌면 3개월 평균 주당 근로시간이 법이 허용하는 주 52시간을 넘기지 않는 범위에서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배분하고 활용할 수 있다.

이 제도가 확대되면 과도하게 특정 일(日)에 일을 몰아서 하는 장시간 근로가 발생할 수 있다. 근로자의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건강 보호조치를 별도로 마련해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이들 사안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 향후 국회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노조의 반발도 누그러뜨려야 한다. 당장 노동계는 "사용자 중심의 편파적 방안"(한국노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장관은 "법령 개정을 속도감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근로자의 휴가를 확대·보장하기 위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도입한다. 연장 근로 또는 휴일 근무 때 수당 대신 그 시간만큼 모아뒀다가 휴가로 활용하는 제도다. 이때 적립되는 시간은 할증수당(휴일 근무 시 50% 가산)처럼 할증 시간으로 적용한다. 선진국에선 근로자들이 이 제도를 활용해 장기간 휴가를 쓰는 게 일상화돼 있다.

매년 해만 바뀌면 자동으로 오르는 나이 중심의 임금체계(연공급, 호봉제)도 역할과 직무, 성과 중심으로 개편해 나가기로 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현재 1000인 이상 대·공기업의 70.3%가 연공급이다. 이로 인해 근속 1년 미만 근로자와 30년 이상 근로자의 임금 차이는 2.87배로, 연공성이 높다는 일본(2.27배)을 추월할 정도다. 유럽연합(EU) 평균은 1.65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한국은 강한 연공성으로 고령 근로자의 고용유지율이 낮고, 소득수준과 일자리 질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한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과도한 연공성을 줄이기 위해 직무별 임금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개별 기업에 대한 임금체계 컨설팅을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고령자의 계속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임금피크제와 재고용 제도도 손볼 방침이다. 고용연장 시행 시점이나 재고용 대상 선정과 근로조건 조정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임금체계를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안 보인다. 따라서 임금체계 개편 과정에서 예상되는 노동계의 반발 등을 어떻게 조율할지 미지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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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도 빠졌다.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을 발표하면서 '노사 합의와 자율'을 강조했다. 그러나 전투적 노사관계를 고려할 때 누구 힘이 센가에 따라 근로시간이나 임금체계가 결정될 우려가 있다. 더욱이 근로시간이나 임금체계는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하는 사안이다. 노조의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노조가 힘을 앞세워 취업규칙 변경을 반대하면 도루묵이 될 위험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조에 힘을 실어주며 힘의 중심축이 노조에 기울었다는 평이다. 하지만 이번 개혁방안에서 선진국에선 대부분 시행하고 있는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과 같은 사용자의 대항권 규제는 건드리지 않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논평에서 "노사관계의 힘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는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향후 고용부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사업장 점거 전면금지를 서둘러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7월 중으로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를 출범시켜 10월까지 4개월 동안 운영하겠다"며 "노동시장의 실태를 조사하고, 심층면접과 국민 의견수렴 작업을 거쳐 입법 과제와 정책 과제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전문가 중심의 개혁 연구실무단을 꾸리는 이유는 노사정 대화에 맡길 경우 갈등만 증폭되고, 개혁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사회적 대화의 끈을 놓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장관은 "추후 노사정이 폭넓은 개혁 의제를 발굴할 수 있도록 사회적 대화 노력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법·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의식과 관행의 개선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여 갈등을 유발하고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는 기존 대화·협상 시스템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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