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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지키던 '수호신부대', 등산객 안전지킴이 전락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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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수호신부대’로 불리는 청와대 외곽 경비부대가 대통령실 용산 이전 40일이 넘도록 부대 개편 방향을 찾지 못하고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청와대 북쪽 인왕산과 북악산 경계가 주 임무이다 보니 군 내에선 “등산객 안전이나 확인하는 부대로 전락했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40일 넘도록 방치

 북악산이 54년 만에 전 지역 개방된 지난 4월 6일 서울 종로구 북악산 남측면 탐방로를 찾은 시민들이 산행을 하고 있다. 지난 1968년 북한군의 청와대 기습시도 사건인 '김신조 사건'으로 시민들에게 제한적으로 공개돼 온 북악산은 지난 2020년 11월 1일 북악산 북측면 개방에 이어 이날 북악산 남측면(청와대 뒤편)을 개방했다. 청와대 외곽 경비부대인 1경비단은 초소 CCTV 등을 통해 등산객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북악산이 54년 만에 전 지역 개방된 지난 4월 6일 서울 종로구 북악산 남측면 탐방로를 찾은 시민들이 산행을 하고 있다. 지난 1968년 북한군의 청와대 기습시도 사건인 '김신조 사건'으로 시민들에게 제한적으로 공개돼 온 북악산은 지난 2020년 11월 1일 북악산 북측면 개방에 이어 이날 북악산 남측면(청와대 뒤편)을 개방했다. 청와대 외곽 경비부대인 1경비단은 초소 CCTV 등을 통해 등산객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청와대 외곽 경비부대인 1경비단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임무가 청와대 방어여서 대통령실 경호처가 지휘 통제 권한(군사용어로는 ‘작전통제’)을 갖고 있다.

1경비단은 OOOO명이 넘는 2개 대대로 구성돼 있다. 예하에 K808 차륜형 장갑차 여러 대를 보유한 장갑중대와 드론 퇴치용 이동식 재밍(jammingㆍ전파 방해) 장비를 운용하는 방공중대 등을 뒀다. 대전차 무기인 무반동총을 갖춘 지원중대도 있다.

청와대 경비를 책임지는 만큼 이런 예하 핵심 부대엔 청룡 대대, 백호 대대, 현무(장갑) 중대, 주작(방공) 중대 등 사방신(四方神)을 뜻하는 부대 별칭이 붙었다.

 1경비단은 예하에 차륜형 장갑차를 운용하는 장갑중대와 대전차 화기인 무반동총을 보유한 지원중대 등을 두고 있다. 사진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12년 1월 19일 수도방위사령부가 동계훈련 일환으로 1.21사태(일명 김신조 사건)의 교훈을 인식하고 국지도발을 대비하기 위한 훈련을 서울 도심에서 하는 모습. 출동한 방위군들이 무장공비의 침투경로인 세검정에서 거수자들을 제압하고 있다. [중앙포토]

1경비단은 예하에 차륜형 장갑차를 운용하는 장갑중대와 대전차 화기인 무반동총을 보유한 지원중대 등을 두고 있다. 사진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12년 1월 19일 수도방위사령부가 동계훈련 일환으로 1.21사태(일명 김신조 사건)의 교훈을 인식하고 국지도발을 대비하기 위한 훈련을 서울 도심에서 하는 모습. 출동한 방위군들이 무장공비의 침투경로인 세검정에서 거수자들을 제압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신조 사건(1968년 1월 21일 발생)처럼 북한 공작원의 산악 지역을 이용한 기습 침투를 차단하는 대침투 방어가 1경비단의 평시 주요 임무이지만, 대통령실이 청와대를 떠나면서 이같은 기능이 유명무실해진 상황이다. 단, 서울 도심에 자리한 유일한 전투병력으로 전시엔 즉응 전력으로 투입된다.

1경비단과 달리 청와대 내곽을 경비하던 55경비단은 현재 용산 대통령실 주변에 배치돼 경비 임무를 이어가고 있다. 용산 이전이 확정된 이후인 지난 4월엔 병력 보강 차원에서 1경비단으로부터 1개 중대 병력을 인계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다 합쳐도 전체 병력 규모가 1경비단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와 관련, 정부 소식통은 “이미 경계가 삼엄한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실이 이전하면서 용산 주변 경비는 55경비단만으로 충분한 상황”이라며 “1경비단 병력을 수용할 공간도, 필요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부대개편 키 쥔 건 경호처 

군 관계자들은 “1경비단의 사기 저하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1경비단 사기 저하는 문재인 정부 시절 인왕산과 북악산을 순차적으로 개방하면서 시작된 측면이 있다”며 “당시 청와대 지시로 군인들의 현 등산로 주변 경계 근무가 해제되고, 이후 각 소초의 폐쇄회로(CC)TV를 대대상황실에서 보며 등산객 안전을 확인하는 업무를 병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가버리자 아예 주객이 전도됐다”며 “부대 내에선 ‘산악회 안전지킴이’라는 자조적인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사기가 급격히 떨어진 상태”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예전엔 ‘수호신부대’라는 별칭에 걸맞게 병력을 선발할 때도 대통령을 지키는 부대라는 점을 강조할 정도로 자존감이 강했다”며 “이젠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 부대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설상가상 1경비단 소속 부사관이 지난 4월 12일 청와대에서 1㎞ 정도 떨어진 북악소초 내 주차장에서 실탄을 장전한 K2 소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침체됐다. 이와 관련, 여권 관계자는 “해당 사건으로 ‘기강 해이’ 지적이 나오면서 당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1경비단 관계자를 참가시키려던 계획이 바뀌었다”며 “55경비단 관계자만 인수위에 들어가고 1경비단은 빠졌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처럼 부대 개편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군 당국은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모습이다. 군 관계자는 중앙일보의 관련 질의에 “1경비단은 전ㆍ평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고, 일부 부대 임무를 조정했다”며 “세부적인 임무에 대해선 말하기 어렵다”고만 답했다.

반면 1경비단 관련 사정에 밝은 군 소식통은 “경호처가 작전통제 권한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다”며 “경호처에서 권한을 군에 넘겨줘야 개편 방향 등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경호처가 키(key)를 쥐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 내에서도 “대통령 경호 업무가 없는데, 경호처가 계속 지휘 관리하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가뜩이나 병력자원이 부족하다고 난리인데, 적지 않은 병력을 어떻게 잘 활용할지 생각해야지 방치만 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경호처가 빨리 손을 떼고 국지도발, 테러 등에 대비한 범용 부대로 재편하는 등 대안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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